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중복상장 논란 속에서도 RFP 배포계열사 통합 직후 신성장 IPO로 전략 축 이동승계 정당성·재원 마련 등 고려한 '전략적 시점'
4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최대 산업용 로봇 기업인 HD현대로보틱스는 최근 국내 주요 증권사와 외국계 IB에 상장 주관사 선정용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배포했다. 이르면 연내 주관사가 확정되고, 내년 상반기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에서는 조 단위 몸값을 지닌 IPO '대어' 등장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밸류업 기조 속 IPO 채비···'중복상장' 논란, 이번엔?
HD현대는 그동안 HD현대로보틱스 상장과 관련해 "계획 없다"며 말을 아껴왔다. 지난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도 "1800억원 투자 유치 과정에서 상환·IPO 가능성을 논의했지만 상장은 하나의 옵션일 뿐"이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그러나 이번 RFP 배포는 논의가 실제 단계로 진입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정부가 '밸류업(Value-Up)' 정책을 앞세우면서 대기업 자회사 상장 움직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HD현대도 이 흐름에 발맞춰 IPO 준비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상법개정안 통과 역시 기업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대주주 중심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소액주주 권익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기업들의 IPO·M&A 추진 과정에 부담이 커졌다.
HD현대는 이러한 환경 변화에 대응해 계열사 통합을 선제적으로 단행하고 있다. 이달 조선 계열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가 합병해 '통합 HD현대중공업'이 출범했으며, 내년 1월에는 건설기계 계열 HD현대인프라코어와 HD현대건설기계가 통합된 'HD건설기계'가 출범한다.
다만 HD현대는 상장사 수가 많아질 때마다 '중복 상장' 논란에 휘말려왔다. 작년 HD현대마린솔루션 상장 당시에도 계열사 난립 지적이 제기됐다. 합병 작업 이후 상장사는 9개에서 7개로 줄었지만, HD현대로보틱스가 상장하면 다시 8개로 늘어나게 된다.
상법 개정 이후 의외의 행보···왜 지금인가?
업계에서는 HD현대로보틱스의 IPO 시점에 주목한다. 최근 상법 개정 이후 LS그룹 증손자회사 에식스솔루션즈 상장이 '중복 상장' 논란을 촉발한 상황에서, 유사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은 HD현대가 상장을 추진하는 것은 의외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잇단 계열사 합병으로 일부 리스크가 해소된 만큼 논란이 예전보다 약화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또한 조선·건설기계 등 본업의 중장기 경쟁력이 강화되고 미국발(發) 수주 호황이 이어지자, 로보틱스 등 신성장 사업을 본격 육성할 적기라는 판단도 겹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IPO는 지난 10월 정기선 회장 체제가 출범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추진되는 상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신사업 육성을 통해 승계 정당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향후 승계 비용 마련까지 고려한 '투트랙 전략'이란 해석도 함께 나온다.
정 회장의 취임으로 HD현대는 37년 만에 다시 오너경영 체제로 복귀했다. 정몽준 전 회장이 국회의원 당선으로 경영에서 손을 뗀 뒤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온 것을 감안하면 큰 변화다. 정 회장이 직접 경영전면에 나서면서 사업 확장 속도도 빨라질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 경영권 확보까지는 과제가 남아 있다. 최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26.60%)으로부터 지분을 승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정 회장의 지분율은 6.12%에 불과하다.
정 이사장이 보유한 HD현대 2101만 주의 가치는 4조원을 웃돌며, 현행 증여세율(60%)을 감안하면 납부해야 할 세금만 약 3조원에 이른다. 정 회장이 지난해 HD현대와 HD한국조선해양에서 받은 급여·배당금 합계(약 196억원)만으로는 승계 재원 마련에 한계가 명확하다.
이런 맥락에서 HD현대로보틱스 IPO는 정 회장에게 현실적인 승계 재원 확보 수단이 될 수 있다. 신사업 성장에 따라 '핵심 계열사 → HD현대 → 정기선 회장'으로 이어지는 배당 구조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HD현대의 지배구조 개편 흐름 속에서 추진되는 HD현대로보틱스 상장은 정기선 회장의 경영 전략과 비전을 드러내는 상징적 조치"라며 "이번 IPO는 승계 정당성과 리더십 기반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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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김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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