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성장성 높은 신사업 중심 보고서 변화현금창출-플랫폼구축-연구개발 투자로 차별화실제 사업성과·성과지표 제시가 관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ESG 보고서)가 단순한 탄소 감축이나 사회공헌 실적 요약본을 넘어 미래 사업 전략을 상세히 담아낸 '사업계획서'로 진화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신약 개발부터 항체약물접합체(ADC), 방사성의약품(RPT), 표적단백질분해제(TPD), 세포·유전자치료제, 디지털 헬스케어, 우주 생명과학까지 성장 가능성이 높은 차세대 핵심 사업이 ESG 전략과 맞물려 제시됐다.
13일 뉴스웨이가 제약·바이오 기업과 그룹이 발간한 최신 지속가능경영·통합보고서 22개를 분석한 결과, 업계의 미래 먹거리는 크게 ▲AI·디지털 전환 ▲ADC 등 차세대 치료 기술 ▲CDMO와 글로벌 생산 거점 ▲디지털·우주·에스테틱 등 헬스케어 서비스로 나뉘었다.
다만 모든 '미래 먹거리'가 다 같은 출발선에 서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매출과 처방 실적을 내는 제품이 있는가 하면, 이제 막 임상시험과 허가 절차를 밟는 후보물질도 존재한다. 일부 사업은 아직 공동연구나 플랫폼 구축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어, 상용화까지 남은 거리는 기업별로 큰 격차를 보였다.
세노바메이트·케이캡, 이미 돈 버는 미래 먹거리
가장 앞선 사업은 기존 제품의 글로벌 확장과 후속 파이프라인 투자가 동시에 이뤄지는 '현금창출형'이다.
SK바이오팜은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를 중심으로 현재의 수익성과 미래 비전을 긴밀하게 연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세노바메이트 관련 매출은 683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으며, 글로벌 누적 처방 환자는 27만 명을 훌쩍 넘겼다. 회사는 미국 내 직접판매 체제와 유럽·아시아 시장 확대를 발판 삼아 세노바메이트의 연령·적응증·제형을 확장하고, 여기서 창출된 수익을 중추신경계(CNS) 파이프라인과 RPT, TPD, AI 연구개발에 적극 재투자한다는 구상이다.
HK이노엔도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케이캡을 미래 성장 중심에 배치했다. 케이캡의 2025년 매출은 1957억원으로 전사 매출의 18.4%를 차지했다. 지난해 말 기준 55개국과 기술수출 또는 완제수출 계약을 체결했으며, 한국을 포함해 22개국에서 허가받고 19개국에서 출시됐다. 신약·바이오 파이프라인 23종과 개량신약 4종을 보유했고 매출의 약 8%를 연구개발에 투입했다.
파마리서치는 재생의학 기술을 의료미용 시장에서 수익화한 선도 사례다. 핵심 플랫폼인 DOT 기술을 활용해 PN·PDRN 기반 의료기기와 의약품, 화장품을 개발하고 있으며, 대표 제품 리쥬란은 약 30개국에서 품목허가를 취득했다. 회사는 2025년 연매출 5000억원을 넘어선 데 이어 미국·싱가포르 법인과 화장품 전용 제5공장 등을 통해 글로벌 에스테틱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미래 성장 전략을 설명하면서 현재 매출, 환자 수, 출시 국가와 같은 검증 가능한 지표를 함께 제시했다는 데 있다. 기존 핵심 제품의 수익성과 글로벌 확장을 바탕으로 후속 신약과 새로운 플랫폼에 투자하는 구조가 비교적 명확하다.
