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LB펩·SK팜테코·한미정밀화학, 생산 기반 확충美 공급망 진입, 고순도 원료 API 공급에 기회정식 규정 제정 및 현지 공급계약 등 진입장벽 여전
미국에서 미승인 펩타이드를 처방 조제(Compounding) 시장으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이 일면서, 국내 펩타이드 원료의약품(API) 및 위탁개발생산(CDMO) 업계에 새로운 사업 기회가 열릴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특히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글로벌 펩타이드 CDMO 인수를 전격 발표한 가운데, HLB펩과 SK팜테코, 한미정밀화학 등도 관련 생산 기반을 확충하고 있어 향후 미국 공급망 진입 가능성이 거론된다.
다만 이번 결정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정식 의약품 승인이 아닌 외부 자문위원회의 권고 성격에 그친다. 향후 FDA의 최종 규칙 제정과 까다로운 원료 제조시설 등록, 현지 조제약국 및 원격의료(텔레헬스) 업체와 실질적인 공급계약까지 이어져야 국내 기업의 실적으로 연결될 수 있어 섣부른 수혜 판단은 이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FDA 실무진 반대에도 6종에 손 들어준 자문위
31일 관련 업계와 주요 외신 등에 따르면, 미 FDA 약국조제자문위원회(PCAC)는 지난 23~24일 양일간 회의를 열고 검토 대상 펩타이드 7종 중 6종을 '503A 벌크 의약품 목록'에 포함하도록 권고했다. 이 목록에 편입되면 주정부 허가를 받은 약국이나 면허를 가진 의사가 유효한 처방전을 바탕으로 해당 원료를 사용해 특정 환자 맞춤형 의약품을 합법적으로 조제할 수 있게 된다.
자문위가 찬성한 물질은 BPC-157, KPV, TB-500, MOTS-c, 에피탈론(Epitalon), 세맥스(Semax) 등 6종이다. FDA는 BPC-157은 궤양성 대장염, KPV는 상처 치유와 염증성 질환, MOTS-c는 비만·골다공증 등을 검토 용도로 제시했다. 반면 오피오이드 금단과 만성 불면증 등에 쓰이는 에미델타이드(Amideltide)는 권고 대상에서 제외했다.
주목할 점은 이번 표결 결과가 압도적인 찬성이라기보다 팽팽한 정책 판단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BPC-157과 KPV, TB-500은 찬성 8표 대 반대 6표, MOTS-c는 찬성 7표 대 반대 5표로 가까스로 통과했다.
실제로 FDA 실무진은 7종 모두에 대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뒷받침할 임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목록 편입에 강하게 반대했다. FDA 측은 BPC-157 등에서 면역원성과 불순물 위험을 지적했고, KPV나 MOTS-c 등에 대해서는 인체 노출 관련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자문위원 중 일부가 펩타이드 치료 관련 사업체와 연관돼 이해충돌 논란까지 불거진 바 있어, 향후 최종 입법예고까지는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조제 허용', '정식 승인' 아냐···관건은 API 품질 요건
503A 목록 편입이 곧 해당 펩타이드의 안전성이나 치료 효과를 FDA가 공식 인정했다는 뜻은 아니다. FDA는 조제 의약품에 대해 시판 전 안전성·유효성을 직접 검증하지 않으며, 자문위 권고 역시 법적 구속력이 없다. 향후 의견 수렴을 비롯한 정식 입법예고 절차를 거쳐야 최종 목록이 확정된다.
503A 조제에 사용되는 벌크 원료는 FDA법에 따라 등록된 제조시설에서 생산돼야 하며, 원료마다 유효한 시험성적서(CoA)가 첨부돼야 한다. 해외 원료 제조시설도 예외 없이 이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향후 국내 기업에 열리는 기회는 현지 조제 완제 시장 직접 진출보다는, 이들 약국에 '고순도 펩타이드 API'를 공급하는 영역으로 좁혀질 것으로 보인다.
시장 선점 나선 K-CDMO···삼성바이오 '폴리펩타이드' 인수
국내 기업 가운데 이번 변화와 사업적 접점이 부각되는 곳은 삼성바이오로직스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FDA 자문위 회의 직전인 지난 20일, 스위스의 펩타이드 전문 CDMO인 폴리펩타이드그룹(PolyPeptide Group) 지분 100%를 약 18억달러(14억6000만스위스프랑)에 인수하기 위한 공개매수를 발표했다.
폴리펩타이드는 임상 초기부터 상업 생산까지 펩타이드 API를 공급하는 전문 기업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토런스와 샌디에이고 공장 등은 FDA 실사를 여러 차례 거쳤으며 10개가 넘는 상업용 API 승인 생산 이력을 탄탄하게 보유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번 인수를 통해 사업을 펩타이드로 확장하며 미국 내 생산망을 쥐게 됐다.
다만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비만 치료제 시장 확대에 따른 장기적 수혜를 기대하고 인수를 결정한 만큼, 이번 규제 완화를 단기 수주 실적으로 연결 짓기엔 무리가 있다.
HLB펩·SK팜테코, 생산 기반 확충···대상 물질 확보가 과제
국내 펩타이드 전문기업 중에서는 HLB펩이 잠재적 공급 후보로 거론된다. HLB펩은 국내 최초로 펩타이드 API 전문 GMP 공장을 구축해 운영 중이다. 특히 지난 22일에는 항이뇨호르몬 치료제 원료인 바소프레신(Vasopressin)의 FDA 원료의약품등록자료(DMF) 등록을 마치는 성과를 냈다. 기존 류프로렐린, 가니렐릭스에 이어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레퍼런스를 꾸준히 쌓고 있다는 점은 강점이다.
SK의 CDMO 자회사인 SK팜테코 역시 세종에 약 3400억원(2억6000만달러)을 투입해 2026년 말 가동을 목표로 소분자 및 펩타이드 생산시설을 건설 중이다. 한미약품 계열사인 한미정밀화학도 자체 수지 및 합성 기술을 활용한 GMP 기반 펩타이드 API 생산 역량을 바탕으로 비임상부터 상업 생산까지 아우르는 CDMO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세 회사 모두 이번에 FDA 자문위가 다룬 특정 물질 6종에 대한 당장의 생산이나 공급 실적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더불어 소량·다품종 위주의 503A 조제 시장 특성상, 장기·대규모 생산에 초점을 맞춘 기존 CDMO 사업 구조와는 수익성 모델이 확연히 다르다.
섣부른 '비만약 테마' 엮기 경계해야
시장 일각에서 이번 조치를 비만치료제 기업 전반의 호재로 엮어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섣부르다는 진단도 나온다. 자문 대상인 MOTS-c가 비만과 골다공증 용도로 논의되긴 했으나, 이는 현재 전 세계적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세마글루타이드(위고비)나 티르제파타이드(젭바운드) 같은 대형 GLP-1 계열 정식 승인 의약품과는 다른 물질이다. 또 FDA는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정식 승인 의약품을 503A 약국이 무분별하게 대규모로 복제 조제하는 행위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처방과 유통망을 보유한 미국 원격의료 업체와 조제약국이 가장 직접적인 수혜 주체가 될 가능성이 크다. 로이터 등 외신은 제도권으로 편입된 미국 펩타이드 시장이 향후 20억~30억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뉴스웨이 이병현 기자
bottlee@newsway.co.kr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