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형마트 규제 대폭 완화 결정의무 휴업 평일 추진·온라인 배송 허용노조 반발·유산법 개정 등 난항 전망
국무조정실은 22일 서울 동대문구 홍릉콘텐츠인재캠퍼스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이 같은 생활규제 개혁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정부는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를 풀기로 했다. 현행법 상 대형마트는 월 2회의 의무 휴업을 실시해야한다. 또 영업 제한 시간, 의무 휴업일에는 온라인 배송을 할 수 없다.
정부는 이를 풀기 위해 대형마트의 의무 휴업일을 공휴일로 지정해야한다는 원칙을 폐기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유통산업발전법(유산법) 개정안을 조속히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 규제를 폐지하거나 완화해야 한다는 국민 목소리를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소비자 4명 중 3명도 규제 완화 원한다
최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시장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유통규제 관련 소비자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4명 중 3명(76.4%)은 대형마트 규제를 폐지·완화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33.0%는 일요일 대신 평일 의무 휴업 실시 등 규제 완화를 원했다. 대형마트 의무 휴업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응답 비율은 32.2%에 달했다. 반면 현행 의무 휴업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23.6%에 그쳤다.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에 이용하는 대체 구매처와 관련한 답변에는 가장 많은 이들이 슈퍼마켓·식자재마트(46.1%)를 찾는다고 했다. 이어 대형마트 영업일 재방문(17.1%), 온라인 거래(15.1%), 편의점(10.2%) 등이 뒤를 이었다. 전통시장을 방문한다는 답변은 11.5%에 그쳐 '전통시장을 보호하자'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 취지가 무색해졌단 평가가 나왔다.
한경협은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에 전통시장을 방문하는 소비자가 10명 중 1명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의무 휴업 규제에 따른 전통시장 보호 효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정부는 "토론회 결과 국민이 주말에 편하게 장을 볼 수 있도록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원칙을 폐기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대도시와 수도권 외 지역에도 새벽배송이 활성화되도록 영업 제한 시간에는 대형마트의 온라인 배송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의 정책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대형마트가 전국 각지 점포를 물류 거점으로 삼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즉, 온라인으로 들어온 주문을 근교 점포에서 처리해 빠른 시간 내 소비자에게 배송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대형마트는 각 점포에 PP(피킹&패킹)센터만 마련하면 돼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을 투자해 점포를 물류센터처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한경협 조사 결과에서도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과 심야 영업금지 시간에 온라인 거래를 허용하는 것에 대해 찬성한다는 응답자가 78.9%(적극 찬성 40.7%·찬성 38.2%)에 달했다. 이유로는 소비자 편익 보호(69.9%), 온라인 거래 금지의 전통시장 보호 효과 미미(13.5%), 유통산업 선진화(12.2%) 등을 언급했다.
대형마트 규제, 전통시장 활성화 효과 '미미'
대형마트 의무 휴업 규제 철폐와 관련한 논란은 12년간 이어져왔다. 앞서 대형마트 규제는 지난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에 따라 시작됐다. 매달 2차례 휴무를 강제해 전통시장을 보호하자는 취지다.
이에 전라북도 전주를 시작으로 매달 둘째·넷째주 일요일에 전국의 대형마트가 휴업해야 하는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 그 사이 대형마트들은 규제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내기도 했으나, 대법원은 정당하다고 판단했고 헌법소원 심판도 각하됐다.
대형마트 의무 휴업 규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더욱 심화되기도 했다. 비대면 거래 보편화로 온라인 거래가 증가하며 규제에 묶인 대형마트나 전통시장 매출이 제자리 걸음하는 사이 온라인 매출이 급증한 탓이다.
여기에 주말 의무 휴업이 골목 상권 보호 효과는 없고 소비자 불편을 야기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최근 들어 대구시와 청주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대형마트 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추세다.
실제 의무 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한 것에 대한 효과도 증명됐다. 주변 소상공인들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일정 부분 해소된 상태다. 조천한 경기과학기술대 교수가 지난해 한국유통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대구시 의무휴업일 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평일 의무 휴업일이 시작된 지난해 2월부터 4월까지 3개월 간 대구 시내 소매업과 음식점 매출이 25.9% 증가했다. 대형마트 주말 영업으로 유동 인구가 늘며 인근의 소상공인들까지 매출 신장 효과를 본 셈이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대규모 점포의 영업·출점 제한은 소비자권익을 침해하고, 납품기업과 농수산물 산지 유통업체의 피해를 초래하는 반면 전통시장 활성화 효과는 뚜렷하지 않다"며 "국내 유통정책은 규제보다 소비자 편익과 유통산업의 글로벌경쟁력 육성 중심으로 재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발표 환영하나 갈 길 멀다
대형마트 업계는 정부의 발표를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그간 대형마트 업계는 각종 규제를 받아왔으나, 이커머스 업체들은 유통산업발전법으로부터 자유로워 불공정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대형마트 업계는 영업 시간 규제가 풀리며 새벽배송이 가능해진 만큼 쿠팡 등이 장악한 온라인 시장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의무휴업 평일전환과 새벽배송이 허용되면 소비자 편익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특히 이커머스 업체들과 공정한 경쟁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고 했다.
다만 정부의 이 같은 방침에도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이 일률적으로 평일로 전환하는데 까진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르면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은 각 지자체 조례에 따라 결정할 수 있게 되어 있어서다. 의무 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각 지자체장의 의지와 조례 개정 절차 등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또 온라인 배송 허용을 위해서는 유통산업발전법 자체를 개정해야한다. 다만 개정안은 국회에서 3년이 넘도록 계류 중으로 여·야 간 이견이 상당해 문턱을 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각 지역 소상공인과 대형마트 노조의 반발도 해결해야 할 숙제로 꼽힌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정부의 오늘 발표가 반갑긴 한데 갈 길이 멀어 보인다"며 "더욱이 올해 총선을 앞두고 있어 당장 개정이 이뤄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뉴스웨이 신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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