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협상 두고 韓美 ‘입장차’···靑 “전혀 다른 문제”환율 하락시 자동차·철강 등 수출 기업 판매 부진 우려“美는 큰그림 보는데 우리부처는 분리 대응” 비판도
미 무역대표부(USTR)는 28일(현지시간) 한미FTA 개정협상 결과를 설명한 ‘미국의 새 무역정책과 국가 안보를 위한 한국 정부와의 협상 성과’ 자료에서 “(미국 재무부와 한국 기획재정부가 협상을 통해) 경쟁적 평가 절하와 환율 조작을 금지하는 확고한 조항에 대한 합의(양해각서)를 마무리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문서는 우리나라와의 환율합의(Currency Agreement)를 설명하면서 ‘경쟁적인 평가절하(competitive devaluation)’나 ‘환율조작(exchange rate manipulation)’ 같은 표현을 썼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와 관련 30일 오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철강과 FTA는 패키지로 얘기했고, 그것은(FTA와 철강은) 연계된 것”이라면서도 “환율 문제는 이 문제가 논의되기 몇 달 전부터 미국과 우리, 또 환율 관련된 다자간 협상을 통해서 이미 논의를 해오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환율보고서는 4월 중순에 나온다. 보고서도 안나왔다”며 “전혀 다른 트랙으로 환율 문제가 가고 있던 것”이라며 “미국이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또한 지난 29일 정부세종청사 인근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협상 시점이 겹쳐 오해의 소지가 생겼을 뿐 번혀 별개의 문제”라고 밝혔다. 그는 “한미FTA개정과 철강 관세부과 면제는 한틀에서 이뤄졌지만, 환율 문제는 양국 재무부가 논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이 같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상황이다. 기획재정부는 “주요20개국(G20)이나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매번 나오는 얘기”라고 일축하고 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심각하다. USTR가 이런 부분을 문제 삼은 것을 넘어 협상 성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대로라면 우리나라는 인위적인 통화절하와 환율조작을 해왔으며 우리 정부가 이를 인정한 꼴이 된다.
또한 정부도 환율 부문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협의를 벌이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4월 환율보고서 발간을 앞두고 협상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혀 별개의 트랙에서 논의가 이전부터 있었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환율 문제와 관련해 가장 핵심은 공개”라며 “우리는 기본적으로 시장에 맡기되 미세조정만 하고 있으며 미국 환율보고서가 6개월간의 시장 개입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환율정책과 동향에 대한 협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대부분 국가에서는 자국의 통화 가치가 오를 경우 수출 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환율시장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게 현실이다.
예를 들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일본 경제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해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경제정책을 추진했다. 이 정책을 통해 엔화 약세를 유도하고 도요타 등 일본 주요 대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을 높였다.
반면 지난 1985년 미국 달러화가 지나치게 강세를 보이자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 등은 플라자합의를 맺었다. 약달러를 위해 상대국 통화가치를 높이는 것으로 이후 엔화는 2년간 66%, 마르크화는 57% 절상됐다. 일본 기업들은 해외로 탈출했고 이후 장기침체인 ‘잃어버린 20년’의 출발점이 됐다.
전문가들은 한국과 미국 간 진행 중인 환율정책 논의는 원화 강세를 통한 금리하락 요인이라고 진단하며 우려하고 있다.
하나금융투자 이미선 연구원은 “정부는 한미 FTA 재협상과 환율 협의는 서로 분리된 것으로 미국 정부의 발언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고 설명했지만, 외환시장은 이와 관계없이 국내 환율정책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강해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며 원화 강세로 반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런 변화는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정상화 여력에도 잠재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원화 강세로 수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 중앙은행의 금리 결정 여력이 제한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철강, 조선 등 국내 산업계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원하 가치가 높은 상태로 유지될 경우 환율에 따라 제품 가격이 올라가는 상황을 맞게 돼 수출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최근 환율하락으로 어려움을 겪는 수출기업들은 한국과 미국의 환율 협의로 원화 강세가 심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곳은 자동차 업계다. 자동차 업계는 환율이 10원 하락할 경우 국내 자동차 연간 수출액이 4000억원까지 감소할 수 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도 환율 하락에 민감하다. 원화가치 상승은 완성품을 판매하는 기업과 완성품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하는 기업 모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수출비중이 회사 매출에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철강, 조선업계도 환율이 하락할 경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수 있다.
물론 원화 강세가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 국민들의 구매력이 커져 내수활성화가 가능한 게 대표적이다. 저환율이 구매력 상승과 소비 증가로 이어지면 경기를 부양할 수 있다.
조규림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환율이 떨어지면 수출 기업들이 판매 부진에 빠질 수 있고 환율이 오르면 수출 기업들에게 있어 호재가 될 수 있다”면서도 “환율 변동성이 심하면 그 흐름을 예측할 수 없어 각 기업의 수익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한미 FTA 및 철강을 환율과 분리 대응하는 데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한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부문별로 손익계산을 맞추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에 패키지 협상을 하면서도 이를 공개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정부의 해명처럼 일괄 협상을 하지 않았더라도 정부 간 협상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접근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은 한미FTA와 철강 관세, 환율 문제 등 다양한 통상 현안과 심지어 방위비 분담까지도 하나의 큰 협상으로 접근한 반면 우리는 산업부가 FTA, 기재부가 환율, 외교부는 방위비분담 등 부처별 협상을 구분해서 보았다는 것이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교 교수는 “미국은 이슈를 연계해 큰 그림에서 보는데 우리는 부처별로 주어진 것만 본 결과”며 “미국이 환율을 FTA와 연계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기재부와 산업부 등 관계부처가 협력해 대응하지 못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뉴스웨이 주혜린 기자
joojoosky@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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