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바이오 '2조 기술수출'보다 선급금···바이오 공시, 옥석가리기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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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 기술수출'보다 선급금···바이오 공시, 옥석가리기 빨라진다

등록 2026.08.04 15:38

이병현

  기자

질환 전체 시장 대신 목표시장·계약금 구분 의무화임상 근거·자금계획 뚜렷한 기업 격차 확대과장 홍보 대신 공통 문법 통한 정보 비교 강조

그래픽=박혜수 기자그래픽=박혜수 기자

금융당국이 제약·바이오 기업의 공시 체계를 손질하면서 바이오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셈법도 달라질 전망이다. 질환 전체 시장이나 기술이전 최대 계약액을 앞세운 성장 서사보다 실제 공략 가능한 시장과 임상 단계별 성공 가능성, 당장 받을 수 있는 계약금, 개발 완료까지 필요한 자금으로 기업가치를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발표한 '제약·바이오 공시 종합개선 방안'은 기업공개(IPO) 증권신고서부터 상장 이후 정기·수시공시, 언론보도까지 아우른다. IPO 기업은 예상 시장 규모와 임상시험 성공 확률, 허가·심사 위험, 개발기간·소요비용을 구분해 제시해야 한다. 상장사는 과거 공개한 파이프라인의 중단·기술이전·허가·판매 이력을 관리하고, 기술이전 계약금과 개발 마일스톤, 허가·판매 마일스톤, 로열티도 나눠 공개해야 한다.

다만 이번 대책이 당장 시행되는 강제 규제는 아니다. IPO 증권신고서 기준은 회사 특성에 따라 조정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 형태이고, 수시공시 개편안은 한국거래소가 검토 중이다. 언론보도 가이드라인 역시 금융위원회와 거래소 논의를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금감원이 증권신고서 심사 과정에서 가이드라인 반영 여부를 살펴보고 필요하면 정정을 요구하겠다고 밝힌 만큼 기업에도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향후 개편이 미칠 영향은 금감원과 거래소가 어떤 기준으로 정정과 제재에 나서는지에 좌우될 전망이다.

새 정보보다 '공통 문법' 만드는 데 방점


업계에서는 개편안에 담긴 내용 상당수가 이미 공개된 정보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다수 상장사가 홈페이지나 IR 자료를 통해 파이프라인 현황을 알리고 있고, 기술이전 계약도 비밀유지 의무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계약금과 마일스톤을 구분해 제시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지적은 일부 타당하다. 정상적인 공시 절차를 지킨 기업이라면 이번 개편으로 새롭게 내놓아야 할 정보가 많지 않을 수 있다. 공시 항목이 늘어나는 것만으로 일반 투자자가 바이오 사업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문서 분량만 늘고 핵심 정보가 수많은 주석에 묻힌다면 투자자 보호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그렇다고 이번 개편을 단순한 형식 변경으로만 보기도 어렵다. 홈페이지와 IR 자료에 정보를 공개하는 것과 법정 정기보고서에서 과거 이력을 끊김 없이 관리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기업별로 제각각이던 설명 방식을 통일하면 같은 개발 단계 기업이나 비슷한 기술이전 계약을 서로 비교할 수 있게 된다.

그동안 정보공개에 적극적이던 기업에는 변화가 적고, 그렇지 않던 기업에는 부담이 커지는 비대칭적 효과가 예상되는 이유다. 새로운 정보의 추가보다 기존 정보를 남들과 같은 기준으로 배열하고 책임 있게 남기도록 만드는 것이 이번 방안의 핵심인 셈이다.

낙관적 공모가 제동···모든 기업 몸값 낮아지는 것은 아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이 예상되는 곳은 바이오 IPO 시장이다. 신약개발 기업은 현재 실적보다 후보물질이 허가·출시된 뒤 발생할 미래 매출을 토대로 공모가를 산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질환 시장 전체를 매출 가능 시장으로 간주하거나, 임상 성공과 기술이전을 당연한 전제로 놓는 문제가 반복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금감원이 지난해 말 발표한 추정실적 기반 공모가 점검 결과를 보면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코스닥 신규 상장사 213곳 가운데 105곳이 추정실적으로 공모가를 산정했다. 이 중 상장 첫해 매출·영업이익·순이익 전망을 모두 달성한 기업은 6곳에 그쳤고, 83곳은 세 항목 모두 전망치를 밑돌았다. 추정실적을 활용한 기업 중 기술·성장특례 상장사가 93곳이었으며, 보건·의료 업종이 40곳으로 가장 많았다.

