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알고리즘의 시대, 왜 서민경제가 먼저 흔들리나

오피니언 데스크 칼럼 남영동에서

알고리즘의 시대, 왜 서민경제가 먼저 흔들리나

등록 2026.04.15 17:29

이성인

  기자

reporter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들고 '이것'부터 찾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가 밤새 또 무슨 말을 했을까. 그의 한마디가 더는 미국 정치의 소음으로만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관세를 올린다. 협상을 접는다. 압박을 더한다. 이런 식의 멘트 하나가 환율과 유가, 투자심리를 한꺼번에 건드린다. 밤새 숫자는 신속하게 출렁인다. 뉴스가 차마 좇지 못할 정도. 2026년 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이렇듯 '변동성'(volatility)이다.

요동치는 트럼프-미국, 긴장이 상수가 된 중동, 전선을 좁힐 기미가 없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서로 다른 언어를 갖고 있지만 본질은 하나다. 더 세게, 더 끝까지, 타협 없는 극단. 이해보다 적대가, 숙고보다 속단이 지배한다. 문제는 이게 일부 지도자들만의 태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은 콘텐츠는 물론 의식의 흐름마저 알고리즘에 의존하는 시대다. 알고리즘이란 녀석은 중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더 오래 머물게 하고 더 빨리 반응케 하고자 극단적 편들기를 증폭시킨다. 거칠고 단순한 대중의 목소리가 커지고 일부 지도자들은 그 환호 속에서 어깨를 으쓱댄다. 알고리즘 안에서의 기묘한 대동단결. 최첨단 기술의 시대를, 가장 원시적인 감정들이 지배하는 꼴이다.

대가는 전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리나라처럼 에너지를 바깥에서 들여와야 하는 나라에선 그 파장이 일반 서민의 살림으로 곧장 번진다. 호르무즈를 둘러싼 공급 충격에 유가가 뛰면 물류비가 오르고, 물류비가 오르면 원자재와 식료품 가격이 흔들린다.

한 번 흔들린 공급망은 의지만으로 되돌릴 수 없다. 다시 안정되는 데 드는 건 시간보다 돈이고, 그 부담은 대개 마지막 소비자, 즉 평범한 시민의 지갑으로 넘어온다. 우리로선 장을 볼 때, 차에 기름을 넣을 때,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아들 때 그 여파를 고스란히 떠안는다.

이때 필요한 게 국가적 방파제다. 변동성에 대응 가능한 정교한 경제정책 말이다. 핵심은 한 가지, 기울지 않는 균형감각이다. 경제정책은 알고리즘의 극단성을 초월해야 한다. 손실을 나누고 충격을 완화할 디테일이 동반돼야 하는 것이다. 이념과 환호만 좇다 보면 세련미가 떨어지기 십상이다.

문재인 정부에선 소득주도성장이 최저임금 속도전에 매달린 나머지, 영세 현장의 부담과 취약계층 고용 불안을 키웠다는 비판이 있었다. 알고리즘 문법에 매달리다 못해 그 블랙홀 안으로 뛰어든 듯한 윤석열 전 대통령은, 카르텔 척결 논리로 R&D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등 운신의 폭을 스스로 좁혀댔다.

지금 보면 지향점은 달랐지만 귀결엔 닮은 면이 있다. 한쪽으로 기운 정책이 조정의 비용을 끝내 현장과 가계에 전가했다는 점이다. 결국 시장이 보는 건 신념의 선명함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신뢰 가능한 방향 신호이며, 시민이 체감하는 건 명분의 화려함이 아닌 덜컹거리지 않는 생계다. 경제정책의 핀포인트는 늘 그 지점에 놓여야 한다. 그래야 평균을 복원하고 변동성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

현 정부가 내놓는 정책들이 부디 그 감각에서 출발했기를 바란다. 최근 정부는 26조원대 추경 집행에 들어갔고, 중동발 공급 불안에 맞서 대체 원유 확보와 석유화학 원료 사재기 금지 조치도 서두르고 있다. 관건은 이 같은 대응이 바깥의 충격을 버틸 경제 내구성으로 축적되는가 하는 점이다. 경제정책이 따라야 할 건 이념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기본을, 다시 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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