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공정거래법 개정안 통한 규제 방침민주당 '온플법' 주요 법안 지정 통과 유력업계 "글로벌 빅테크와 역차별·이중규제" 지적
'종합 6위, 제도적 환경 24위.' 유엔 산하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의 2024년 세계 혁신지수 조사에서 우리나라가 받아든 성적표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혁신을 추구하지만, 정부는 그 분위기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달리 말하면 과도한 규제 환경이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얘기다.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잠재력마저 잃어가는 한국 경제. 뉴스웨이는 '세계기업가정신 주간'을 맞아 기업인들의 혁신 활동을 옭아매는 규제 정책의 현 주소를 진단하고 개선 방향을 제언한다. [편집자주]
"트럼프 정부가 빅테크와 인공지능(AI)에 대해 비규제적이며 인수합병(M&A)에 대해서도 굉장히 자유로운 방식을 취할 것으로 예상한다. 최근 플랫폼에 대한 국내 규제 상황과 맞물릴 경우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면밀히 보고 있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지난 1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팀네이버 통합 컨퍼런스 '단24'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이 국내 플랫폼 업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공정거래위원회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공정거래 분야 성과 및 향후 계획을 발표하며 독과점 플랫폼의 반(反) 경쟁행위에 신속히 대처하기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티몬·위메프 사태 재발방지책인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이 조속히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논의 과정에 적극 참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공정위를 앞세워 플랫폼 기업을 대상으로 한 규제 기조를 이어오고 있다. 실제 공정위는 지난해 1월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에 대한 심사지침'을 제정해 시행했다. 이어 올해 시장지배적 플랫폼을 지정하고 불공정 행위를 규제하는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을 추진하다 업계와 학계 등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공정위는 플랫폼 법을 대신해 현행 거래법 개정을 통해 규제를 이어가겠단 방침이나,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주요 플랫폼 기업을 사전에 지정하고 규제하는 '사전지정제'를 포함한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을 당 차원에서 주요 법안으로 지정하고 추진한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내비치고 있다.
이에 대한 업계와 전문가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전방위적 규제 영향권에 놓인 국내 플랫폼 기업들이 글로벌 빅테크가 기반을 둔 미국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 바이든 정부가 빅테크를 대상으로 강한 제재를 펼쳤다면 트럼프 2기 정부는 규제 완화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어서다. 이 경우 국내 플랫폼 기업들이 해외 기업들로부터 겪을 역차별 문제 등 부작용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뜨거운 감자 '온라인플랫폼법', 무엇이길래
온플법은 크게 두가지 법안으로 나뉜다. 거대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 행위를 규제하는 온라인플랫폼독점규제법과 플랫폼 기업과 입점업체 간 '갑을관계'를 규율하는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이다. 시장 지배력 남용이 우려되는 플랫폼 기업을 사전에 지정해 자사우대 및 끼워팔기 행위 등을 금지하는 내용과 입점업체 정산 주기를 법제화하고 중개 수수료 상한제 등을 도입하는 내용이 골자다.
현재 민주당에서만 8개의 관련 법안을 발의했으며, 공정위도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을 대신해 공정거래법과 대규모유통업법 등 기존 법을 개정하는 방향으로 플랫폼 규제에 나서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온플법과 공정거래법,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대표적인 적용 기업은 구글과 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와 네이버와 카카오, 배달의민족 등이 적용 기업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쿠팡은 공정위 기준(60% 이상)보다 시장 점유율이 낮아 규제를 피해 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온플법에 업계는 한숨···왜?
업계 관계자들과 학계 전문가들은 플랫폼 산업에 적절한 규제책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이미 시장 독과점 플랫폼을 상대로 자율규제로는 제어가 어렵다는 점을 예로 들고 있다.
실제 인앱결제(자사 시스템을 통한 결제)를 구축해 수수료를 챙기는 빅테크, 대규모 피해자를 낳은 티메프 사태, 일방적인 수수료 인상으로 논란을 빚은 배달 플랫폼 등이 그 예인 것이다. 사람들이 몰리면 독점이 되고, 독점은 곧 불공정거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도 컨퍼런스 당시 정부와 국회의 플랫폼 규제 입법 본격화 상황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한 기업 수장으로 직접적인 견해를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네이버는 (플랫폼 기업에 대해)사회적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보면 가장 먼저 직면했었던 회사이기도 하고 이것을 풀어가는 과정에서의 책임론에 대해 가장 깊이 공감하고 있다"며 일정 규제는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들의 우려는 다른 곳에서 나온다. 다양한 산업군에서 각 산업군의 특성을 담은 플랫폼을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해 제재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이다. 한 IT기업 관계자는 "플랫폼은 사업별로 성격이 다른데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온플법은 너무 광범위하다"며 "플랫폼 시장에 대한 낮은 이해도가 빚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공정위를 비롯한 ICT 업계 관할 부처들은 플랫폼에 대한 규제를 추진할 때면 향후 제재가 국내외 기업 모두에 동등히 적용될 수 있도록 하겠단 포부를 내놓는다. 그러나 글로벌 빅테크에 대한 감시와 제재엔 현실적 제약이 따르는게 사실이다. 이 경우 글로벌 빅테크 기업은 국내 규제에서 사각지대에 놓일 수 밖에 없게 된다.
국내 플랫폼 기업 관계자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사실상 규제 대상에서 제외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며 "아무리 목적과 명분이 좋아도 글로벌과 국내 플랫폼에 똑같은 규제가 적용된다면 국내 플랫폼만 위축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온플법의 주요 제제 사항들이 기존 공정거래법 등에도 포함되어 있는 만큼 '이중규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지난해 5월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행한 '온라인 플랫폼의 실효적 규제를 위한 입점방식 재검토' 보고서를 살펴보면 '공정거래법 개정 중 심의 단계적이고 유기적인 입법 방식의 고려가 필요하다'고 했다. 기존 공정거래법을 토대로 현실에 맞게 보완하자는 방향을 내놓은 셈이다.
한 전문가는 일본의 사례를 들며 규제 적용 범위를 특정 사업으로 한정하는 등 더욱 구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실제 일본의 경우 올해 '통신 시장 활성화를 위한 규제법'을 발의하는 과정에서 시장 적용 범위를 스마트폰과 PC 등 운영체제 영역으로 한정했다. 이 경우 자연스레 규제 대상은 구글과 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로 좁혀지게 된다.
이 전문가는 "글로벌 빅테크로부터 국내 플랫폼 기업들의 경쟁력을 어떻게 지켜내야 할지 넓은 관점으로의 접근이 필요하다"며 "지금도 각종 규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플랫폼 업계에 온플법 제재까지 더해지면 동력을 잃게 될 가능성도 높다. 이 경우 플랫폼을 향한 투자 위축, 인재 유출 등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뉴스웨이 신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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