국내 첫 '암연구동향 보고서', 암 연구동향 총망라 매년 300건 암 임상 승인, 미국은 2000건 이상 "기초연구 비중 2%, '데스밸리' 넘기는 것도 중요"
김영우 국립암센터 연구소장은 15일 대한암학회가 개최한 '대한암학회 암연구동향 보고서 2023' 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하며 국가 지원의 암 연구 거버넌스가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자리는 대한암학회가 국립암센터의 암정복추진연구개발사업 지원으로 처음 발간한 보고서를 소개하고 암질환에 대한 연구동향 및 향후 암연구 발전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마련됐다.
발간위원장인 김태용 서울의대 교수를 포함, 20여명의 국내 암 연구 전문가들로 구성된 발간위원회가 ▲공중보건연구 ▲기초연구 ▲임상연구 ▲응용개발연구 등 총 4개 분야 국내외 암 연구 동향을 분석했다.
암은 지난 1983년 통계 집계 이래 40년간 국내 사망원인 1위를 이어오고 있는 질환이다. 암 유병자수는 2010년 96만654명에서 2020년 227만6792명으로 늘어 전체 인구의 4.4%가 암을 진단 받았으며, 암 사망자수는 2001년 전체 5만9288명에서 2021년 8만2688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에 암 관련 임상시험 건수도 늘고 있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8위의 임상시험 수행 국가다. 국내에서 많이 발생하는 위암, 간암의 경우 전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고 폐암, 유방암 임상시험도 세계 10위권 수준이다.
항암제로만 보면 임상시험 승인 건수는 2018년 247건에서 2021년 321건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다만 지난해엔 259건으로 소폭 줄었다.
의뢰자(제약사) 주도 항암제 임상은 2018년 171건에서 2022년 203건으로 늘어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임상1상 연구가 최근 5년간 42% 증가했다.
반면 국내 연구자 주도 항암제 임상은 5년간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의 경우 제약회사에서 하기 어려운 중개연구가 동반되기 때문에 제도적, 재정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중개연구는 기초과학의 연구결과를 임상과학에서 실제 사용될 수 있는 단계까지 연계해 주는 연구를 말한다.
김 소장은 "미국은 전체 보건의료 분야 연구비에서 바이오쪽 비중이 30%인데 한국은 2%밖에 되지 않는다. 액수 자체가 미국보다 적지만 기초연구에 대한 비중은 높은 편"이라며 "우리나라 정부 연구개발비는 2021년 기준 8559억원인데 기초연구 비중이 50%, 개발연구 26.6%, 응용연구 17.2%, 기타 5.9%다. 반면 미국은 기초연구에 30%, 진단 및 치료 연구에 30%, 암 생존자 및 공중보건 관련 연구에 30%를 투입한다"고 말했다.
그는 "암 관련 연구비는 계속 늘어나야 하는 게 맞다. 연구비가 지나치게 삭감되면 연구원들의 해고로 이어지고, 그러면 연구의 질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도 "신약개발은 기초연구만 열심히 해서 되는 게 아니다. 환자들에게 적절한 항암제를 빨리 타겟팅하는 게 중요한데 그쪽에 대한 연구비가 적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약 후보물질이 의약품으로, 전임상에서 임상1상으로 넘어가기 위해선 죽음의 계곡이라 불리는 중개연구를 거쳐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쪽 연구비가 많이 늘어날 필요가 있다"며 "중개연구는 병원에서 이루어진다. 최근 트렌드는 맞춤형이기 때문에 임상 현장에 있는 의사가 적절한 환자를 찾아서 매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글로벌 수준의 항암신약 개발을 위해 대통령 직속의 캔서(cancer) 캐비닛 구축, 암 연구 거버넌스 혁신 등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미국의 경우 보건복지부 산하 연방기관인 국립보건원(NIH)이 암 관련 연구개발을 전담하고 있다. 복지부 산하기관이긴 하지만 독립적으로 백악관과 소통하면서 정부의 암 연구개발사업을 주도하고 있고, 의회로부터 독립된 예산을 승인받아 자율적이고 독자적인 예산을 운영하고 있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정부 지원 의사결정 거버넌스 과정이 복잡하다.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의사결정 과정은 전문기관 또는 국립암센터 등 출연기관으로부터 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소관부처, 심의부처 등을 거쳐 기획재정부까지 이르러서야 행정부 최종안이 확정된다.
이어 이를 다시 국회에서 심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현장의 암연구자들과 정부가 추구하는 암 연구방향에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빠르게 변화하는 암연구 생태계에 즉각 대처하기 어려운 문제점들도 발생하고 있다.
김 소장은 "미국은 이미 닉슨 대통령 시절인 1971년 국가 암법(National Cancer Act)을 제정해 미국국립암연구소가 백악관으로 직접 예산을 올릴 수 있도록 했다. 백악관 내에 있는 OSTP(과학기술정책국), OMB(예산관리국)가 예산을 심의해 국회로 넘어가게끔 되어 있다"면서 "우리나라처럼 엄청난 단계를 밟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는 지난 4월 미국과 암 연구·치료 분야 협력 MOU를 맺었고, 지난 8월엔 미국의 암 정복 프로젝트 '캔서 문샷'(Cancer Moonshot) 2.0에 협력키로 했다. 이는 우리가 이제 암 연구를 국내에서만 국한할게 아니라 전 세계 암환자들을 위한 연구를 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우리의 암 연구 거버넌스가 크게 혁신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 방안으로 대통령 직속의 캔서 캐비닛을 만드는 것을 제안한다. 미국은 바이든 정부가 캔서 문샷 2.0을 발의할 때 캔서 문샷과 암 내각(캔서 케비닛)을 만들었다. 백악관 내에 암 내각을 두면서 20개 이상의 관련 부처들이 지원토록 했다"며 "즉 내각을 구성해 최고 의결기관으로서 기능을 하게끔 한 것이다. 우리도 이러한 조직이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미국처럼 상위조직(백악관)에 바로 (예산 등) 올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각선 빅파마로부터 수입할 수 있는 항암신약을 막대한 돈을 들여 개발해야 하느냐는 시각이 있는데 의약품의 국산화는 국민들의 건강주원과 직결돼 있어 매우 중요하다"며 "국립암센터가 암 연구의 거버넌스를 혁신하고 연구 방향성 등을 결집하는 역할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전 세계 암 연구가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기 위해선 혁신적 연구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뉴스웨이 유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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