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대우조선의 민영화를 앞두고 또 하나의 어록을 남겼다. 매각 과정에서 정성립 대우조선 대표를 배제시킨 이유였는데 시원한 답변이었지만 구조조정 기업을 향한 산은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줘 뒷맛이 씁쓸하다.
이동걸 회장은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기자들과 만나 “도움이 되지 않고 필요하지도 않다고 생각했다”며 이 같이 밝혔다.
이어 “그 분도 현업으로 바쁘니 이 일까지 끌어들이면 안된다고 봤다”면서 “정성립 사장이 어차피 대우조선의 임시관리자라는 것에 대한 판단도 있었다”고 일축했다.
이는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 매각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정성립 사장을 배제시켰다는 의구심에 대한 대답이다. 일각에서는 산은의 독단적인 조치가 정성립 사장의 사의표명으로 이어졌다는 관측도 흘러나온 바 있다.
이 가운데 이동걸 회장은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으로 의혹을 정면돌파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간담회 말미에는 “정성립 사장과 유창근 현대상선 대표가 팽당했다고 하는데 그 분들의 역할은 끝났고 이젠 새 인물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당연히 외부의 반응은 냉랭하다. 굳이 ‘밀실협상’이라는 표현을 빌지 않더라도 산업은행이 기업 매각이라는 중대사를 놓고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를 막은 것으로 비쳐서다. 정성립 사장이 대우조선 경영정상화에 쏟은 지난 4년의 노력을 폄훼했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물론 이동걸 회장의 말처럼 대우조선 매각을 비밀리에 추진한 것은 전략적인 판단이었을 수 있다. 통상 기업의 M&A는 높은 수준의 보안이 요구되는 작업이라 극소수의 인물만 정보를 공유하며 대부분 임직원에겐 마지막까지 세부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비공개의 대상이 대표이사라면 얘기가 다르다. 이는 곧 매각이 확정될 때까지 대우조선 구성원 그 누구도 의견을 내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회사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인물이 빠진 협상에 의혹을 제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안타까운 대목은 이번 발언에서 구조조정 기업에 대한 이동걸 회장과 산업은행의 생각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점이다.
그간 이동걸 회장은 고비 때마다 구조조정 기업 경영진과 노조를 ‘경영 파트너’라고 칭하며 허심탄회한 대화를, 때로는 고통분담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 회장은 ‘임시관리자’라는 한 마디로 이들을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시인한 셈이 됐다. 현대상선도 마찬가지다.
일단 산업은행 측은 정성립 사장의 후임자 물색에 착수했다지만 이런 말을 듣고 과연 어떤 사람이 CEO를 자처할지 의문이 앞선다. 더군다나 정성립 사장의 후임은 현대중공업으로의 매각이 완료되면 자리를 내줘야해 ‘반쪽짜리’ 대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IT 전문가’를 원한다는 이동걸 회장의 희망사항대로 그의 입맛에 맞는 낙하산 인사가 ‘잠시’ 거쳐갈지도 모를 일이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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