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2조1332억원 투입···국내 공개매수 역사상 역대 최대 규모MBK "실패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아···한국타이어 때와는 달라"최윤범 "온 힘 다해 저지···고마운 분들 덕에 이길 방법 찾았다"
시작은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의 등장으로 장씨 일가가 승기를 잡은 듯 했다. 하지만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특성상 정치권까지 가세하면서 두 일가의 경영권 분쟁은 혼전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한국타이어 때와는 다르다"는 MBK와 "이기는 방법을 찾아냈다"는 최윤범 회장이 각자 자신감을 드러내면서 향후 누가 승기를 잡을지 주목된다.
한국앤컴퍼니 이후 더 치밀해진 MBK
사모펀드 MBK가 잇따라 경영권 분쟁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12월 형제 간 경영권 다툼이 진행 중이던 한국앤컴퍼니(한국타이어) 주식 공개 매수가 실패로 끝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이번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또 등장했다.
MBK와 영풍은 지난 13일부터 고려아연 지분 6.98∼14.61% 확보를 목표로 1주당 66만원에 공개매수를 진행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미 실패의 쓴 맛을 본 MBK가 이번 공개매수에서는 여러모로 칼을 갈았다는 반응이다.
공개매수에 들이는 금액부터 3배 넘게 차이가 난다. 한국앤컴퍼니 때는 매수수수료까지 총 6250억원을 준비했지만, 이번에는 영풍정밀 공개매수 대금을 포함해 최대 2조1332억원을 투입한다. 국내 공개매수 역사상 역대 최대 규모다.
공개매수 시기와 기간도 전략적이다. MBK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따라 22일 간 공개매수를 진행하지만 이중 추석 연휴와 공휴일을 제외한 영업일은 총 10일뿐이다. 최윤범 회장으로서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기습공격을 받아 방어할 시간마저 부족한 셈이다.
MBK "실패 생각하지 않아···매수가 인상 글쎄"
고려아연 발행주식을 최소 7%에서 최대 14.6%까지 공개매수하는 것이 목표로 하는 MBK는 "실패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영풍 장씨 일가가 보유한 고려아연의 지분은 우호 주주까지 더해 33.13%다. 여기에 공개매수와 영풍정밀이 가진 지분(1.85%)을 사들여 주주총회에서 경영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44% 수준까지 지분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MBK 김광일 부회장은 "올해 초 주주총회에서 사안별로 아쉽게 뜻이 관철되지 않은 것에 미뤄 봤을 때 7%만 더 확보하면 1대 주주로서 원하는 방향으로 회사에 의사를 표명할 수 있다"며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 당시에도 8%는 무난히 확보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소액주주가 다수인 앞선 한국앤컴퍼니와 달리 고려아연의 주주구성은 기관투자자가 주를 이루는 만큼 성공을 확신하는 분위기다.
공개매수 직후 고려아연의 주가는 연일 급등하면서 20일 장중 75만원을 찍기도 했다. 이는 공매매수가 66만원보다 9만원 높은 가격이다. 그럼에도 MBK가 당장 공개매수 가격 인상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김 부회장은 "공개매수 지분을 보유한 주체의 97.7%는 기관투자자"라며 "장기 투자자인 이들의 고려아연 지분 평균 취득 단가는 45만원 이하로 우리가 제시한 66만원은 51.4% 정도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이라고 설명했다.
자금력 업은 영풍, 여론전은 열세···대기업 우군에 이목
자금력에서는 '큰 손' 사모펀드를 등에 업은 영풍 장씨 일가가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MBK를 향한 여론의 시선은 곱지 않다. 노조는 물론이고 지역사회와 정치권까지 고려아연 편에서 힘을 보태는 상황에서 영풍과 MBK가 명분으로 내세운 '지배구조 개선'은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비난의 화살을 최윤범 회장에게 돌려 경영권 분쟁의 명분을 강화하고 있지만, 현 경영진에 대한 의혹보다는 적대적 M&A를 의심하는 시각이 더 짙다.
치열한 여론전 속에서 최 회장도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고려아연 지분율 15.6%에 불과한 최씨 일가로서는 일단 대기업 우군은 확실히 한 편으로 묶고 함께 지분 경쟁에 나서줄 우군이 필요할 상황이다.
고려아연은 현대자동차그룹, ㈜한화, LG화학 등에게서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자사주 교환 등을 통해 신사업 추진을 위한 투자금을 확보했다. 이들 지분을 합치면 최 회장 측의 지분율은 34.17%로, 영풍 장씨 일가(33.1%)에 비등한 수준이다.
앞서 이들 대기업이 최 회장의 백기사라며 공세를 퍼붓던 영풍이 최근 태도를 바꾼 것도 이 때문이다. 대기업 주주들이 최 회장의 우군으로서 직접 분쟁에 뛰어들 가능성을 견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풍은 올해 초 1차 경영권 분쟁 당시 "제3자 신주발행은 경영상 목적이 아닌 현 경영진의 '경영권 유지, 확대'라는 사적 편익을 도모한 위법행위"라며 제3자 배정 유증과 자사주 교환 등을 통해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낮아졌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현대차·한화 등이 최 회장의 우호지분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며 "최 회장의 우호지분이 아닌 고려아연의 우호세력으로, 이분들과 더욱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입장을 선회했다.
일본으로 간 최윤범···반격의 카드 찾았나?
"고마운 분들 덕에 이기는 방법 찾아냈다." 이제 시장에서는 최윤범 회장의 반격에 카드에 관심이 쏠린다.
최 회장은 지난 19일 "온 힘을 다해 MBK(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를 저지할 것"이라며 "그들의 허점과 실수를 파악하고 대응해 이기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는 내용이 담긴 서한을 19일 모든 임직원들에게 보냈다.
최 회장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 공개적인 메시지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경영권 방어에 자신감을 비친 만큼 조만간 구체적인 대응 전략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고려아연과 이전부터 협업을 해온 해외 파트너 기업을 대상으로 이번 경영권 분쟁 관련해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추석 연휴 기간인 지난 17일 일본을 방문해 글로벌 기업을 만나는 등 우군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세계적 투자회사인 일본 소프트뱅크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MBK를 능가하는 거대 자본인 소프트뱅크가 '백기사'로 나설 경우 판세가 요동칠 수도 있다.
최 회장은 국내외 사업 파트너를 상대로 우군 확보에 나서는 동시에 국내 복수의 증권사들과 주식담보대출을 논의하는 등 총력전에도 나섰다. 현재 한국투자증권도 우군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뉴스웨이 김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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