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승계보다 중요한 건 버티는 경영 철학

오피니언 기자수첩

승계보다 중요한 건 버티는 경영 철학

등록 2026.03.17 14:31

이병현

  기자

창업자·장기 주주와 단기 투자자 권리 논쟁일몰제 차등의결권 등 대안 논의 부상실패를 견디는 연구개발 시스템 구축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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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CRO(임상시험수탁) 전문 업체 우정바이오가 2세 경영 출범 1년 만에 콜마홀딩스에 경영권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 35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 발행, 기존 경영진 사임, 최대주주 의결권 위임으로 이어진 일련의 흐름은 자본 앞에서는 피보다 돈이 진하다는 경영 현실의 냉정함을 보여준다.

우정바이오 사례는 창업주가 왕성히 활동하는 국내 바이오 업계의 맹점을 찌른다. 창업주 별세 후 2세 체제로 전환한다고 해서 경영이 곧바로 안착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문제는 자본력이다. 바이오 기업은 업종 특성상 장기 연구개발(R&D) 투자로 인한 재무 부담과 유동성 압박에 시달리기 일쑤다. 기존 CB의 풋옵션 청구 압박과 바닥난 현금 여력 앞에서는 전략적 투자자 유치라는 명분으로 경영권을 내어주는 것이 불가피한 선택이 된다. 바이오는 혈연만으로 버틸 수 있는 업종이 아니다. 실패를 견디는 자금력, 시장의 신뢰, R&D를 밀어붙일 냉철한 의사결정 능력이 필수다.

그렇다고 바이오 기업의 취약성을 단순히 '오너 2세 경영의 한계'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오스코텍 사례는 반대편의 위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수십 년간 R&D 성과를 쌓아온 훌륭한 창업자조차, 외부 자본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지분 희석 탓에 경영권 위협에 노출된다. 성장하려면 외부 자본이 필수적인데, 그 자본을 받을수록 창업자의 방어막은 얇아지는 것이 바이오 기업의 얄궂은 역설이다.

지분율이 취약해진 틈을 타 최근 자본시장에서는 바이오 기업을 향한 주주 행동주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러나 지금의 논의는 지나치게 이분법적이다. '경영자 편이냐, 소액주주 편이냐'는 식의 단순한 진영 논리로 흐르고 있다. 오랫동안 대주주의 사익 편취와 불투명한 의사결정으로 신뢰를 잃은 한국 자본시장에서 소수 주주 보호는 당연한 과제다. 그러나 주주 권리 강화가 곧 모든 행동주의의 정당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명분 없는 여론전이 결합하면, 견제와 감시로 시작된 움직임이 단순한 지분 뺏기나 맹목적인 정치 싸움으로 변질될 위험이 크다.

소수 주주 보호는 강화하되, 기업의 본질을 훼손하는 소모전은 경계해야 한다. 신약 개발은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이 걸리는 외로운 싸움이다. 그 시간 동안 창업자는 임상 실패, 규제 지연, 기술이전 무산, 주가 폭락의 쓴맛을 온몸으로 감내한다. 반면 일부 단기 투자자는 주가가 오르면 언제든 차익을 실현하고 떠난다. 장기 주주의 1주와 단기 투자자의 1주를 기계적으로 같은 무게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이 바이오 업계에서 유독 뼈아픈 이유다.

창업자 보호를 명분으로 편법 승계나 사익 편취를 용인하자는 뜻이 결코 아니다. 횡령이나 배임 같은 위법 행위에는 단호한 철퇴를 내려야 한다. 호흡이 긴 산업의 특성을 고려해 외부 자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창업자가 흔들리지 않고 R&D에 매진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제도적 방어 장치를 고민할 때가 됐다는 뜻이다. 일각에서 비상장 벤처에만 제한된 차등의결권을 일몰조항 등 엄격한 전제하에 확대 논의하거나, 장기 보유 주주에게 더 큰 목소리를 내게 하는 방안이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핵심은 재벌식 세습을 위한 '방패'가 아니라, 장기 혁신을 지탱할 '안전판'을 마련하는 데 있다.

자금난에 무너진 2세 승계와 지분율 하락에 흔들리는 창업자. 양극단의 두 사례가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하다. 한국 바이오 기업이 계승해야 할 것은 창업주의 성씨(혈연)가 아니라, 끈질긴 연구개발 철학과 책임경영 능력이다. 그리고 자본시장이 지켜주어야 할 것은 순간적인 표의 숫자가 아니라, 긴 실패의 시간을 견디며 혁신을 완성해 낼 수 있는 구조적 토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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