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합 권한은 절대적, 책임은 공백···정비사업 갈등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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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 권한은 절대적, 책임은 공백···정비사업 갈등의 본질

등록 2026.05.06 13:48

권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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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형 정비사업장에서 반복되는 갈등은 우연이 아니다. 원인은 분명하다. 발주처인 조합이 쥔 과도한 권한, 그리고 그 권한을 통제할 장치가 없는 절차적 공백이다. 겉으로는 개별 사업장의 분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구조가 만들어낸 필연에 가깝다.

경기 성남 상대원2구역은 이 구조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조합은 DL이앤씨를 시공사로 선정한 뒤 '아크로' 브랜드 적용 등 사업 조건 변경을 요구하며 갈등을 키웠다. 계약 이후 핵심 조건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조합은 계약 해지를 의결하고 GS건설을 새 시공사로 내세웠지만 총회 정족수 논란과 법적 분쟁이 이어지며 사업은 사실상 멈췄다. 법원이 뒤늦게 DL이앤씨의 지위를 일부 인정했지만 이미 현장은 '시공사 공백'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경험했다.

대가는 고스란히 조합원 몫이다. 이주와 철거가 상당 부분 진행된 상황에서 착공이 지연되자 금융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누가 결정을 내렸는지와 관계없이 비용은 결국 조합원이 떠안는다. 권한과 책임이 완전히 어긋난 구조다.

서울 성동구 성수4지구도 다르지 않다. 롯데건설과 대우건설이 맞붙은 이 사업장은 애초부터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조합이 제시한 '하이엔드 시공 실적' 등 제한적 기준은 특정 업체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을 불렀다. 설계 제출 범위를 둘러싼 해석 충돌로 첫 입찰은 무산됐고 결국 관할 관청까지 나서는 상황으로 번졌다. 조합이 쥔 입찰 설계 권한이 시장을 왜곡하고 그 대가는 사업 지연으로 돌아온 전형적인 사례다.

이 두 사례는 공통된 사실을 말해준다. 조합은 사업의 방향을 좌우할 권한을 쥐고 있지만 그 결정의 비용과 리스크는 외부로 흩어진다. 계약 이후에도 브랜드, 설계, 공사비 같은 핵심 조건이 뒤바뀔 수 있는 구조에서는 어떤 사업자도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없다. 결국 남는 것은 분쟁뿐이다.

이미 시장은 반응하고 있다. 건설사들은 리스크가 큰 정비사업장을 외면하거나, 과도하게 보수적인 조건을 내세운다. 그 결과는 뻔하다. 경쟁입찰은 사라지고 수의계약이 일상화된다. 경쟁이 사라진 시장에서 공사비와 품질이 왜곡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문제는 더 이상 개별 사업장의 갈등이 아니라 시장 구조 자체다. 그런데도 제도는 여전히 이를 방치하고 있다. 입찰 기준은 사업장마다 제각각이고, 계약 이후 조건 변경을 제어할 장치는 사실상 없다. 이 상태에서 '공정한 경쟁'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해법은 명확하다. 입찰과 계약 기준을 표준화하고 공사비 산정과 설계 변경 범위를 사전에 고정해야 한다. 계약 이후 조건 변경은 예외적인 경우로 제한해야 한다. 조합 의사결정 과정에는 외부 검증을 의무화해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시공사 교체 역시 명확한 계약 위반이 입증된 경우로 한정해야 한다.

도시정비사업은 민간이 주도하지만 공공성이 강한 영역이다. 그럼에도 지금 구조는 권한은 조합에, 책임은 시장에 떠넘기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 불균형을 바로잡지 않는 한 갈등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정비사업은 더 이상 '개발'이 아니라 '협상력 경쟁'에 가깝다. 제도가 이를 방치하는 한, 시장은 계속 왜곡될 것이다. 문제는 이미 충분히 드러났다. 이제는 손을 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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