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세미텍 기술 평가한 작심발언 파장 경쟁사 실명 거론 부적절 비판 목소리↑한미반도체·한화 '특허 분쟁'도 재조명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곽동신 한미반도체 회장은 전날 대내외에 공유한 메시지에서 회사 주식 매입 계획을 언급하며 "우리는 싱가포르 ASMPT, 한국 한화세미텍과 상당한 기술력 차이가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SK하이닉스로부터 수주받은 한화세미텍도 결국 흐지부지하게 소량의 수주만 받아가는 형국이 될 것"이라고 언급해 논란을 키웠다.
곽동신 회장의 이번 발언은 한화세미텍이 SK하이닉스로 'TC(열압착)본더' 납품에 성공한 것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4일 한화세미텍이 SK하이닉스와 210억원 규모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한 바 있어서다.
'TC본더'는 HBM(고대역폭메모리) 생산을 위한 필수 장비다. HBM에 쓰이는 D램을 쌓아 올리는 과정에서 칩을 하나씩 열로 압착해 붙이는 역할을 한다. 한화세미텍은 SK하이닉스의 퀄 테스트(품질 검증)를 이어왔는데, 이번 계약으로 사실상 SK하이닉스에서 엔비디아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에 올라탔다.
한미반도체가 이 장면을 반길 수 없는 배경은 독점 구도가 깨졌다는 데 있다. 그간 한미반도체가 SK하이닉스에 HBM용 TC본더를 홀로 공급해왔는데, 한화세미텍의 가세로 경쟁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약 50대의 TC본더를 구매할 예정인데, 업계에선 한화세미텍이 그 중 20대를 책임질 것으로 본다.
이에 곽동신 회장으로서도 강도 높은 발언으로 시장의 지지를 구하려던 것으로 읽힌다.
다만 일각에선 비판의 목소리도 감지된다. 업력만큼 기술·노하우에 대한 격차가 존재할 수 있겠지만, 선두 기업 한미반도체가 굳이 다른 회사를 깎아내릴 필요가 있냐는 인식에서다.
업권을 넓혀 봐도 기업이 경쟁사에 반감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는 드물다. 경영권과 같이 민감한 사안으로 얽혀있는 게 아니라면, 선의의 경쟁으로 함께 성장하고 산업을 키우자고 격려하는 게 일반적이다.
최태원 SK 회장이 재계의 찬사를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작년 11월 'AI(인공지능) 세미나' 현장에서 삼성전자와 차별화 전략을 묻는 취재진의 질의에 "삼성은 SK보다 훨씬 많은 기술과 자원을 갖고 있고, AI 물결에서 훨씬 더 좋은 성과를 낼 것"이라는 덕담을 남겨 눈길을 끌었다.
게다가 한미반도체와 한화세미텍의 기술 격차가 실제 어느 정도인지도 단언하기 어렵다. 통상 업계에선 'TC본더'의 우수성을 가를 핵심 지표를 정확도와 속도로 보는데, 모두 일정 수준에 이르렀으니 SK하이닉스도 한화세미텍에 기회를 주지 않았겠냐는 게 전반적인 시선이다.
때문에 곽 회장이 오히려 조급함을 드러낸 게 아니냐는 진단도 있다. 그는 한화세미텍의 SK하이닉스 납품이 임박하면서 한미반도체 주가가 흔들리자 2000억원 규모 자사주 소각을 결정하는 등 방어에 신경을 쏟았다. 그가 회사 주식 매수에 쓰는 금액도 올해만 50억원에 이른다.
하나 더 눈여겨볼 대목은 곽 회장과 한화그룹의 불편한 관계가 재확인됐다는 점이다. 현재 한화는 반도체 설비 제조 솔루션을 신사업으로 지목하고 오너일가 차원에서 한화세미텍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지난달엔 김동선 부사장까지 미래비전총괄로 합류했다. 곽동신 회장으로서는 그런 기업에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양사는 특허 분쟁도 이어가고 있다. 한미반도체는 자신들의 기술을 도용했다며 작년 12월 한화세미텍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곧 본격적인 공판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한미반도체 관계자는 "곽동신 회장의 이번 메시지는 격화하는 경쟁 구도 속에서도 우위를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봐달라"고 일축했다.
한화세미텍 측 역시 "공식 입장이 없다"면서 "차별화된 기술력과 품질을 갖추는 데 주력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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