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위기의식 커질수록 요구 커져삼성전자·현대중공업 인사 통해 드러나‘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반성의 의미도관례·관습에 얽매인 노장들 변화 소극적
삼성전자가 지난 2일 단행한 사장단 인사에서 승진자는 모두 50대였다. 반면 60대 사장은 모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권오현 회장과 윤부근·신종균 부회장이 승진했지만 현업에서 손을 떼고 인재양성·사회공헌 등의 활동을 하게 된다.
현대중공업 역시 마찬가지다.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은 자문역으로 위촉됐고 권오갑 현대중공업 부회장도 현업에서 물러나 지주회사인 ‘현대중공업지주(가칭)’를 맡게 됐다. 반면 계열사에는 상무·전무급 임원이 전무·부사장으로 승진해 대표이사로 내정됐다. 삼성에서 나타난 세대교체 바람이 현대중공업에서도 이어진 셈이다.
재계에 불고 있는 세대교체 바람은 위기의식의 반증이기도 하다. 글로벌 경제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젊은피’를 대거 수혈하는 셈이다. 이는 외환위기·금융위기 등 글로벌 경제가 어려울 때 마다 반복된 역사적 흐름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반도체 슈퍼호황의 영향이 크다. 반면 수년전 영업이익의 70%까지 차지했던 스마트폰 사업은 영업이익이 반토막났다. 가전사업 역시 성장 정체와 글로벌 경제 심화로 어려움이 계속된다. 반도체 슈퍼호황이 한풀 꺾이는 순간 위기감은 현실로 나타난다. 실적호전에도 세대교체를 선택하면서 변화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 임직원에게 전달했다.
현대오일뱅크를 이끌던 권오갑 부회장은 지난 2014년 친정인 현대중공업으로 복귀했다. 조선업 위기로 현대중공업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물러났던 최길선 회장도 함께 복귀했다. 사상 초유의 위기 상황에서 경험 많은 두 사람이 구원투수가 돼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3년여간 쉴 새 없는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사실상 팔 수 있는 자산은 다 팔았다. 보유하고 있던 포스코·KCC·현대차 등 주식과 유휴부동산 등을 모두 처분했고 현대종합상사·현대기업금융·현대기술투자·현대자원개발의 계열분리를 통해 몸집을 줄였다. 올해도 호텔현대·현대아이디얼전기 등을 매각했고 하이투자증권 매각도 막바지 단계다.
구조조정 작업이 일단락된 현대중공업은 이제 재도약을 위해 본격적으로 뛰어야 하는 시점이다. 구조조정의 주역은 뒤로 물러나고 젊은 경영진이 전면에 나서 성장을 도모해야 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또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돼 주요 계열사의 덩치도 줄어든 만큼 젊은 경영진에게 과감하게 기회를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 게이트’도 재계에 세대교체를 부추긴 요인으로 꼽힌다. 삼성그룹은 올해 초 미래전략실을 해체하면서 최지성 전 부회장을 비롯해 미전실 팀장 9명이 일괄 사퇴했다. 사실상 세대교체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삼성 이외에도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낸 재벌그룹이 적지 않기 때문에 올 연말인사에서 이에 대한 문책성 세대교체도 예상된다.
앞으로 진행될 임원인사에서 가장 먼저 주목되는 곳은 현대차그룹이다. 현대차그룹에게 가장 크게 요구되고 있는 것이 세대교체이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 중국 양쪽 모두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중국에서는 사드 보복 여파로 한때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미국에서는 SUV로의 시장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는 정몽구 회장의 활동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9명이나 되는 부회장들이 제 역할을 못했다는 비판을 듣기에 충분하다. 현대차그룹 부회장단은 정 회장과 오랜 시간 함께 일하며 가신으로까지 불린다. 오랜 경험과 연륜을 갖추고 있지만 관례·관습에 얽매여 변화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다. 현대차그룹이 정의선 부회장 체제를 서두르기 위해서라도 세대교체는 불가피하다.
SK그룹은 지난 2015년 최태원 회장이 복귀한 이후 세대교체 기조를 이어오고 있다. SK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젊은 CEO들은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이끌면서 세대교체의 효과를 그대로 보여줬다. 이에 따라 SK그룹의 올해 연말 인사는 전면적인 세대교체보다는 안정 속의 변화를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LG그룹 역시 올해 주요 계열사가 호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만큼 사장단의 대대적인 물갈이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잘하고 있을 때 변화해야 한다는 세대교체의 의미를 떠올리면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구본무 회장과 구본준 회장이 형제경영을 펼치고 있는 만큼 이러한 경영 체제가 사장단 인사에 반영될지 주목된다.
롯데그룹은 올해 화학·식품·유통·호텔 등 4개의 사업부문(BU)으로 그룹 체제를 재편하고 새로운 CEO 4명을 선임했다. 이미 신동빈 회장의 친정체제가 구축된 만큼 사장단인사에서의 변화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지주회사 체제 전환에 따라 부사장급 이하에서는 세대교체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다음달 22일 예정된 신동빈 회장의 1심 선고 결과도 변수다.
GS그룹은 지난해 허진수 GS칼텍스 회장을 포함해 오너가가 대거 포함된 대규모 임원 인사를 실시했다. 이 때문에 올해는 다소 조용한 인사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다만 올해 주요 계열사의 실적이 부진했고 신규 사업의 성과도 지지부진한 만큼 세대교체 가능성이 남아 있다.
뉴스웨이 강길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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