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 토요일

  • 서울 10℃

  • 인천 11℃

  • 백령 10℃

  • 춘천 10℃

  • 강릉 6℃

  • 청주 11℃

  • 수원 12℃

  • 안동 12℃

  • 울릉도 8℃

  • 독도 8℃

  • 대전 11℃

  • 전주 10℃

  • 광주 10℃

  • 목포 11℃

  • 여수 12℃

  • 대구 12℃

  • 울산 12℃

  • 창원 13℃

  • 부산 13℃

  • 제주 16℃

신용호 검색결과

[총 6건 검색]

상세검색

교보생명, 창립자 신용호 선생 영면 20주기 추모 '심포지엄' 개최

보험

교보생명, 창립자 신용호 선생 영면 20주기 추모 '심포지엄' 개최

교보교육재단은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대산홀에서 '2023 교육심포지엄 : 대산의 인본주의 교육과 미래인재 코드'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고 8일 밝혔다. 이번 심포지엄은 지난 7일 '교보생명'과 '교보교육재단'의 창립자인 대산(大山) 신용호 선생의 영면 20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는 미래교육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과 대학교수, 교보교육대상 수상자 등 총 200여 명이 참석했다. 대산 신용호 선생은 민족을 살릴 길은 오로지 교육을

대산신용호기념사업회, 장학생 3명에게 1200만원 장학금 전달

보험

대산신용호기념사업회, 장학생 3명에게 1200만원 장학금 전달

대산신용호기념사업회는 지난 12일 ‘대산보험장학생’을 선발해 장학증서와 장학금을 전달했다고 23일 밝혔다. 올해는 총 지원자 23명 중 3명의 학생을 선발했으며 1인당 1200만원씩 총 36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으며, 코로나19 감염증으로 인해 증서수여식을 생략하고 비대면으로 장학증서를 전달했다. 대산신용호기념사업회는 교보생명을 창립해 국내 보험산업을 선도했던 대산 신용호 선생의 삶과 철학을 계승하고자 2005년 설립된 공익법인이다. 대산

“함께 뭉쳐 경제활력”···30년 전 교보생명 창립자의 편지

“함께 뭉쳐 경제활력”···30년 전 교보생명 창립자의 편지

‘우리 모두 함께 뭉쳐 경제활력 다시 찾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경기 침체에 시달리고 있는 2020년 현재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던지는 듯 한 이 메시지. 사실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1년 1월 교보생명 창립자(故) 신용호 회장의 제안으로 광화문사거리에 등장한 최초의 ‘광화문글판’ 문구다. 늘 같은 자리에서 계절별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광화문글판이 올해로 서른 살이 됐다. 초기의 광화문글판 문구는 최

‘제14회 대산보험대상’ 수상 후보자 공모

‘제14회 대산보험대상’ 수상 후보자 공모

대산신용호기념사업회는 ‘제14회 대산보험대상’ 수상 후보자를 공모한다고 10일 밝혔다. 대산보험대상은 교보생명 창립자인 고(故) 대산(大山) 신용호 회장<사진>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2006년 제정한 상이다. 보험산업 발전과 보험학술 연구 등 2개 부문에 공헌한 개인 또는 단체를 선정해 시상한다. 부문별 대상 수상자에게는 각 5000만원씩 총 1억원의 상금과 상패를 수여한다. 수상 후보자 추천은 보험분야 연구자, 관계기관 종사자라면 누구나 할 수

태극기 내건 교보생명···신창재 회장, 독립운동정신 계승

태극기 내건 교보생명···신창재 회장, 독립운동정신 계승

독립운동 가문 출신의 신창재 회장이 이끄는 교보생명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서울 광화문 본사 건물에 대형 태극기를 내걸었다. 신창재 회장의 조부 신예범, 백부 신용국 선생과 교보생명 창업주인 부친 신용호 회장은 모두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신예범 선생은 일제강점기 야학당을 만들어 젊은이들에게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일본인 지주의 농민 수탈에 항의하는 소작쟁의를 주도했다. 신용국 선생은 스무 살 때 3·1운동에 뛰어든 후 호남지역 항일운

 신용호 - 먼저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라

[창업자로부터 온 편지] 신용호 - 먼저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라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나 일제 치하에서 망국의 슬픔을 직접 겪은 교보생명의 창업주 대산(大山) 신용호 회장. 어린 시절 그는 공부를 좋아했지만 광복이라는 민족의 목표를 위해 학업이 아닌 독립운동을 선택했습니다. 신 회장은 24살에 베이징에서 ‘북일공사’라는 곡물 회사를 차리고, 여기서 번 돈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했습니다. 그의 형제들과 친척들도 항일운동에 앞장섰지요. 언제나 학업에 목말랐던 신 회장. 늘 책을 가까이하며 독학했는데요. 1

+ 새로운 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