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지배구조안보다 강력한 'KB 신호'···5대銀 "차라리 연임 가이드라인 달라"

금융 은행

지배구조안보다 강력한 'KB 신호'···5대銀 "차라리 연임 가이드라인 달라"

등록 2026.09.15 13:32

수정 2026.09.15 14:36

문성주

  기자

KB, 양종희 대신 이재근 낙점···개편안 앞서 세대교체 신호5대 은행장 나란히 임기 만료···연임·쇄신 판단에 변수새 기준 기다리던 은행권···"정부 의중부터 읽어야 하나"

그래픽=홍연택 기자그래픽=홍연택 기자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선안에 앞서 KB금융지주의 회장 인사가 금융권 일각에서 사실상의 가이드라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양종희 회장의 연임 대신 이재근 부문장을 선택한 것을 두고 정부의 쇄신 기조에 선제적으로 호응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일각에서 나오면서다. 연말 5대 은행장의 임기가 나란히 끝나는 가운데 새 제도의 내용보다 KB의 선택이 후속 인사에 미칠 영향이 먼저 부각되는 모습이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환주 KB국민은행장,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호성 하나은행장, 정진완 우리은행장, 강태영 NH농협은행장 등 5대 은행장의 임기는 모두 올해 말 종료된다. 지배구조 모범관행을 반영한 각 사 내부규범상 승계 절차는 임기 만료 최소 3개월 전에 시작해야 해 이달 말까지 절차를 개시해야 한다.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11일 양 회장과 이 부문장, 권광석 전 우리은행장을 심층 평가한 뒤 이 부문장을 최종 후보로 선정했다. 현직 회장의 연임 가능성을 높게 봤던 금융권의 예상을 깬 결과다. 이 부문장은 11월 20일 예정된 임시주주총회 등 선임 절차를 앞두고 있다.

이번 인사의 파장은 제도 개편과 실제 인선의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데서 커졌다. 개편 논의는 지난해 말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위·금감원 업무보고에서 금융권 지배구조를 "부패한 이너서클"이라고 질타한 뒤 본격화됐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1월 지배구조 선진화 태스크포스를 출범시키며 이사회 독립성과 최고경영자 선임의 공정성·투명성 등을 높일 개선방안을 3월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지난 6월 기자간담회에서 KB금융의 압축 후보군 발표 전에 개선안이 공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하반기 은행장 선임도 다수 예정돼 있다고 언급했다. 개편 일정과 금융권 인사를 연결한 것은 당국 스스로였다.

그러나 7월 KB 후보군이 압축된 뒤에도 개선안은 나오지 않았다. 금융위는 7월 말에도 구체적인 내용과 발표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결국 새 제도가 공개되기 전에 KB의 최종 후보까지 정해졌고, 결과는 현직 회장의 교체였다.

이 때문에 금융권 일각에서는 개선안의 세부 조항을 기다릴 실익이 줄었다는 냉소가 흘러나온다. 연임 요건이 어떻게 바뀌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인사 결과를 통해 쇄신 요구부터 읽게 됐다는 것이다. 한 금융지주 고위임원은 이번 인사에 대해 "정부의 지배구조 쇄신 기조를 의식한 선제적 선택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KB 회추위가 공개한 선정 근거는 후보자의 역량과 미래 경쟁력이다. 회추위는 업무경험과 전문성 등 5개 항목과 25개 세부기준으로 후보를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조화준 회추위원장도 "과감한 변화와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 부문장을 선택한 배경을 밝혔다.

정부나 당국이 특정 후보 선정을 요구했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사 결과를 정부 의중과 연결하는 시각이 존재한다는 점은 승계 절차에 대한 신뢰의 문제를 드러낸다. 새 기준과 적용 시점이 불분명할수록 후보의 성과와 경영 전략을 어떻게 평가할지보다 어떤 선택이 대외적으로 쇄신으로 읽힐지가 부각될 수 있다.

국회 논의도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정무위원회에는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횟수 제한과 연임 시 주주총회 특별결의 등을 담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정안들이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돼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심사는 진행되지 않아 연임 제한의 방식과 적용 시점은 여전히 미정이다.

연말 은행장 인사는 이런 해석이 확산할지 가늠할 사례가 될 전망이다. 정상혁 행장은 재선임되면 세 번째 임기를 맞고, 다른 4명 행장은 첫 연임 여부가 결정된다. 장기 재임과 첫 임기의 성과를 구분해 평가해야 하지만 KB의 회장 교체가 비교 기준이 되면 연임을 택하는 인사에도 쇄신 요구를 외면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붙을 수 있다.

회장 교체가 은행장 교체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경영 안정을 위해 현직 은행장을 유지할 수도, 계열사까지 쇄신을 이어갈 수도 있다. 불확실성의 핵심은 일괄 교체 여부보다 연임과 쇄신을 가르는 기준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이사회 독립성과 후보 검증을 강화할 제도적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다만 당국의 개선안이 늦어질수록 KB 인사 결과가 공식 기준을 대신하는 신호로 소비될 여지가 커진다. 당국이 진행 중인 승계 절차에 새 기준을 언제, 어떻게 적용할지 명확히 해야 연말 인사가 정부 의중을 해석하는 경쟁으로 흐를 가능성도 줄일 수 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개선안 발표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당국이 원했던 '투명하고 공정한 승계 시스템' 대신 '정치적 셈법'이 먼저 시장을 지배하게 됐다"며 "이사회가 자율성과 독립성에 기반해 후보를 검증하고 평가하더라도 외부에서는 '상부의 지침을 읽은 결과'로 치부해 버리는 부작용이 크다"고 짚었다.

ad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