새 기준에서는 전체 질환 시장과 회사가 실제 공략할 목표시장을 분리해야 한다. 진출 국가와 처방 가능 환자, 생산능력, 판매망, 경쟁약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전체 시장 규모를 기업의 예상 매출로 연결하기 어려워진다. 임상과 허가에 필요한 비용뿐 아니라 보유 현금으로 개발을 마칠 수 있는지, 부족한 자금은 유상증자나 전환사채로 조달할 것인지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이에 따라 바이오 기업의 공모가가 일률적으로 낮아진다기보다 기업 간 격차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 임상 근거와 자금계획, 사업화 역량이 뚜렷한 기업은 불확실성 할인을 줄일 수 있다. 반면 시장 규모와 초기 후보물질만으로 높은 가치를 주장한 기업은 공모가 조정 압력을 받을 수 있다.

상장 주관사의 부담도 커진다. 임상 성공률과 허가 일정, 기술이전 가능성, 추가 조달 계획이 하나의 사업계획으로 연결되는지 검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고서 정정이 반복되면 상장 일정이 늘어지고 공모 구조가 보수적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임상 성공확률은 가정···숫자 맹신 경계해야


업계가 가장 큰 부담을 호소하는 항목은 임상시험 성공 확률이다. 임상 결과에는 환자 구성과 시험 설계, 경쟁약 등장, 규제기관 판단 등 사전에 계산하기 어려운 변수가 많아 성공 가능성을 하나의 수치로 남기는 것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금감원 가이드라인 취지는 적응증과 치료제 유형, 임상 단계가 비슷한 외부 논문과 통계를 활용하고 어떤 자료와 기준을 선택했는지 밝히라는 것에 가깝다. 기업이 임의로 높은 확률을 적용하면서 근거를 설명하지 않는 관행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다만 외부 통계도 만능은 아니다. 동일한 질환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약물 기전과 환자군, 임상 설계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업계 평균 성공률을 특정 후보물질의 성공 가능성처럼 제시하면 오히려 숫자가 객관성을 보장한다는 새로운 착시를 낳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당국이 단일 수치를 기계적으로 요구하기보다 적용 범위와 한계를 함께 밝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성공률을 달리 적용했을 때 기업가치가 얼마나 변하는지 민감도 분석을 제시하거나, 범위 형태로 설명하는 방식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숫자를 공개하는 것보다 그 숫자가 어디까지 유효한지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최대 계약액' 약발 줄고 선급금·이행 능력 부각


기술이전 공시에서는 계약총액보다 현금이 들어오는 구조가 중요해질 전망이다. 최대 2조원 규모 계약이라도 체결과 동시에 확정되는 계약금은 수백억원에 그치고, 나머지는 임상 진입과 허가, 판매 목표 달성에 따라 지급되는 경우가 많다.

새 기준이 적용되면 투자자는 총계약액 가운데 반환 의무가 없는 계약금이 얼마인지, 개발 단계에서 받을 수 있는 금액과 상업화 이후에야 받을 수 있는 금액이 각각 얼마인지 구분할 수 있다. 앞으로는 최대 계약 규모보다 선급금 비중과 과거 마일스톤 수취 이력, 계약 상대방의 개발·상업화 능력이 기업가치를 가르는 지표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초기 단계 물질을 기술이전하면서 상업화 성공을 전제로 한 판매 마일스톤을 크게 잡은 계약은 과거보다 보수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반대로 선급금 비중이 높고 후속 마일스톤을 실제 받아온 기업에는 신뢰 프리미엄이 붙을 여지가 있다.

