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매매만 묶는 사이드카···"시장가격 왜곡" 비판 해외는 폐지·축소 수순···전문가 "시장 변화 맞춰 바꿔야"거래소 "현·선물 충격 막는 안전판···필요하면 제도 개선"
올해 들어 국내 증시에서 사이드카가 68차례나 발동하면서 30년 된 시장안정장치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반복되는 발동에도 변동성 완화 효과를 입증하지 못한 데다 시장 가격 형성까지 왜곡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 알고리즘 거래 시대에 맞춰 발동 기준과 운영 체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코스피 지수가 장중 전 거래일보다 10% 이상 급락하면서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이후 낙폭이 더 확대되면서 1단계 서킷브레이커까지 울렸다.
같은 날 코스닥시장에서도 지수가 7% 이상 하락하면서 매도 사이드카가 나왔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에서 각각 사이드카가 울리면서 올해 발동 횟수는 코스피 42회, 코스닥 26회 등 총 68회로 늘었다.
2025년 3회→올해 42회···불안감 높아진 투자자
사이드카는 선물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 급등락할 경우 프로그램매매 호가의 효력을 5분간 정지하는 시장안정장치다. 유가증권시장은 1996년 11월 25일, 코스닥시장은 2001년 3월 5일 처음 도입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사이드카가 시장 변동성을 완화하는 본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올해 발동 횟수가 68회에 달할 정도로 일상화됐지만 상당수는 급락이나 급등 흐름을 되돌리지 못했다. 시장에서는 반복되는 사이드카가 투자심리를 안정시키기보다 오히려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코스피 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연간 26회로 가장 많았고 코로나19 충격이 있었던 2020년에는 7회에 그쳤다. 이후 2024년 2회, 2025년 3회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7개월 만에 42회까지 늘며 역대 최다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코스닥시장도 2008년 19회 이후 2020년 6회, 2024년과 2025년 각각 2회에 머물렀으나 올해는 26회로 역대 가장 많은 발동 횟수를 기록했다.
프로그램매매는 선물과 현물 간 가격 차이를 활용하는 차익거래와 여러 종목을 일괄 매매하는 비차익거래로 구분된다. 대부분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대량 주문이 동시에 체결되는 만큼 시장이 급등락하는 상황에서는 프로그램매매가 한 방향으로 집중되며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 사이드카는 이 같은 프로그램매매가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프로그램매매 호가를 5분간 제한하는 장치다.
베이시스 왜곡·마그넷 이펙트···한계 드러낸 사이드카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행 사이드카가 시장을 안정시키기보다 오히려 시장 가격 형성을 왜곡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발동 기준은 선물시장인데 실제 제한 대상은 현물 프로그램매매여서 선물과 현물 간 가격 차이를 조정하는 차익거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어준경 연세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뉴스웨이와의 통화에서 "사이드카는 발동 기준은 선물인데 실제 멈추는 것은 현물 프로그램매매라는 점에서 구조적으로 기형적인 제도"라며 "선물가격이 급락하면 차익거래를 통해 선물과 현물 가격 차이가 정상적으로 조정돼야 하는데 현물 매도가 제한되면 오히려 베이시스(선물·현물 가격 차이)가 더 왜곡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올해처럼 사이드카가 수십 차례 발동됐는데도 시장 변동성이 줄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시장 안정 효과보다 가격 왜곡이라는 부작용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투자자들이 발동 시점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사이드카는 코스피200 선물이 5% 이상 움직이면 발동하도록 기준이 고정돼 있다. 이 때문에 가격이 발동 직전 수준에 근접하면 거래 정지 전에 주문이 몰리면서 오히려 가격이 발동 기준으로 빠르게 쏠리는 '마그넷 이펙트(Magnet Effect·자석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어 교수는 "5%라는 기준이 공개돼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4.8%, 4.9%만 돼도 곧 사이드카가 발동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예측 가능성이 오히려 가격을 발동 구간으로 끌어당기는 자석효과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美 '룰80A' 폐지···프로그램매매 규제 '한국만'
실제 해외 주요 증시에서는 프로그램매매만을 제한하는 사이드카와 동일한 제도를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1987년 블랙먼데이 이후 프로그램매매를 제한하는 '룰 80A(Rule 80A)'를 도입했지만 시장 구조 변화와 전자거래 확산에 따라 2007년 폐지했다.
