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어긋난 계산’···부양책 불구 전세난민 속출
공정임대료, 렌트뱅크 등 주거안정책 대안 급부상
전셋값 오름세가 무섭다.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되는 전세물건 부족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할 방법이 없는 터라 당분간 전셋값 오름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이에 전세입자를 중심으로 주택바우처 등 실질적인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수도권 전셋값이 이달 첫째 주 기준 58주 연속 올라 최장 상승 기록을 목전에 뒀다. 현재까지 최장 상승 기간은 2009년 1월 30일부터 이듬해 3월 19일까지 60주간이다.
현재 전세시장 상승 폭과 분위기를 봐서는 이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주에도 서울이 0.23% 상승했고, 신도시와 수도권도 각각 0.09%씩 상승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거복지연대 등 21개 시민단체가 공동 결성한 ‘서민주거안정과 공공주택확보를 위한 국민회의’(서민주거안정 국민회의)는 직접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지난 4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서민 주거 안정과 공공주택 확대를 위한 10만인 서명 운동’ 시작을 선언했다. 전세입자 주거 불안정의 심각성이 극에 달했음을 바로 보여주는 사례다.
시장에서도 매매시장과 임대시장이 이미 어느 정도 분리된 터라 부양책으로는 임대차시장을 안정화할 수 없다고 보면서, 공공주택 공급과 함께 주택바우처 등 선진국형 주거안정 제도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박기정 한국감정원 연구위원은 “무조건 전세공급을 늘리는 것에만 집중하기보다 월세시장이 확대되는 임대차 시장의 구조적 변화에 대응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제야 눈 돌린 정부···주택바우처 1조 예산 반갑다 =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통해 행복주택과 주택바우처 등 실질적인 주거안정사업에 예산을 할애해 눈길을 끈다.
국토교통부의 내년 정부 예산은 평년 수준인 총 20조5000억원이다. 이 중 관심을 끄는 것은 주택바우처 예산이다. 정부는 내년 6~9월 석 달간 총 3만가구에 대해 주택바우처 시범사업을 추진하기로 하고 236억원을 배정했다.
이와 별도로 내년 10월부터 본사업이 시작하면 보건복지부에 배정된 주거급여(7285억원) 중 2340억원이 국토부로 이관된다. 2015년부터는 97만가구에 월평균 11만원씩, 총 1조원이 주택바우처 예산으로 투입될 전망이다.
저렴한 공공주택 공급 확충을 목적으로 추진되는 행복주택사업에는 1조여원이 투입된다.
다만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이 미비하고, 임대료 상승 등 문제는 풀어야 할 숙제다. 특히 국민임대주택 수준으로 책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임대료도 예상과 달리 높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 있어 우려를 나타낸다.
철도용지와 유수지를 활용하는 만큼 철도 소음, 유수지의 악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축비가 최대 3.3㎡당 800만원선까지 폭등할 수 있다 주장이 이를 뒷받침한다.
일각에서는 사업비가 추정치인 14조7000억원에서 20조원까지 치솟으면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도시개발공사(SH) 경영부실을 가중시키고, 임대료도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행복주택 사업 예산은 정부 출자와 국민주택기금 대출 등을 합해 총 9530억원(새로 지정할 4만6000가구와 올해 발표한 시범사업 1만가구 해당)이 배정됐다.
◇내년 시행 앞둔 주택바우처···미국선 효과 입증 = 임대주택시장이 월세로만 이뤄진 미국 등 선진국에선 주거안정을 위한 다양한 월세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먼저 가장 익숙한 주거안정 대책으로는 주택바우처가 있다. 정부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할 예정이기도 한 이 제도는 저소득 월세입자에게 월세 일부를 정부가 직접 보조해 주는 형태다.
국토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1997년부터 2005년까지 새로 주택바우처 보조를 받게 된 가구 소득 수준을 확인한 결과, 신규 보조가구의 78%가 극빈층에 해당했다.
지역중위 소득의 50% 이하 가구까지 포함하면 전체 신규 수급가구의 99%를 차지한다. 즉 극빈층 저소득가구의 주거안정에 도움을 주는 제도임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한 연구에서는 주택바우처를 통해 주거지를 이동한 가구가 빈곤율이 낮은 주거지로 이동하면서 정신건강도 상당히 향상됐다는 결과도 있다.
캐나다에서는 ‘렌트뱅크’를 펼치고 있다. 저소득 세입자가 한시적으로 월세를 내지 못하면 정부가 저금리로 자금을 빌려 주는 제도다.
영국은 지난 1965년 공정임대료 제도를 도입해 시행 중이다. 기존 임대료에 물가상승률을 연계, 집주인이 마음대로 임대료를 올릴 수 없게 하는 게 이 제도의 취지다.
미국 뉴욕시 역시 임대료안정위원회를 통해 매년 임대료 상승 상한선을 정한다. 집주인이 임의로 임대료를 올릴 수 없도록 막아 세입자의 부담을 완화시켜준다.
이들과 달리 국내에서는 전월세 상한제와 세입자의 계약 갱신 청구권 도입을 놓고 여야가 첨예한 갈등을 빗고 있어 주거안정책 도입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김지성 기자 kjs@
뉴스웨이 김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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