글로벌 제약사와 비밀유지계약이 국내 공시 기준과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계약 조건이 다른 협상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상대방이 세부 금액 공개를 꺼리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공시 강화가 곧바로 국내 기업의 협상력 약화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금감원은 상대방 이름을 밝히기 어려운 경우에도 기업 규모와 사업 역량 등 최소 정보를 제공하도록 했다. 향후 거래소가 구체적인 공시 예외와 비공개 허용 범위를 어떻게 정하느냐가 관건이다. 공개 필요성과 영업비밀 보호 사이 선이 불명확하면 기업은 계약 자체보다 사후 공시를 두고 해외 파트너와 추가 협상을 벌여야 할 수 있다.

사라진 파이프라인도 기록···정보 과잉은 새 과제


연구개발 이력관리 총괄표가 도입되면 전년도 사업보고서에 있던 후보물질이 별다른 설명 없이 사라지는 관행에도 제동이 걸린다. 개발 중단과 기술이전, 권리반환, 적응증 변경, 품목허가 등의 흐름을 하나의 이력으로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이 실질적으로 멈춘 파이프라인을 계속 개발 중인 것처럼 유지하거나, 불리한 이력을 현재 자료에서 제외하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 파이프라인 개수보다 실제 진척률과 중단 사유, 계획 대비 지연 정도가 기업 평가 중심으로 이동할 수 있다.

반면 과거 공개한 모든 후보물질을 장기간 정기보고서에 담으면 문서가 지나치게 복잡해질 우려도 있다. 투자자가 수십 개 파이프라인의 연혁을 모두 읽어야 한다면 공시량 증대가 이해도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현재 상태와 직전 보고기간 이후 달라진 내용을 우선 보여주고, 상세 이력은 별도 표로 연결하는 등 정보의 우선순위를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도자료 먼저 변할 가능성 커


업계가 체감할 가장 빠른 변화는 공시보다 보도자료와 언론 인터뷰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금감원은 투자 판단에 중대한 정보는 공시로 먼저 공개하고, 이후 보도자료에 공시하지 않은 중요 내용을 추가하지 못하도록 했다. 보도자료 배포 전 내부 승인 절차를 마련하는 방안도 권고했다.

금감원이 별첨 자료에서 '꿈의 신약', '승인 임박', '사실상 성공', '50조원 시장', '2조원 기술수출' 등을 투자자 오인을 부를 수 있는 대표적 표현으로 제시한 점은 이번 대책의 방점이 어디에 찍혔는지를 보여준다. 기존 공시 항목을 세분화하는 것보다 과장된 홍보를 통해 기대감을 먼저 확산시키는 관행을 막는 데 실질적인 목적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상적인 IR과 홍보까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는 남는다. 무엇이 공시해야 할 중요 정보이고 무엇이 일반적인 개발 현황인지, 인터뷰 과정에서 나온 설명까지 기업이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 기준이 모호하면 오히려 소통을 줄이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이 사전에 표현의 적정성을 문의할 수 있는 상담 절차와 허용되는 예시, 오류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바로잡는 절차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투자 위축보다 '자금 재배치' 가능성 봐야


제도가 본격 시행되기 전인 만큼 공시 강화가 바이오 업계에 미칠 영향은 미지수다.

업계에서는 단기적으로 공시 작성과 법률 검토 비용이 늘고, 상장 심사와 자금조달 일정이 길어질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자금 여력이 부족한 초기 바이오 벤처에는 같은 규제 비용도 더 무겁게 작용할 전망이다. 기업이 불확실한 연구개발 계획을 공개하는 데 소극적으로 변하면 투자자가 접하는 정보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반대 효과도 가능하다. 계약 구조와 임상 위험, 현금 소진 계획이 명확해지면 정보 불확실성 때문에 적용되던 할인폭이 줄어들 수 있다. 공시가 충실한 기업에는 자금조달 비용이 낮아지고, 홍보 의존도가 높은 기업에는 높은 위험 프리미엄이 붙는 식이다.

따라서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번 개편 결과에 따라 자금이 어떤 기업으로 이동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상장 철회나 공모가 조정뿐 아니라 증권신고서 정정 횟수, 기술이전 계약 발표 뒤 주가 변동성, 계약금 비중에 따른 기업가치 차이 등을 함께 추적할 필요가 있다.

한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내용이 이미 회사가 자체적으로 공개하던 정보라 큰 비용 증가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실질적으로 이런 정보를 모두 공시에 세세하게 기록하는 것이 투자자에게 도움이 될지는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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