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형 AI' 등장에 美中 '패권 전쟁' 개막삼성전자·SK하이닉스 'HBM 사업' 영향권 트럼프 행정부 '보조금 백지화' 여부 촉각
3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해외에서 연일 반도체를 둘러싼 무거운 소식이 흘러나오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기업 안팎에 뒤숭숭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삼성과 SK에 걱정을 안긴 대상은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가 내놓은 생성형 AI '딥시크 R1'이다. 해당 모델이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o1'보다 일부 성능에서 앞섰다는 테스트 결과가 공개되자 시장이 요동치고 있어서다.
우려를 키우는 대목은 딥시크가 오픈AI의 약 6%에 불과한 자금으로 그에 필적하는 AI 모델을 완성했다는 데 있다. 이는 곧 엔비디아의 고성능 제품이 불필요해질 수 있다는 의미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딥시크 측 주장을 보면 R1엔 엔비디아의 최첨단 AI가속기 H100보다 낮은 버전인 H800이 활용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럼에도 개발 비용은 558만달러(약 81억2050만원)로 챗GPT(약 1455억원)에 들어간 액수를 크게 밑돈다는 전언이다. 그간 출시된 AI 모델은 훈련을 위해 약 1만6000개의 GPU를 필요로 하는데, 딥시크엔 GPU 2000개 정도가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은 바로 반응했다. 미국에서 AI 반도체 대장주 엔비디아가 하락세를 보인 가운데 긴 연휴를 마치고 문을 연 우리 증시에서도 SK하이닉스는 물론 한미반도체 등 관련 기업의 주가가 10% 가까이 곤두박질쳤다.
업계에선 딥시크의 존재가 장차 삼성·SK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저가형 모델 확산에 AI 반도체 '큰손' 엔비디아의 입지가 흔들리면, 이 회사로 제품을 공급하는 우리 기업에도 타격이 올 수 있다는 이유다. SK하이닉스의 경우 그간 엔비디아로 HBM(고대역폭메모리) 제품을 독점 공급하다시피 했고, 삼성전자도 작년부터 일부 제품에 대한 거래를 이어온 바 있다.
미국 정부도 대응 차원에서 엔비디아의 대(對) 중국 수출 제재를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블룸버그통신은 엔비디아의 중국 시장용 H20 칩으로 통제가 확대될 가능성을 점쳤는데, 해당 제품에 삼성전자의 HBM3가 탑재된다는 점도 우려를 더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이와 함께 미국 행정부가 보조금을 백지화하려는 것도 우리 기업의 걱정거리로 떠올랐다. 바이든 전 대통령 임기 막바지 계약을 마쳤으나, 트럼프 행정부 측이 자신들의 국정 기조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반대 입장을 내비치면서다.
실제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지명자는 지난 29일(현지시간) 인사청문회에서 반도체법 보조금 계약 이행 여부를 둘러싼 질의에 확답 대신 '제대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발언을 남기며 불확실성을 키웠다.
이미 비슷한 움직임이 감지되기도 했다. 배스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국장 대행이 28일 각 정부 기관에 '반도체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포함한 보조금과 대출 지원을 잠정 중단한다고 공지한 게 대표적이다. 워싱턴DC 연방법원의 제동으로 실행에 옮겨지진 않았지만, 현지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줄곧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법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해온 만큼 향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만일 미국 측 조치가 현실화하면 우리 기업의 현지화 전략엔 차질이 불가피하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설비를 구축하는 370억달러 규모 투자 계획을 확정한 뒤 작년 12월 47억 4500만달러의 보조금 지급을 약속받았다.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38억 7000만달러를 들여 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 기지를 세우기로 하면서 4억 5800만달러의 보조금을 확정지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날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딥시크와 관련해 "시장 내 장기적 기회 요인과 단기적 위험 요인이 공존할 것"이라며 "GPU에 쓰이는 HBM을 여러 기업에 공급하는 만큼 여러 시나리오를 세우고 동향을 살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트럼프 리스크'를 놓고도 "세계 각 지역의 생산·공급망 관리 능력과 AI 기술을 바탕으로 변화와 리스크에 대응할 것"이라며 "당면한 도전을 기회로 삼아 극복하겠다"고 덧붙였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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