생산시설도 미래 먹거리···삼성바이오·에스티팜·셀트리온 증설 경쟁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생산 수요를 흡수하려는 CDMO와 생산 플랫폼도 주요 성장축으로 부상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생산능력, 포트폴리오, 글로벌 거점을 각각 확대하는 '3 업(UP)' 전략을 내세웠다. 지난해 제5공장 가동으로 총 생산능력을 84만5000리터까지 높였으며, 글로벌 고객사 145곳 이상, 누적 수주금액 212억달러, CMO 107건과 CDO 164건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기존 항체의약품 생산을 넘어 ADC 전용시설 가동, mRNA, 이중항체, 세포·유전자치료제 제조를 추진하고 있으며 신약 후보물질 평가를 지원하는 오가노이드 서비스도 시작했다.
에스티팜은 올리고핵산 치료제 CDMO에 집중한다. 2025년 매출은 3317억원, 영업이익은 549억원을 기록했고 전체 올리고 매출의 73%가 상업화 프로젝트에서 발생했다. 제2올리고동 준공으로 올리고핵산 원료의약품 생산능력을 연간 6~8몰 규모로 확대했으며, mRNA와 원형 RNA, 지질나노입자 등 RNA 치료제 플랫폼도 강화하고 있다. 임상 프로젝트가 상업생산으로 전환될수록 장기 매출이 확대되는 구조다.
셀트리온은 11개 바이오시밀러를 기반으로 2038년까지 포트폴리오를 41개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지난해 연구개발비는 4824억원으로 매출의 11.6%였으며, ADC와 다중항체, 마이크로바이옴 등 신약 영역도 확장 중이다. 국내 25만리터 생산설비에 더해 미국 브랜치버그 6만6000리터 생산시설을 인수했고 향후 미국 생산능력을 14만1000리터까지 늘릴 계획이다.
삼성에피스홀딩스(삼성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시밀러 11개 제품을 40여개국에 공급한 사업 기반 위에서 신약으로 영역을 넓힌다. 2025년 연구개발 투자액은 약 2500억원, 연구개발 인력 비중은 약 72%로 나타났다. 바이오시밀러 외 신약 파이프라인 2개를 확보하고 ADC와 유전자치료제, 비만 치료제 전달 기술을 오픈 이노베이션 방식으로 개발하고 있다.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공장은 단순한 제조 공간이 아니라, 수주 경쟁력과 공급망 안정성을 담보하는 핵심 자산이다. 그러나 대규모 증설은 수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가동률 하락과 고정비 부담 리스크로 직결될 수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역시 이번 보고서에서 신규 공장 가동 이후 충분한 물량을 적기에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을 잠재 리스크로 투명하게 명시했다.
AI, 신약 후보 발굴에서 환자 관리까지 확산
올해 보고서에서 가장 폭넓게 등장한 미래 성장 수단은 AI와 디지털 전환이다. 과거에는 업무 자동화나 데이터 관리가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후보물질 발굴, 제조공정 최적화, 임상·허가 대응, 환자 관리와 디지털 치료까지 적용 영역이 확장됐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AI와 디지털 트윈을 바이오시밀러와 신약 개발 전 과정에 적용하고 있다. 정부 주도 컨소시엄을 통해 2027년까지 AI가 설계한 항체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회사가 실제 치료제 개발을 담당하는 구조다. AI를 후보물질 발굴뿐 아니라 제조공정 모델링과 임상·허가 대응에도 활용한다.
대웅제약은 미래 연구개발의 핵심 키워드를 'AI와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정했다. 업계 최초 AI신약팀을 신설하고 약 8억종의 분자 모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으며, ADC 전문 기업과 공동개발 기회를 찾고 있다. 치료 중심에서 예방·관리로 사업 영역을 넓히기 위해 병원과 지역사회, 가정을 연결하는 AI 기반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도 추진 중이다.
JW중외제약은 자체 개발한 AI 신약 플랫폼 '제이웨이브(J-WAVE)'를 고도화하는 한편, 미국 템퍼스AI의 방대한 임상·병리 데이터와 환자 유래 오가노이드를 융합해 항암 신약 연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동아ST 역시 AI를 신약 R&D의 핵심축으로 설정, 2026년 1분기 기준 혁신 신약·바이오시밀러·개량신약 부문에서 21개 과제를 운영 중이다. 셀트리온제약도 AI 예측 분석과 오가노이드 플랫폼을 통해 후보물질 설계 및 비임상 연구의 성공 확률을 높이고 있다.
