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정유사 '효자' 된 윤활기유···중동 특수 넘어 수익모델 될까

산업 에너지·화학

정유사 '효자' 된 윤활기유···중동 특수 넘어 수익모델 될까

등록 2026.08.11 16:41

김제영

  기자

윤활 부문 영업익 급증···정유보다 수익성↑중동발 공급 차질에···가격·마진 실적 견인고부가 가치 사업 전환, 경쟁력 확대 주목

그래픽=이찬희 기자그래픽=이찬희 기자

국내 정유사들의 윤활기유 사업이 정유사업을 뛰어넘는 수익성을 내고 있다. 일부 업체의 영업이익률은 50%를 넘어섰다. 중동발 공급 차질이 불붙인 '반짝 호황'이지만 고급 기유와 글로벌 판매망을 앞세운 사업 재편의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의 윤활유 자회사 SK엔무브는 올해 2분기 영업이익 6919억원을 기록했다. 전 분기 1885억원에서 5034억원, 3.7배 늘었다. 같은 기간 정유사업을 담당하는 SK에너지의 영업이익은 6512억원이었다. 윤활기유 사업이 핵심 정유사업의 이익을 넘어선 것이다.

에쓰오일도 비슷했다. 2분기 윤활 부문 영업이익은 4774억원으로 전 분기 1666억원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전체 영업이익 9650억원의 절반가량을 윤활 부문에서 벌어들였다.

HD현대오일뱅크와 GS칼텍스도 윤활사업에서 가파른 이익 증가세를 보였다. HD현대오일뱅크의 윤활기유 영업이익은 1814억원으로 전 분기 220억원의 8배 이상으로 뛰었다. GS칼텍스 역시 윤활유 부문 영업이익이 358억원으로 73억원에서 5배 가까이 증가했다.

수익성만 놓고 보면 격차는 더 뚜렷하다. 국내 정유 4사의 2분기 윤활사업 영업이익률은 SK엔무브 34.9%, 에쓰오일 36.7%, HD현대오일뱅크 48.6%, GS칼텍스 52.1%로 평균 43%를 웃돈다. 정유사업의 영업이익률이 5~17% 수준에 그친 것과 대조적이다. 정유사에서 '부가 사업'으로 취급받던 윤활기유가 오히려 핵심 수익원으로 떠오른 셈이다.

배경에는 중동발 공급 차질이 있다. 중동 지역의 생산 차질에 더해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물류 제약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윤활기유 공급이 빠듯해졌다. 공급이 줄면서 제품 가격과 마진이 함께 뛰었고 글로벌 판매 비중이 높은 국내 업체들이 직접적인 수혜를 입었다.

윤활기유는 자동차와 산업용 기계 등에 들어가는 윤활유의 핵심 원료다. 과거에는 휘발유·경유 등을 생산하고 남은 부산물을 활용하는 정도의 부가 사업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고급 기유 생산 기술과 글로벌 판매망을 갖춘 업체를 중심으로 고부가 사업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국내 정유사들이 수년간 추진해온 사업 재편도 이번 호황에서 힘을 발휘했다. 범용 제품 대신 고급 윤활기유인 그룹Ⅲ 생산능력을 확보하고 해외 판매망을 넓혀온 결과다. 가격이 오를 때 더 높은 마진을 확보할 수 있는 제품군과 글로벌 시장을 미리 확보해 놓은 것이 실적 개선으로 이어졌다.

SK엔무브와 에쓰오일은 대표적인 사례다. 양사는 고급 윤활기유 생산능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넓혀왔다. 업계에서는 두 회사가 전 세계 그룹Ⅲ 윤활기유 생산량의 약 40%를 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후발 업체들도 투자에 나섰다. HD현대오일뱅크는 2013년 윤활유 전문 브랜드 '현대 엑스티어'를 출시한 데 이어 지난해 자회사 HD현대쉘베이스오일을 통해 그룹Ⅲ 윤활기유 공장 증설 투자를 발표했다. 기유 생산부터 윤활유 판매까지 사업 전반의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이다.

GS칼텍스는 생산뿐 아니라 글로벌 물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내년 초 인천 윤활유 글로벌 물류센터를 완전 자동화 시설로 전환할 계획이다. 자동화가 완료되면 제품 수용 능력과 시간당 입출고 처리량이 각각 2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 물량을 보다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의 높은 수익성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다. 중동 지역의 생산 차질과 물류 제약이 풀리면 현재의 초과 마진은 정상 수준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이번 실적만으로 윤활기유가 정유사업을 대체할 새로운 성장축으로 자리 잡았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결국 승부처는 '호황 이후'다. 공급 차질이 사라진 뒤에도 고급 기유 생산능력과 글로벌 판매망을 바탕으로 얼마나 높은 수익성을 유지하느냐가 중요하다. 특히 범용 제품보다 고부가 제품 비중을 얼마나 끌어올리고, 해외 판매처를 얼마나 넓히느냐에 따라 윤활기유 사업의 체질이 달라질 수 있다.

이번 호황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만든 일시적 마진 상승과 정유사들의 수년간 이어진 사업 고도화가 겹친 결과로 볼 수 있다. 중동발 공급 충격이 사라지더라도 고부가 제품과 글로벌 판매망이라는 '체력'을 남긴다면 윤활기유는 정유사업의 변동성을 보완하는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윤활기유 사업은 중동발 공급 차질로 일시적으로 수익성이 높아진 측면이 있다"면서도 "그동안 고급 기유 생산과 글로벌 판매망에 투자해온 만큼 이번 호황을 계기로 사업 경쟁력을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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