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디지털 금융 시대: 금융의 온-체인화가 갖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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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금융 시대: 금융의 온-체인화가 갖는 의미

등록 2026.05.19 11:00

다양한 자본 효율화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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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립토 부문의 혁신적 시도가 레거시 금융권으로 이어지며, 디지털 금융 시대의 주역 자리를 두고 협력과 경쟁(co-opetition)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글로벌 규율 체계가 표준화·동기화되고 명확해지면서 이를 토대로 글로벌 디지털 금융 시장이라는 거대한 판도 변모하고 있다.

분산원장 기술(DLT)은 온-체인으로 전환해 가는 금융시장 활동을 뒷받침하는 기반 기술로 녹아들고, 법규 준수를 중시하는 전통 금융기관들의 진입과 참여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전통 금융이 크립토 시장으로 진입한다기보다는 '흡수'하는 양상에 가깝다. 레거시 금융 리더 그룹에 속하는 기관들과 금융업체들은 크립토 네트워크의 작동 엔진인 '분산원장 기술'을 가져와 그들의 안방을 리모델링하며 혁신에 나서고 있다. 월가와 빅테크는 금융의 작동 기제와 인프라를 뜯어고치며 협력하고 있다. 마치 금융의 판을 갈아엎는 거대한 중장비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미국 DTCC의 예탁 증권 토큰화와 시장의 토큰증권 매매 시범 운영

지난해 12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DTCC(증권예탁결제공사)의 자회사인 DTC에 비-조치 의견서(no-action letter)를 내줬다. DTC는 DTCC에 예탁된 증권을 토큰화하는 파일럿 버전의 운영을 앞두고 SEC에 비-조치를 요청했고, SEC의 여러 우려도 해소했다.

3년간 운영될 예탁 증권 토큰화 파일럿 버전의 운영 방식과 통제 장치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는 ▲참가자와 대상 증권 적격 제한, ▲참가자의 토큰화 선택권, ▲디지털 옴니버스 계정(중복 사용 방지), ▲토큰 발행·전송 시스템(Factory), ▲추적과 기록(레저 스캔), ▲등록 지갑 간 이전만 허용, ▲관리자 제어키(루트 지갑 권한) 등 7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참가자 적격은 법규 준수가 요구되는 자들로 제한되고, 토큰화 적격 대상 증권은 Russell 1000 Index, S&P 500, Nasdaq 100 등 주요 지수를 추종하는 ETF에 편입된 증권이다.

그 범위가 제한되지만 우리나라가 「전자증권법」 및 「자본시장법」 개정 법률을 통해 예정하고 있는, '비-금전 신탁 수익증권'(조각투자형)과 투자계약증권 등 비정형 증권의 토큰화에 그치는 모델과는 큰 차이가 있다. DTC 적격 참여자는 예탁된 증권에 대한 권리를 기존의 중앙 원장 대신 분산원장 기술을 사용해 기록하는 방안을 선택하게 되고, 토큰화 지시를 받은 DTC는 대상 증권을 참가자 계정에서 차감해 '디지털 옴니버스 계정'으로 옮겨 놓고 'Factory 시스템'에서 토큰을 발행해 참가자들의 '등록 지갑'으로 전송한다.

기저의 증권 자체는 옴니버스 계정에 묶여 중복해서 사용될 수 없게 하면서, 권리를 표시한 토큰만 이전되도록 한다. 증권 권리가 토큰화된 상태에서도 대상 증권은 DTC의 명의로 유지되면서 투자자 보호 체계는 변함없이 적용된다. 토큰은 토큰화 권리 보유자인 참가자 등록 지갑들로만 이전되며, 토큰의 모든 이전은 '레저스캔'으로 실시간으로 추적되고, 그 기록은 DTC의 공식 장부로 간주된다. 중요한 통제 장치의 하나는 '관리자 제어키'다. DTC는 오류 수정이나 부정행위를 바로잡기 위해 토큰을 강제로 이전·발행·소각할 수 있는 '루트-지갑' 권한을 보유하게 된다.

