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상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공백 이후 사실상 '재계 대표 창구' 역할을 맡아왔다. 기업 규모를 가리지 않는 회원 구조, 비교적 중립적인 정책 메시지, 실무 중심의 소통 방식은 전경련과의 차별점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런 대한상의가 가짜뉴스 논란의 중심에 섰다는 사실 자체가 상징적이다.
문제의 본질은 숫자 하나의 오류가 아니다. 정책 논쟁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경제단체가 검증되지 않은 통계를 근거로 메시지를 던졌다는 점이다. 특히 상속세처럼 사회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에서, 불완전한 데이터는 '의견'이 아니라 '정책 도구'로 오해받기 쉽다. 이 순간부터 경제단체는 중립적 조언자가 아니라 이해관계자, 더 나아가 정치적 행위자로 인식된다.
이 지점에서 전경련의 전철이 소환된다. 전경련이 몰락한 결정적 이유는 단순히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책과 권력, 기업 이익이 뒤섞인 메시지가 반복되며 사회적 신뢰를 잃었고, 결국 "재계를 대표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는 점이 본질이다. 신뢰가 무너진 순간, 조직의 영향력은 순식간에 증발했다.
대한상의가 지금 마주한 상황은 그 출발점과 닮아 있다. 통계 오류 자체보다 위험한 것은, 이번 논란이 "대한상의도 결국 특정 방향의 정책 프레임을 만들려 한 것 아니냐"는 의심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상속세, 법인세, 노동 규제처럼 이해관계가 첨예한 이슈에서 경제단체가 반복적으로 논쟁의 중심에 선다면, 이는 구조적 문제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데이터 검증 시스템이 허술한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메시지가 먼저 정해져 있었던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 경제단체가 사실 전달과 정책 제언의 경계를 흐리는 순간, 그 신뢰는 빠르게 마모된다.
경제단체의 힘은 로비에서 나오지 않는다. 데이터의 정확성, 해석의 절제, 그리고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엄격한 기준에서 나온다. 기업의 입장을 대변할 수는 있지만, 사실을 가공해서는 안 된다. 정책 비판은 가능하지만 통계는 중립적이어야 한다. 이 기본 원칙이 무너지면 대한상의와 전경련을 가르는 선은 의미를 잃는다.
지금 대한상의에 필요한 것은 해명보다 구조 점검이다. 외부 자료 검증 절차는 충분했는지, 통계의 정의와 범위를 내부적으로 교차 검증했는지, 정책 메시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과도한 해석이 개입하지는 않았는지 되짚어야 한다. 이는 사과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전경련은 '정경유착의 상징'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한상의가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스스로 더 높은 기준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대한상의가 같은 길을 걷지 않으려면, 지금 이 논란을 단순한 실수로 넘겨서는 안 된다. 경제단체의 신뢰는 한 번 금이 가면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그 균열은 언제나 아주 작은 하나에서 시작된다.
뉴스웨이 신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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