일동제약은 전사 AX 전환과 AI 신약개발을 병행하고, HK이노엔은 'AI 기반 혁신·디지털 거버넌스'를 최상위 중요 주제로 선정했다. 광동제약은 약국 경영 통합 플랫폼 '굿팜'을 통해 의약품 발주와 재고, 고객관리, 스마트 복약상담을 연결하며 디지털 헬스케어를 신성장 동력으로 제시했다.
AI 효과를 실제 사업 성과로 판단하려면 플랫폼 이름이나 데이터 규모보다 후보물질 발굴 건수, 개발 기간 단축, 임상 진입률, 비용 절감액과 같은 결과 지표가 필요하다. 일부 기업은 분석 기능 수나 공동연구 현황을 공개했지만 상당수 보고서는 아직 AI 도입 계획과 정성적 기대효과를 설명하는 수준에 그쳤다.
GLP-1·ADC·RPT···임상 단계가 '상용화 거리' 가른다
후보물질 중심의 R&D 기업에서는 임상 및 허가 진척도가 곧 미래 먹거리의 현실성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다.
일동제약은 GLP-1 계열 비만 치료제 후보물질의 임상 1상 톱라인 결과를 공개했고, P-CAB 계열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는 임상 3상에 진입했다. 폐섬유증 신약 후보물질은 미국 식품의약국에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됐다. 회사는 후속 기술수출과 글로벌 시장 진출을 주요 수익화 경로로 제시했다.
유한양행은 레이저티닙의 글로벌 판매 확대와 함께 퇴행성 디스크 치료제 임상 3상, 위장관 운동장애 및 알레르기 치료제 임상 2상, 면역·표적항암제 임상 1·2상을 진행하고 있다. 대사질환에서는 비만과 대사이상 지방간염 치료제를 집중 개발하고 AI와 차세대 플랫폼, 오픈 이노베이션을 후속 성장 기반으로 삼았다.
종근당은 고도비만 치료제와 표적항암제, 빈혈 치료제 바이오시밀러를 차세대 성장축으로 제시했다. 종근당바이오는 국내 허가를 받은 보툴리눔 톡신과 마이크로바이옴 CDMO, 프로바이오틱스로 포트폴리오를 넓히고 있다. 지난해 보툴리눔 톡신의 매출 비중은 4.7%로 아직 크지 않지만, 치료 적응증과 이슬람권 시장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2025년 연구개발비 1558억원, 포트폴리오 23개, 임상개발 제품 5개를 공시했다. 백신 중심 사업을 송도 글로벌 R&PD센터와 해외 생산·개발 네트워크, 바이오 벤처 투자로 확장하고 있다. 동아쏘시오그룹은 동아ST의 신약·디지털 헬스케어, 에스티팜의 올리고 CDMO, 앱티스의 ADC 기술을 묶어 그룹 단위의 바이오 생태계를 구축하는 구조다.
한독은 희귀질환 치료제와 디지털 치료기기, AI·디지털 전환을 신성장 동력으로 명시했다. GC는 희귀질환 치료제와 차세대 백신, 알리글로의 글로벌 공급망, AI 건강검진 분석과 전자의무기록 기반 '메디컬 OS'를 미래 헬스케어 축으로 제시했다. 휴온스그룹은 전문의약품과 보툴리눔 톡신, 바이오시밀러·CDMO, 의료기기와 에스테틱을 계열사별 포트폴리오로 구성했다.
