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AI가 만든 금융사기, AI로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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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만든 금융사기, AI로 막을 수 있을까

등록 2026.09.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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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가족의 목소리, 화상회의 화면 속 회사 임원, 유명인이 직접 설명하는 투자상품 등 예전 같으면 쉽게 의심하지 않았을 장면들이다. 그러나 생성형 AI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이제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만으로 상대방이 진짜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고 있다. 금융생활을 편리하게 만든 AI가 금융사기의 수법까지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딥페이크와 음성복제를 이용한 사기다.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합성해 비대면 본인확인을 통과하거나 임원의 얼굴과 목소리를 조작해 직원에게 송금을 지시하기도 한다. 2024년 홍콩에서는 직원이 최고재무책임자와 동료들이 등장하는 영상회의를 믿고 5개 계좌로 약 2억 홍콩달러를 송금한 사건도 발생했다.

AI 금융사기가 더 위협적인 이유는 가짜 영상이 정교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생성형 AI를 이용하면 특정 사람의 상황과 관심사에 맞춘 이메일이나 메시지, 투자권유 내용을 짧은 시간에 대량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실제 조사에서도 AI 생성 이메일과 채팅, 딥페이크와 조작문서, 경영진 음성복제 등이 기업이 경험한 주요 AI 기반 사기 유형으로 나타났다. AI가 금융사기의 비용을 낮추고 속도와 규모를 키우는 도구가 된 셈이다.

문제는 금융소비자에게 단순히 '조심하라'고 당부하는 것만으로 이러한 사기를 막기 어렵다는 점이다. 영상이 자연스럽고 목소리가 익숙하면 누구나 속을 수 있다. 특히 가족이나 직장상사, 금융회사 직원을 사칭하면서 급한 송금이나 투자기회를 내세우면 차분하게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AI가 만든 금융사기를 다시 AI로 막을 수 있을까.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이미 AI를 사기 탐지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J.P. Morgan은 방대한 결제거래 데이터를 활용해 AI 기반 위험점수를 산출하고 자금이 지급되기 전에 의심거래를 선별하며 거래 관계망을 분석해 겉으로는 정상적으로 보이는 거래에서도 사기 연관성을 찾아내고 있다. Mastercard 역시 거래와 카드소지자의 행동, 가맹점 등 여러 요소 간의 관계를 AI로 분석해 거래위험을 실시간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AI 탐지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딥페이크가 정교해질수록 가짜를 만드는 기술과 이를 찾아내는 기술의 경쟁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근 금융권의 대응은 '가짜인지 찾아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짜라는 사실을 다른 방법으로 다시 확인하는 것'으로 발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상이 실제 스마트폰 카메라에서 촬영된 것인지 확인하고, 제출된 신분증이 발급기관의 원본정보와 일치하는지 대조하며, 갑작스러운 송금지시를 받은 경우에는 그 지시가 전달된 경로가 아닌 기존 전화번호나 공식 연락수단을 통해 다시 확인하는 방식이다.

금융회사 간 정보공유도 중요하다. 한 금융회사에서 사기 의심계좌를 발견하더라도 관련 정보가 다른 금융회사나 통신사, 온라인 플랫폼, 수사기관으로 신속하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비슷한 피해가 반복될 수 있다. 국내 금융회사도 기존 이상거래탐지시스템을 고도화하는 것과 함께 의심계좌와 위험정보를 기관 간 신속하게 공유하는 협력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의 대응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이제는 얼굴이 보인다고 해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상대방을 바로 믿어서는 안 된다. 가족이나 지인이 갑자기 송금을 요구하면 기존에 알고 있던 전화번호로 다시 연락하고 금융회사 직원이라는 사람이 개인정보나 자금이체를 요구하면 공식 앱이나 대표번호를 통해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을 믿는다'는 기존의 신뢰방식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것이다.

AI가 만든 금융사기를 막는 데 AI는 분명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더 뛰어난 탐지기술 하나만으로 금융소비자를 지킬 수는 없다. AI 기반 실시간 탐지, 다층적 본인확인, 송금 전 재확인, 기관 간 위험정보 공유와 소비자의 확인 습관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AI 금융사기 시대의 금융소비자보호는 피해가 발생한 뒤 보상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금융회사가 위험신호를 더 일찍 찾아내고 의심스러운 거래는 실행되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해 피해를 막는 것, 사후구제보다 사전예방에 더 많은 힘을 싣는 것이 AI 시대 금융소비자보호의 새로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최미수 서울디지털대학교 세무회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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