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産銀이 건져낸 여천NCC···한화·DL, '백기' 들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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産銀이 건져낸 여천NCC···한화·DL, '백기' 들었지만

등록 2025.11.17 06:00

차재서

  기자

여천NCC 부채 3000억 출자전환 합의 임박했지만 한화·DL 모두 '책임 공방' 지속하며 '상처'만 남겨"채권단 없인 요지부동···대주주 책임감 부족" 지적도

그래픽=이찬희 기자그래픽=이찬희 기자

여천NCC가 다시 한 번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빠져나온다. 대여금 3000억원을 출자전환하라는 산업은행의 연이은 압박에 한화와 DL그룹이 끝내 태도를 바꾸면서다. 그러나 긴박한 국면 때마다 채권단의 중재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대주주의 모습이 반복되자 외부에선 책임 의식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고개를 들고 있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화와 DL은 여천NCC 지원방안을 놓고 막바지 협의에 한창이다. 조만간 세부사항을 확정한 뒤 실행에 옮길 것으로 알려졌다.

지원안은 연내 최대 3000억원 규모의 대여금을 출자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채권을 주식으로 바꿔 부채비율을 낮추려는 포석이다.

앞서 한화와 DL은 각 1500억원을 여천NCC에 긴급 수혈한 바 있다. 자신들이 50%씩 출자해 설립한 여천NCC가 경영난으로 디폴트(채무불이행) 문턱에까지 닿은 탓이다. 하지만 이 조치는 역효과를 낳았다. 출자가 아닌 대여 형식이라 부채비율을 380%까지 끌어올리는 등 부작용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여천NCC가 발행한 일부 회사채에 부채비율이 400%를 넘어설 경우 조기 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붙어 늦어도 12월 안엔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와 함께 한화와 DL은 공급가격 협상도 매듭짓는다. 여천NCC가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에 공급하는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석유화학 제품의 가격을 시장 상황에 맞춰 합리적으로 조정한다는 방침이다. 일련의 논의와 작업이 마무리되면 여천NCC는 눈앞의 큰 고비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한화와 DL 측은 "확정되진 않았으나, 비슷한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는 것으로 안다"면서 "여천NCC로서는 재무구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다만 시장의 반응은 여전히 차갑다. 여천NCC에 대한 책임 주체인 한화와 DL이 서로 책임을 미루며 수수방관하다가 산업은행의 중재와 같은 외부 압박이 들어와야만 비로소 움직이는 패턴을 되풀이하고 있어서다.

돌아보면 지난 8월 여천NCC에 3000억원을 지원하는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3월 2000억원(한화·DL 각 1000억원) 증자 이후 불과 수개월 만에 다시 자금을 들여야 한다는 데 대한 양측의 생각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이들의 신경전은 대대적인 설전으로 번졌다. 먼저 DL은 여천NCC의 부실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 분석과 해결방안 마련이 먼저라며 상대방으로 책임을 떠넘겼다. 합당한 근거와 절차적 정당성 없이 증자를 강행하는 한화의 태도는 대주주의 책임을 강조한 상법의 원칙과 배치된다는 논리를 앞세웠다.

한화도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다. 앞선 국세청 세무조사 결과 등을 들춰내며 공세를 폈다. DL이 여천NCC로부터 에틸렌과 C4RF1 등 일부 제품을 시장가보다 낮은 가격에 납품받아 부당한 이익을 취한 것이 진짜 원인이라고 주장하면서다.

결과적으로 두 기업 모두 자금 대여를 결정하며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했지만, 서로를 향한 반감을 드러내면서 상처만 남긴 셈이 됐다.

최근의 3000억원 출자전환 건과 관련해서도 양측은 자존심 싸움을 계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화 또는 DL 측이 중간에 말을 바꿔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식의 흑색선전이 서로의 진영에서 감지된다.

이렇다 보니 시장에서는 두 기업이 여천NCC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산업은행이 양측 협상을 중재하는 모습 자체가 대주주의 무책임성을 방증한다는 지적이 상당하다. 두 기업에 과연 사업 의지가 있는 것이냐는 근본적인 질문도 따라붙는다. 건설과 방산 등 각자의 핵심 분야에 집중하느라 석유화학 사업을 후순위로 미뤄둔 것처럼 비친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대주주가 스스로 리스크를 관리하지 못한 채 마지막 순간마다 채권단의 개입을 기다리는 구조가 반복되면, 여천NCC의 체질 개선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면서 "한화와 DL이 갈등을 멈추고 자회사의 정상화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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