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바이오 '한 사람 한 배치' 공장 전쟁···남은 과제는?

ICT·바이오 제약·바이오 암백신의 조건

'한 사람 한 배치' 공장 전쟁···남은 과제는?

등록 2026.09.07 07:13

이병현

  기자

대량생산 아닌 수천 배치 동시 운영 '스케일아웃'약병보다 중요한 데이터와 소프트웨어 경쟁력테마주 옥석 가르는 실질 배치·출하 경험

그래픽=이찬희 기자(제미나이 활용)그래픽=이찬희 기자(제미나이 활용)

암백신은 환자가 수술대에 오르기 전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완성된 약을 창고에서 꺼내 처방하는 일반 의약품과 달리, 환자 한 명의 주문을 통해 새로운 설계와 완전히 새로운 제조 배치(Batch)를 만든다. 종양 조직이 적출된 순간부터 검체 운송, 염기서열 분석, 신생항원 선별, mRNA 설계와 합성, 전달체 제형화, 품질검사, 병원 배송으로 이어지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에 따르면, 모더나는 자사 개인맞춤형 암백신 '인티스메란 오토진(mRNA-4157)'의 제조 과정과 관련해 "검체 수집부터 투약기관 배송까지 어느 한 단계에서 제품 손실이나 실패가 발생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실제로 개인맞춤형 암백신은 환자의 재발 위험과 치료 일정에 맞춰 정해진 시간 안에 출하해야 한다. 환자가 기다리는 동안 질병이 악화하거나 치료 계획이 바뀌면, 그간 진행한 분석과 제조 공정은 무용지물이 된다.

모더나와 미국 머크(MSD)가 흑색종 임상 3상 유효성이라는 첫 관문을 넘었어도 이를 수만 명의 환자가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산업'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생산 역량 확보'라는 두 번째 시험대를 넘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100만 도즈 대형 공장과 '한 명분 공장'은 달라


기존 백신과 바이오의약품의 생산 경쟁력은 '동일한 제품을 얼마나 큰 설비에서 대량으로 쏟아낼 수 있는가'에 달렸다. 즉 동일 원액의 배치 크기를 키우는 '스케일업(Scale-up)'이다. 반면 개인맞춤형 암백신은 정반대다. 한 배치가 오직 한 환자에게만 투여되므로, 배치 크기를 키우는 대신 서로 다른 수천 개의 배치를 동시에 돌리는 '스케일아웃(Scale-out)' 역량이 필수적이다.

모더나의 연차보고서를 보면, 회사는 후기 임상과 상업화에 필요한 환자 수를 감당하기 위해 자동화·로봇 및 일회용 생산설비를 활용해 배치를 '병렬'로 확대하고 있다. 일반 의약품은 상업화 단계에 진입할수록 배치 용량이 커지지만, 인티스메란은 처리해야 할 배치 '수' 자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구조다.

공시에 등장하는 '월 최대 1000로트(Lot)'라는 수치도 주의해서 해석해야 한다. 이는 모더나의 연구용 mRNA 공급 플랫폼이 월간 처리할 수 있는 1~1000㎎ 규모의 단순 서열·제형 로트를 뜻할 뿐, 상업 공장이 한 달에 환자 1000명분을 생산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모더나는 아직까지 인티스메란의 정확한 월간 환자 처리 능력이나 상업 출하 목표량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대신 모더나는 환자별 맞춤 제조를 위한 거점을 따로 구축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말버러에 약 14만ft² 규모의 시설을 확보하고 6만ft²를 증설해 전용 청정실, 품질관리 실험실, 적시 공급형 창고를 만들었다. 호주나 영국 등에 세운 연간 1억 도즈 규모의 호흡기 백신 공장과 달리, 말버러 시설의 핵심은 거대한 배양조가 아니라 '여러 환자의 배치를 교차오염 없이 동시에 처리하는 자동화 제어 체계'다.

막대한 자본도 투입되고 있다. 모더나는 최근 당초 20억달러에서 증액한 26억달러(약 3조4000억원) 규모의 무이자 전환사채 발행을 확정하며 자금 용도에 '종양학 사업 성장 투자'를 포함시켰다. '한 환자 한 배치' 체계를 상업 규모로 확장하는 데는 고도의 기술력 못지않게 천문학적인 자본이 필요하다는 방증이다.

약병보다 중요한 데이터···소프트웨어도 치료제 일부


개인맞춤형 암백신에서 '제품'은 약병에 담긴 mRNA 용액만을 뜻하지 않는다. 환자의 종양 검체와 정상 검체를 비교해 돌연변이를 찾고, 단백질 발현 가능성과 HLA 유형을 고려해 신생항원을 선정한 뒤, 이를 환자별 mRNA 서열로 변환하는 '데이터 공정'이 약의 효능을 좌우한다.

실제로 모더나는 신생항원 설계를 돕는 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를 "제품 후보의 일부"로 규정했다. 알고리즘이 잘못된 변이를 선택하거나 면역원성이 없는 항원을 고르면, 최종 생산된 mRNA의 순도와 함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치료 효과는 낼 수 없다. 암백신의 생산라인은 종양 조직에서 시작해 서버와 알고리즘을 거친 뒤에야 물리적 제조 설비로 이어지는 셈이다.

