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국가들 "이웃나라 거지만들기"불만
아베노믹스가 또 한번 일을 저질렀다.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으로 엔화 떨어뜨리기에 집중했던 일본은 한발 더 나아가 '이웃나라 거지만들기'를 본격화 했다. 주변국들도 일본의 정책에 불만을 쏟아내면서 자국의 통화정책을 점검하고 있다. 일본을 필두로 한 '환율전쟁'예고판이라는 평가다.
일본은행(BOJ)은 22일 물가목표 2%로 상향하고 무제한 자산매입 등을 뼈대로 한 통화정책회의 결과를 발표했다. BOJ는 이날 회의에서 물가안정 목표를 기존의 1%에서 2%로 상향 조정하고 무제한 자산매입에 나서기로 했다.
이날 통화정책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추진하는 경기부양책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다.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재정구조 정책을 지원하겠다는 의미다. 일본은행이 물가의 명확한 수치 목표를 설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도 이를 둿받침 하고 있다.
◇아베노믹스 "이웃나라 신경쓰지 않는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자민당 총재 경선에서 당선한 이후부터 엔화가치는 곤두박질이었다. 아베 총리는 총선 승리 이후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돈을 찍어내겠다"며 경기부양책에 집중하겠다고 밝혀왔다. 특히 "내말을 듣는 사람을 일본은행 총재에 앉히겠다"며 "안되면 일본은행법이라도 뜯어 고치겠다"고 공공연하게 일본은행을 압박해왔다.
엔저 현상은 매우 빠르게 진행됐다. 지난해 9월 엔화는 달러당 77.71까지 떨어졌고 최근까지 80~90엔 사이를 반복하면서 엔저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 15일 도쿄 외환시장은 88.8엔이었다. 두 달만에 12%나 절상됐다.
일본이 인위적으로 통화가치를 하락시키면서 주변국들도 불편한 심기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 17일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일본의 통화정책에 대해 "인위적인 통화가치 하락은 IMF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다"며 “이웃 나라를 거지로 만드는 정책을 각국이 채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의 옌스 바이트만 총재는 21일(현지시간) "중앙은행에 대한 정치권의 완화 압박은 독립성을 위태롭게 한다"며 "무엇보다 경쟁적인 통화 절하를 부추기는 위험 요소다"고 경고했다.
◇한국 기업 비상상황
이번 발표 이후 엔저 현상은 더욱 가속화 될 것으로 보면서 한국 수출기업에 비상이 켜졌다. 특히 한국과 비슷한 업종의 기업들은 경쟁력이 악화되면서 비상회의까지 개최할 정도로 문제는 심각하다. 우리나라 기업은 대외의존도가 높아 자동차, 철강, 조선 등 수출 주요 품목이 일본과 중복된 산업이 많다. 특히 중소기업은 엔화가 1%만 떨어져도 수천만에서 수억원까지 피해를 입는 상황이다.
울산발전연구원 이경우 박사는 '울산경제사회브리프'를 통해 "엔화 가치가 1%만 떨어져도 현대차 수출량이 한해 1만대 감소한다"며 "최근 10년간 원·엔 환율과 현대차 수출대수를 분석한 결과 엔화 가치가 1% 감소하면 현대차 수출량도 0.96%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스위스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의 산티탄 사티라타이 이코노미스트는 보고서를 통해 "원엔 환율이 1% 씩 떨어질때 마다 한국의 실질 수출 성장률이 1.1%포인트씩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며 "일본의 인위적인 엔화 가치 하락으로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고 분석했다.
이번 엔저 현상은 한국을 대상으로 삼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는 것이 업계의 이야기다. 이미 일본 경제계는 한국이 망가져야 살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하마다 고이치(濱田宏一) 예일대 명예교수는 "한국 기업과 경쟁하려면 달러당 100엔이 적정선"이라고 강조할 정도로 한국을 대상으로 삼았다.
증시 쪽도 상황은 비슷하다. 수출과 관련한 업종의 자금이 일본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수출주 위주로 타격을 입고 있는 상황인데 문제는 투자자들이 일본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소식도 나오고 있어 예의주시 하고 있다"고 전했다.
◇환율전쟁 서막 열리나
다음달 15~16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 중앙은행장 회의는 일본의 성토장을 넘어 '환율전쟁'이 시작되는 시점이 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미 각국의 경제전문가들은 일본의 통화정책에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만큼 일본의 과다한 엔저정책 수정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 재무통인 미카엘 마이스터 의원은 최근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에서 "일본 경제의 문제는 구조적인 결함이다"며 "이를 환율로 이용하면 구조적 치유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독일은 이날 회의에서는 가장 먼저 일본 엔저정책에 대해 공격할 것으로 예고했다. 미카엘 마이스터 의원은 다음달 7일 일본 정부 관계자와 만나 강한 우려를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이미 자국 통화절화에 대해 "할말 있다"는 논리를 만들었다. 이날 회의에서 일본이 집중공격 당할 것을 예상하고 이미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일본도 이같은 상황을 예상이라도 한 듯 연일 공격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아소 다로 부총리겸 재무금융상은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2009년 G20 환율 공조 약속을 가르키며 "일본처럼 잘 지킨 나라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아소 총리는 또 "미국이 환율전쟁에 대한 국제사회 우려를 가라앉히려면 강한 달러를 유지해야 한다"며 "유로도 그렇게 나가야 한다"고 역공을 폈다.
◇일본 정책 다른 국가들로 전이 조짐
문제는 엔저정책이 다른 국가들로 전이될 수 있다는 점이다. 수출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국가로는 통화절하는 피할 수 없는 유혹이다. 영국은 최근 인플레이션율 목표치를 2%로 완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영국은행 총재 내정자인 마크 카니는 "성장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며 "명목 성장률을 목표로 전환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발언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 기조도 심상치 않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환율은 성장과 안정을 위해 매우 중요하지만 ECB 정책 목표는 아니다"고 밝혔다. 환율정책 변화는 각국의 수단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환율 전쟁이 예고되면서 각국 경제전문가들은 일본 정책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독일 중앙은행 분데스방크의 옌스 바이트만 총재도 최근 한 강연을 통해 일본은행에 대해 "정부 간섭으로 독립성이 흔들리고 있다"며 "이 때문에 각국이 한바탕 통화절화 경쟁에 빠져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재영 기자 sometimes@
뉴스웨이 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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