문제는 증권 중개업자를 거쳐 DTC 명의로 간접 보유되는 증권에 대한 권리를 보유하는 투자자에 대한 보호 장치가 토큰화 환경에서도 작동되도록 하는 것이다. 앞서 미국에서는 2022년 제안된 통일상법전(UCC) 개정판 제12조에 새롭게 "배타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전자적 기록"(Controllable Electronic Records, C.E.R.)이라는 법적 개념을 신설해 증권 중개업체를 통한 투자증권의 간접 보유 체계를 규정한 제8조와 연결되도록 했다. UCC 제8조는 간접 보유되는 증권에 대한 권리, 당사자 간 합의로 증권 계정에 입고된 모든 자산을 '금융자산'으로 간주하는 규정이어서 토큰화된 증권도 수탁기관 계정에 입고되면 제8조에 따라 보호되는 '금융자산'으로 취급된다. DTC의 비-조치 요청서에는 제8조를 적용받는 '증권중개기관'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나스닥(Nasdaq)과 뉴욕증권거래소(NYSE)도 토큰화 증권 매매 시범(파일럿) 운영에 나섰다. 그러한 시범 사업은 '2022년 UCC 개정', 'DTC의 토큰화 잠정 기본 버전' 및 '시장 운영 주체의 매매 규칙'에 대한 SEC의 승인에 따른 종합적 결과물이다. 수장이 바뀐 뒤 금융의 온-체인화 등 "Project Crypto" 정책을 추진해 온 SEC는 DTC, 나스닥 등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제기됐던 우려를 해소하면서 토큰화 방식과 매매 규칙을 조율했다. 2025년 12월 DTC에 토큰화 관련 비-조치 의견서를 내준 데 이어 2026년 3월 나스닥의 매매 규칙 변경안을 최종 승인했다. 4월에는 NYSE도 같은 맥락의 규칙 변경안을 제출했다.

나스닥의 매매 규칙 변경은 SEC의 비-조치 의견서에 적시된 조건으로 DTC가 운영할 토큰화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증권을 토큰화된 형태로 매매할 수 있도록 매매-후(post-trade) 프로세스를 정교하게 설계한 것이다. 그 특징은 크게 ▲통합 매매, ▲DTC 파일럿과의 연계, ▲토큰화 지시 선택 방식, ▲증권 규제의 일관된 적용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토큰화된 증권은 전통적인 대응물로 대체될 수 있어야 하므로 대체-가능성을 전제하는 통합 매매 체계를 운영한다. 종목 번호('CUSIP' 코드), 거래 심볼, 주주 권리도 같다. 전통 주식과 토큰화된 주식은 주문창과 실행 우선순위에서 동일하다. 주문·체결·결제 등 증권 인프라 체계 모두가 기존대로 유지된다. 전통 증권과 토큰 증권은 '표창'하는 방식만 다를 뿐 의결권·배당권 등은 동일하다. 결제 단계에서 DTC가 분산원장 형태로 기록하는지만 달라질 뿐이다.

둘째, DTC의 증권 토큰화 파일럿과 통합되므로, 참여자와 적격 대상 증권도 'DTC 적격 참여자', 'DTC 토큰화 적격 증권'으로 동일하다.

셋째, 토큰화 지시다. 상장사들은 그 주식이 토큰화되는 방식과 장소 통제를 DTC에 요구할 수 있고, 적격 참여자들은 매매를 토큰화된 형태로 청산·결제할지 주문창에서 지정 표식(designated flag)을 선택해 그 선호 방식을 표시하게 된다. 나스닥은 대리인 역할을 하면서, 사후-매매 절차로서 그 지시를 DTC에 전달하면, DTC는 자체 규칙·정책·절차에 따라 토큰화 선택지를 실행하거나, 그 지시를 실행할 수 없다면 전통적 형태로 결제하게 된다. 토큰화 여부를 주문자가 선택할 수 있는 '옵-트인'(opt-in) 방식이다. 개정 「전자증권법」에서 발행계좌관리기관이 토큰증권을 발행하고, 그 발행된 토큰증권의 매매는 종전의 '전자증권' 형태로 이루어지도록 예정한 우리나라의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넷째, 증권 규제의 일관된 적용이다. 본질은 증권이므로, 토큰화된 증권과 전통 증권을 구별하지 않고 매매 시스템과 절차의 운영은 동일하고, 주문 유형, 라우팅 전략, 수수료 체계도 변경되지 않고 시장 데이터의 제공에서도 구별이 없다. 증권만 토큰으로 이동하고, 매매대금은 오프체인 은행망을 통한 T+1 결제가 이루어진다. 증권 법규 적용의 '예외·면제'가 아니라 '기존 규칙으로의 편입'을 통해 투자자 보호나 시장 감시, 가격 발견 등의 기능에 손상을 초래하지 않으면서 거래 경험은 기존과 같게 유지하며, 백-오피스 처리의 혁신을 도모하고 있다.