환자의 신원 역시 전 공정에서 완벽하게 연결돼야 한다. 모더나가 강조하는 '신원 연속성(Chain of Identity)'이다. 환자의 검체, 유전체 데이터, 최종 맞춤형 제품이 투약 순간까지 동일 환자에게 정확히 연결돼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이를 지키지 못하면 자칫 제품이 뒤바뀌는 대형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암백신의 생산능력을 평가할 때는 단순한 공장 면적을 넘어선 지표가 필요하다. ▲검체 도착 후 첫 투약까지 걸리는 시간(중앙값) ▲분석 실패율 ▲환자별 배치 1차 출하 합격률 ▲신원 연속성 일탈 건수 등이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FDA가 던진 난제···"알고리즘도 검증 대상"


규제당국도 새로운 기준 마련에 착수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최근 '능동면역치료제의 역가평가' 지침 초안을 통해 환자별로 신생항원이 매번 달라지는 맞춤형 제품의 출하 가이드라인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일반 의약품은 동일 성분을 반복 생산하므로 미리 확립한 생물학적 역가시험을 모든 배치에 일괄 적용한다. 그러나 암백신은 매번 항원 조합이 달라져 환자마다 새로운 세포주와 시약을 만들어 역가시험을 수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FDA는 이를 고려해 환자별로 별도의 역가 생물시험을 면제해 줄 수 있다는 여지를 열어뒀다. 단, 전제 조건이 까다롭다. 신생항원을 고르는 '생물정보학 파이프라인(알고리즘)'이 정확하고 재현성 있게 작동한다는 근거를 확실히 입증해야 한다. 즉, 규제 논리상 신생항원 선정 알고리즘 자체가 의약품의 제조·품질관리(CMC) 영역으로 편입되는 것이다.

알고리즘 업데이트 역시 자유롭지 않다. FDA는 생물정보학 파이프라인의 변경이 제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추가 검증을 요구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곧 '의약품 제조 공정 변경'으로 간주되는 셈이다.

병원마다 소형 공장?···분산 생산 딜레마


일각에서는 환자별 소량생산 단가를 낮추고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대형 병원이나 권역별로 소형 생산시설을 분산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기존 대량 생산(CDMO) 설비로는 다품종 소량 생산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공장을 분산시키면 규제와 품질관리의 복잡성은 기하급수적으로 뛴다. 시설마다 장비, 작업자, 환경이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어 거점을 추가할 때마다 기존 제품과 '비교동등성'을 매번 입증해야 한다. 모더나가 신규 시설 확대를 상업화의 주요 위험 요인으로 꼽은 것도 이 때문이다. 상용화 초기에는 디지털 물류망으로 연결된 중앙집중형 전용 공장 모델이 더 현실적이라는 게 업계 내 중론이다.

암백신 수혜주?···'트랙레코드' 필요해


암백신이 유망한 영역으로 떠오르며 우리 정부도 지원에 적극적인 상황이다.

보건복지부의 한국형 ARPA-H 사업인 PAVE는 환자 검체 채취부터 mRNA 백신 투여까지 전 과정을 6~8주 이내에 마치는 플랫폼 구축을 목표로 출범했다. 테라젠바이오, 애스톤사이언스, LG화학, 에스티팜 등 국내 주요 바이오 기업이 참여해 신생항원 발굴부터 mRNA 제조, 전달체 기술을 하나로 엮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로서는 국내 기압이 글로벌 빅파마(대형제약사)에 뒤처진 상태다. 유전체 분석(NGS), 신생항원 예측, mRNA 합성, 지질나노입자(LNP) 등 개별 기술력은 있지만, 이를 실제 환자별 GMP(우수의약품제조관리기준) 배치로 신속하게 통합 출하한 '연결 실적(트랙 레코드)'은 부족하다.

한편 키트루다 피하주사(SC) 제형 전환 기술로 주목받는 알테오젠의 경우, 간접적인 암백신 수혜가 기대된다. 다만 모더나 인티스메란의 흑색종 3상 성공은 정맥주사(IV) 키트루다로 거둔 성과다. SC 제형은 후속 임상에서 평가 중이므로, 알테오젠의 추가 매출로 직결되려면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특허 장벽(FTO)과 진정한 승자의 조건


국내 기업이 암백신 개발에 성공한다고 해도 넘어야 할 난관은 남아있다. 특히 암백신 시장에서는 특허와 생산 능력 확보가 기업의 지배력을 좌우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암백신에는 신생항원 예측, 캡핑, 변형 뉴클레오사이드, LNP 조성 등 촘촘한 다중 특허가 얽혀 있다. 모더나조차 LNP 특허 분쟁을 피하기 위해 아뷰터스 등에 천문학적인 합의금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암백신 개발 기업 입장에서는 타인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실시자유(FTO·Freedom to Operate)' 확보가 관건이다.

또 서로 다른 환자의 약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고, 저렴하게 규격에 맞춰 병원까지 배송할 수 있는지 여부도 중요하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McKinsey)는 맞춤형 네오안티젠(neoantigen, 암 특이적 항원) 치료제의 상업적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턴어라운드 타임(TAT·검체 채취부터 투약까지의 기간)'과 배치당 생산 원가를 꼽았다.

자가유래 CAR-T 치료제의 상용화 구조를 분석한 보고서에서 따르면 "'한 환자, 한 배치(one-batch, one-patient)'라는 패러다임 전환은 필연적으로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제조 및 공급망 구조를 낳는다"며 "공장보다는 모듈형 청정실과 실험실에 가까운 이 모델에서는 환자 신원의 연속성(Chain of Identity) 관리가 필수적"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질병의 급격한 진행을 고려할 때 검체 채취부터 투약까지의 소요 시간(Vein-to-vein time) 단축 여부가 환자의 치료 결과와 직결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라며 "제조와 공급망 시간을 줄이는 역량이 향후 기업의 핵심적인 '경쟁 차별화 요소(Competitive differentiator)'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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