현재 미국은 시장 전체 거래를 일시 중단하는 서킷브레이커와 개별 종목의 급등락을 제한하는 LULD(Limit Up-Limit Down)를 중심으로 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영국과 일본, 홍콩 등 주요 시장도 프로그램매매만 별도로 제한하기보다 시장 전체 또는 개별 종목 단위의 변동성 완화장치를 운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1996년 도입 당시 마련된 사이드카 발동 기준이 30년 가까이 큰 변화 없이 유지되면서 현재 시장 환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 평균 변동성에 맞춰 발동 기준을 탄력적으로 조정하거나 투자자들이 발동 시점을 예측하기 어렵도록 일정 수준의 무작위성을 반영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아울러 이미 서킷브레이커와 변동성완화장치(VI) 등 다른 시장안정장치가 운영되고 있는 만큼 사이드카의 존치 여부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구조적인 한계로 시장 안정 효과보다 가격 왜곡 등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편에서는 사이드카를 전면 폐지하기보다 현재 시장 환경에 맞게 보완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AI 알고리즘 거래가 일반화된 만큼 발동 기준과 운영 방식을 시장 환경에 맞게 개선하고 제도 본연의 시장 안정 기능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사이드카는 시장 방향을 바꾸는 제도가 아니라 패닉셀이나 추격매수 속도를 잠시 늦추는 완충장치로 이해해야 한다"며 "AI 알고리즘 거래가 일반화된 현재 시장에서는 변동성을 근본적으로 줄이는 효과는 제한적이지만 폐지보다는 시장 구조에 변화에 맞게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발동 기준을 시장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하거나 현물과 선물시장의 변동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방식으로 기준을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며 "AI 기반 초고속 매매환경에 맞춰 시장 감시체계를 강화하고 사이드카와 VI, 서킷브레이커(전체 거래 일시 중단) 간 역할을 재정비해 중복 규제를 줄여야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또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사이드카는 시장에 위험 신호를 보내는 경고 장치인데 너무 자주 발동되면 투자자들이 오히려 무감각해질 수 있다"며 "시장이 제도를 신뢰할 수 있도록 발동 기준과 운영 방식을 현실에 맞게 개선해 본연의 경고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사이드카 발동이 잦아진 원인을 제도 자체보다 국내 증시의 수급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시가총액 상위 반도체주 비중이 높은 데다 국내 시장은 미국보다 투자 주체가 다양하지 않아 외부 충격이 발생하면 변동성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장기적으로는 다양한 투자 주체가 국내 시장에 안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제도적인 보완보다 장기성 자금이 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말했다.
거래소 "세계 유일 다층 안전장치···운영방식 개선도 검토"
한국거래소는 사이드카가 여전히 필요하다며 최근 제기되는 무용론에 선을 그었다. 다층적 시장안정화 체계 안에서 보충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어 유효성이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거래소는 사이드카를 서킷브레이커, VI 등과 동일한 개념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거래소에 따르면 선물가격은 일반적으로 현물가격보다 먼저 움직이는 특성이 있다. 선물가격 급변은 프로그램매매를 통해 현물시장으로 확산되고, 다시 현물시장 움직임이 선물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연쇄적인 가격 변동이 발생할 수 있다. 사이드카는 이 같은 현·선물시장 간 연쇄적인 가격 충격을 일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해외 주요 거래소가 일부 시장안정장치만 운영하는 것과 달리 국내는 가격제한폭과 VI, 서킷브레이커, 사이드카를 모두 갖춘 전 세계 유일의 시장안정화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개인 비중이 높은 국내 증시 특성을 고려할 때 투자자 보호를 위해 급격한 가격 변동을 완화할 다양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게 거래소의 입장이다.
사이드카를 둘러싼 시장의 오해를 바로잡는 데도 나섰다. 사이드카가 지수차익거래 목적의 프로그램매매만 효력정지 대상이라는 인식과 달리 비차익거래도 함께 정지 대상에 포함된다는 설명이다. 동일인이 코스피 구성종목 15개 이상을 한꺼번에 사고파는 비차익거래 역시 시장 충격을 키울 수 있는 만큼 프로그램매매 호가의 효력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킨다고 밝혔다.
거래소 관계자는 "사이드카는 가격의 등락을 예측하거나 제어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므로 발동 사실 자체를 매수 또는 매도의 신호로 해석하지 않길 당부드린다"며 "사이드카를 포함한 시장안정화장치의 발동 상황과 시장 영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제도의 유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감독당국과 협의를 거쳐 발동 기준과 운영 방식 개선도 검토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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