한편, 나스닥은 매매 시간을 '하루 23시간, 주 5일'(23/5)로 개편하는 등 시장 접근성 확대와 경쟁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향후 과제는 크립토 시장과 같은 24/7, 결제용 스테이블코인 등 온-체인 디지털화폐를 통한 증권-대금 교환(DvP) 동시 결제(T+0) 체계로의 전환이다.

"시간을 팔겠다"는 CME 그룹

미국에서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시장 시설(SIFMU)로도 지정되어 있고, 글로벌 최대의 파생상품 거래소로서 세계에서 가장 큰 장부(order book)를 유지하고 있는 CME 그룹은 최근 전략적으로, 24시간 돌아갈 실시간 청산 시스템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예금 토큰(JPM Coin 등) 부문이 '돈을 빨리 보내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데 비해, CME 그룹의 행보는 증거금으로 묶인 돈과 담보 자산을 유동화해 '자본 효율성'(capital efficiency)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구글 클라우드와 손잡고 GCUL(Google Cloud Universal Ledger) 가동을 통해 '초-저지연'(ultra-low latency) 거래 환경을 구현하고, 기관 투자자들이 맡긴 국채나 현금 담보를 토큰화해 24시간 365일 멈추지 않고 증거금 정산이 가능하도록 '결제 칩' 역할을 해줄 'CME 토큰'까지 도입할 계획이다. 24시간 돌아가는 실시간 청산 시스템이 구축되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기존 메인 프레임 전산망으로는 24/7 돌아가는 크립토 시장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상황 인식이 자리한다.

비트코인 선물시장은 주말에도 돌아가는데, CME 은행 결제망은 주말엔 쉰다. 시장 상황이 급변해도 증거금을 즉시 납부할 수 없어 강제 청산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 토큰화된 담보로 증거금 정산이 실시간으로 가능해지면, 금요일 밤이면 은행 문이 닫혀 꼼짝없이 묶여야 했던 수조 원의 자금이 주말에도 자유롭게 유동화될 수 있게 된다. CME의 전략은 클라우드 전환, 범용 원장(GCUL), 나아가 담보 자산의 토큰화(CME 토큰)라는 3대 전략을 통해, 블록체인의 '실시간성'이라는 기술적 효율을 제도권 금융 인프라 교체에 접목하며 자본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이는 '통합원장'(Unified Ledger)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국제결제은행(BIS)의 언급과도 같은 맥락이다. 통합원장 시대가 되면 토큰화된 중앙은행 준비금, 상업은행 화폐 및 금융자산이 한곳으로 모이고, 토큰화의 전체적 이점을 강화할 수 있게 된다. 토큰화는 전통적인 원장 위에 존재하는 실물자산이나 금융자산에 대한 권리를 프로그램화가 가능한 플랫폼에 기록하는 프로세스다.

이를 통해 디지털 형태의 금전과 자산들에 관한 메시징, 대사, 이전이 단일의 막힘없는 운영에 통합되고, 스마트 컨트랙트로 조합하는 금융(composable finance)도 구현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형태의 금융시장 인프라도 출현할 것이다. 디지털 신원(digital ID), 디지털자산, AI-에이전트 금융, 양자-내성 암호화(PQC)와 효율적으로 결합하면 BIS가 예측했던 핀터넷(Finternet) 시대도 열릴 것이다.

한편으로는, '돈에 대한 신뢰'도 여전히 중요하다. 그 준비자산 구성 요건과 이용자 보호 장치가 법적으로 명확해지면서 법정화폐 담보형 스테이블코인의 글로벌 채택과 사용 기반이 확장되고 있다. 2026년 3천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달러-기반 스테이블코인 비중이 98.1%를 차지할 정도로, 디지털-달러 패권도 강화되는 추세이고, 무역 대금 정산이나 가치 저장, 나아가 토큰화된 자산의 교환을 매개하는 대체 수단으로도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추세는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국내의 레거시 금융권과 크립토 부문 역시 글로벌 협력과 경쟁 환경에서 생존해 나갈 발판이 명확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민사·상사적 법률행위에 관계되는 기본 법제뿐 아니라, 규제법 부문에서도 규칙과 제도를 명확히 설계할 역량이 그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고,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국 금융의 인프라 혁신을 어떻게 할지도 깊이 고민할 때가 지금이다.

이해붕 업비트 투자자보호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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