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책임 인정한 법원···"설명의무 위반 아니다"금융위 과징금 산정 방식 개편···최대 75% 감경 제재 낮출 관건은 재발 방지 위한 내부통제 강화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방법원은 국민은행이 판매한 홍콩H지수 연계 ELS 투자 손실과 관련한 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원금 2억8000만원 중 1억5000만원을 날린 투자자 A씨는 은행이 위험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가 과거에도 유사한 상품에 여러 차례 투자했고 손실을 본 경험이 있고 이번 상품 가입 과정에서도 위험 고지와 서명이 이뤄졌다는 점을 들어 국민은행의 설명의무 위반을 인정하지 않았다. 상품 설명서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붉은 글씨로 강조돼 있었던 점도 판결 근거로 제시됐다.
은행권은 이번 승소 판결을 반기는 분위기다. 만약 패소 사례가 나왔다면 제재 수위를 높이는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사태와 관련해 금융당국이 곧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과징금 부과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어서 파장은 더 크다.
현재 기준으로는 불완전판매가 인정될 경우 판매 금액의 최대 50%까지 과징금을 물릴 수 있다. 국내 5대 은행이 판매한 홍콩H지수 ELS 판매액은 총 14조8579억원으로, 단순 계산 시 약 7조4000억원의 과징금이 가능하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국민은행만 8조1972억원어치를 팔아 과징금 부담이 절반 이상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수조원대 과징금시 자본비율 하락···대출여력↓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이미 자율적으로 1조원 이상을 투자자에게 배상했다. 여기에 수조원대 과징금까지 겹치면 자본여력은 급격히 위축되기 때문에 건전성 지표 하락과 대출 축소는 불가피하다.
과징금을 내면 동일 금액의 6배를 운영 리스크로 반영해 위험가중자산(RWA)에 10년간 쌓아야 하고, 이는 보통주자본비율(CET1) 하락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과징금 1조원을 낼 경우 6조원의 RWA가 새로 생기고 금융지주 차원에서 CET1이 0.5%포인트 떨어져 10조원 이상 기업대출 여력이 사라진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위원회가 금소법 시행령과 감독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며 과징금 산정 방식을 전면 손질했다. 모호한 기준을 상품별로 명확히 규정하고, 위법 정도와 소비자 보호 노력에 따라 과징금을 대폭 줄일 수 있도록 한 게 핵심이다.
과징금 부과율은 기존 50%·75%·100% 세 구간 대신, 위반 정도에 따라 1~30%, 30~65%, 65~100%로 세분화됐다. 개인정보보호법 사례처럼 하한선을 1%까지 낮추고, 위반 특성에 맞춰 탄력적으로 산정할 수 있도록 했다.
과징금 산정체계 개편···위반 정도별 차등 적용
또한 금융회사가 피해 예방과 사후 수습을 위해 노력한 경우 과징금을 감경할 수 있는 조항도 마련됐다. 소비자 보호 실태평가에서 우수 평가를 받은 경우 최대 30%, 내부통제 기준을 충실히 마련하고 이행한 경우 최대 50%까지 감경이 가능하다. 다만 여러 사유가 겹쳐도 감경 폭은 최대 75%까지만 허용된다. 홍콩H지수 ELS 과징금이 약 2조원 수준으로 크게 낮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금융위는 납부 능력, 실제 취득 이익, 시장 상황 등을 종합해 불가피할 경우 추가 조정도 가능하도록 했다.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금융사들의 자발적인 소비자 보호 노력을 유도하려는 취지다. 위반 정도에 따라 합리적인 과징금을 부과하되 금융사가 피해를 예방·수습하려는 동기를 부여하겠다는 게 금융위의 설명이다.
다만 ELS 제재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항소심과 다른 소송에서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법원이 상황에 따라 투자자 보호를 더 중시한다면 정반대 판결이 나올 여지도 있다. 금융위가 감경 제도를 마련했지만 최종 과징금 규모는 제재심 판단과 위법성 인정 범위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법원이 투자자 책임을 인정한 만큼 은행권이 짊어질 과징금 부담은 상당 부분 줄어들 수 있고, 제재 수위가 합리적으로 조정된다면 시장 신뢰 회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다만 금융당국의 소비자 보호 기조가 명확하기 때문에 은행권이 내부통제 강화와 재발 방지 노력을 실제로 보여주지 못하면 제재 리스크는 계속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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