보령, 우주 선제 투자 지속
가장 이색적인 미래 사업은 보령의 우주 헬스케어다. 보령은 지구 저궤도를 생명과학 연구 공간으로 활용하는 플랫폼을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우주 기업과 연구기관의 실험을 연결하고 연구자와 미래 세대가 참여하는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2025년에는 액시엄 스페이스의 민간 우주비행 Ax-4 미션과 연계해 학생들이 제안한 연구 아이디어를 국제우주정거장에 전달했다. 페니실린 생산 인프라와 세포독성 항암제 글로벌 사업처럼 당장 공급망과 매출에 연결되는 사업과, 우주 생명과학이라는 장기 옵션을 한 보고서에서 함께 제시한 셈이다.
다만 이번 보고서에도 우주 헬스케어 사업의 구체적인 매출 타깃, 대규모 투자 회수 시점, 구체적인 상업화 로드맵은 담기지 않았다. 선도적 연구 생태계 조성과 글로벌 기업 브랜드 가치 제고 측면에서는 막대한 선점 효과가 기대되지만, 향후 사업성을 입증하려면 유료 고객 수, 연구 계약 규모 확보, 독점적 지식재산권(IP) 창출 등 추가적인 비즈니스 모델 검증이 필수적이다.
한편 SK바이오팜의 RPT·TPD, 삼성에피스홀딩스의 유전자치료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세포·유전자치료제 생산도 장기 선택지에 가깝다. 이들 사업은 높은 성장 잠재력과 함께 원료 확보, 규제, 임상 성공률, 설비 투자 등 불확실성도 크다. 미래 성장 가능성을 살필 때 기술의 유망성만큼 사업 리스크와 자본 투입 계획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미래 먹거리' 기대감 제각각
22개 보고서에 나타난 '미래 먹거리'를 사업 성숙도에 따라 나누면 ▲매출과 처방이 발생하는 상용화형 ▲임상·허가 단계가 확인되는 파이프라인형 ▲공동연구와 플랫폼 구축 중심의 장기 옵션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가장 구체적인 보고서는 제품 매출과 환자 수, 연구개발 투자액, 임상 단계, 생산능력과 수주 실적을 함께 공개했다. 반면 일부 보고서는 AI, ADC, 디지털 헬스케어와 같은 유망 키워드를 제시하면서도 누적 투자액과 후속 마일스톤, 상업화 목표연도, 예상 수익모델을 명시하지 않았다.
각 보고서가 자체적으로 밝힌 것처럼 미래 예측 정보는 경영진의 가정과 기대를 토대로 작성되며 실제 결과와 달라질 수 있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미래 사업 설명을 투자 성과로 곧바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향후 기업 간 미래 성장성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신약의 경우 현재 개발·허가 단계, 다음 마일스톤과 목표 시점 등을 꼼꼼히 살필 필요가 있다. 또 제약·바이오 기업의 장기 성장성 측면에서는 누적 투자액과 연간 연구개발비 등이 중요하다. 특히 AI 플랫폼은 후보물질 도출과 개발 기간 단축 성과를, 생산시설은 확보한 수주와 예상 가동률을, 신약은 임상 단계와 후속 기술수출 가능성을 중심으로 평가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ESG 보고서가 미래 사업 전략을 전면에 내세우는 흐름 자체는 제약·바이오 산업 고유의 특성이 반영된 변화라고 보고 있다. 혁신적인 치료제를 개발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일은 기업 성장인 동시에 환자의 치료 접근성과 보건의료 체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유럽제약산업협회(EFPIA)는 최근 생명과학 산업 경쟁력 보고서에서 경쟁력의 핵심을 "과학적 역량을 승인된 제품으로 전환해 환자와 글로벌 시장에 대규모로 전달하는 능력"이라고 규정했다. 보고서는 생명과학 산업의 성패를 연구 성과 자체가 아니라 연구·혁신과 임상, 규제, 상업화, 생산·공급을 거쳐 환자에게 도달하는 전 과정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제약·바이오 기업의 미래 먹거리도 AI, ADC, 디지털 헬스케어 등 기술 이름이나 초기 연구계획보다 임상 진입과 허가, 생산능력 확보, 시장 출시와 환자 접근으로 이어지는 실행 경로가 구체적으로 제시됐는지가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뉴스웨이 이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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