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지금이나 번지르르한 말로 민심을 현혹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었다. 그런 사람일수록 인기를 끌고 대중을 현혹시키는 것 또한 같다. 특히나 먹물이나 들고, 글줄 깨나 아는 사람들이 그렇기 때문에 그 폐해는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공자는 그럴싸한 사이비 지식인의 부류를 콕 찍어 ‘향원’이라 말한다.
향원(鄕愿)은 ‘사람들에게 두루 마음을 얻는 사람으로 딱히 모난 곳이 없는 부류’라고 정의한다. 향원의 원(愿)은 착하다(善)는 뜻이다. 겉모습만 군자와 닮아 있어 사람들이 믿고 따라 영향력을 끼친다. 사이비(似而非)란 말처럼 너무 닮아서 보통 사람들은 가짜인줄 모르고 열광하고 존경한다. 심지어 다른 사람뿐 아니라 스스로도 속을 정도로 그럴듯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위험하다. 누가 봐도 가짜인줄 알면 심각하지 않다.
앞에선 온갖 세상의 좋은 말로 덕이 있는 척하지만, 뒤로는 호박씨를 까고 자기 이익을 다 챙기는 자들을 뜻한다. 공자는 세속에 영합해 이름을 팔러 다니며 ‘명망가’랍시고 행세하는 향원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내 집 앞을 지나며 들어오지 않더라도 아쉽지 않은 사람은 이런 향원류일 뿐이다”라고까지 말했다. 절도범 등 생계형 범죄자 백성은 용서하고 교화할 수 있지만 이들 향원은 증오할 수밖에 없다고까지 말했다.
향원에 대해서는 《맹자》의 ‘진심편’에도 풀이돼 있다. 어느 날 제자 만장이 찾아와 맹자에게 여쭙는다. “동네사람들이 향원을 덕이 있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가 어디를 가든 그에 맞춰 행동한다는 이야기일 텐데, 공자께서 덕을 해치는 사람으로 비판하신 것은 왜입니까?”
맹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비판하려 해도 근거가 없고, 공격하려 해도 공격할 것이 없다. 유행하는 풍속과 어울리고 더러운 세상과도 영합한다. 마치 성실하고 믿음이 충만한 듯 살아가고, 청렴결백한 듯 행동한다. 사람들은 그걸 보고 기뻐하며 옳다고 여긴다. 그렇지만 비슷한 듯하지만 아닌 것(사이비)을 미워한다. [···] 자주색을 미워하는 것은 붉은 색을 어지럽힐까 염려하기 때문이고 향원을 미워하는 것은 덕을 어지럽힐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사이비 지식인에 대해 엄격하게 비판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문(聞)과 달(達)을 구분했다. 달사(達士)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진정성을 갖췄다면 문인(聞人)은 명성이 실제보다 과장되게 난 사람이다. 자장은 공자의 제자 중 인정 욕구가 강했던 인물이다. 그가 어느 날 공자에게 물었다.
“선비가 어떻게 해야 달사(達士, 통달한 선비)란 칭송을 들을 수 있습니까?”
이에 공자는 “그대가 말하는 달사란 무엇을 일컫는가?”라고 되묻는다. 자장이 “나라에 반드시 명성이 나고, 집안에도 반드시 소문이 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공자는 “그것은 소문이 나는 것이지 통달한 것은 아니다. 무릇 통달한 선비란 소박하고 정직하면서도 정의를 좋아하며, 남의 말을 살피고 얼굴빛을 관찰하며 깊이 생각해 몸을 낮추는 사람이니, 나라에서도 반드시 (사리에) 통달하고 집안에서도 반드시 (사리에) 통달한 사람이다. 소문만 난 사람이란 대개 얼굴빛은 인자한 척하지만 행실은 어긋난다. 그런 행동을 하면서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으면서 나라와 집안에 이름(헛된 명성)이 알려지는 것이다.
예전에 ‘삼척동자’란 말이 유행한 적 있었다. 키가 3척밖에 안 되는 어린아이를 가리키는 사전적 의미가 아니다. 아는 척, 있는 척, 친한 척하며 접근하려 드는 사람을 이르는 신조어다. 그런데 공자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이에 반해 문(聞)은 겉으로 명성이 나게끔 ‘척’하는 것이다. 달사에게는 명성과 평판이 자기수양의 결과물이지만, 문사에게는 그 자체가 목적이다.
“없으면서 있는 척하고, 비었으면서 가득한 척하고, 적으면서 많은 척하면, 언제나 변치 않는 마음을 갖기 어렵다.”
정직하지 않고 속으로는 원망을 감추고서 겉으로만 좋은 얼굴빛과 비굴하리만치 공손하게 꾸민 사람들은 진정한 대인관계를 오래 이어가기 힘들다. 바탕이 정직하지 않으면서 겉으로만 태연한 척 꾸몄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점잖은 척하면서 뒤로는 자신의 욕심은 다 챙겨서 표리가 부동한 사람을 마치 벽에 구멍을 뚫거나 담장을 넘어 도둑질하는 도둑과 같다고까지 극언한다. 말하자면 문인(聞人)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공자는 이 같은 ‘삼척동자’의 사이비들을 미워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아예 불의한 사람이면 웬만하면 구별할 수 있지만 이같은 사이비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어려워 속아 넘어가기 쉽기 때문이다.
“성인은 내가 만나볼 수 없으나, 군자를 만나볼 수 있다면 이것으로 만족한다. 선인(善人)은 내가 만나볼 수 없을지라도 한결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이것으로 족하다. 없으면서도 있는 척하고, 텅 비었으면서 가득 찬 척하며, 곤궁하면서 풍요로운 척하니, 일정한 마음을 갖기가 어렵구나.”
공자가 허위에 가득찬 사이비 지식인의 대표적 인물로 꼽은 이는 소정묘다.
공자가 지천명의 나이를 지나 노나라에서 법무장관 격인 대사구를 했을 때 가장 먼저 시행한 일은 놀랍게도 소정묘를 7일 동안 재판한 후 공개 처형한 것이었다. 처형으로 부족해 육시해서 시신을 사흘 동안 조정에 내걸었다고 한다. 그것도 부임한 지 1주일 만에 말이다. 왜 그렇게 서둘러서 그처럼 잔혹하게 처벌했을까?
사마천은 《사기》 ‘공자세가’에서 소정묘가 정치적 혼란을 조성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요즘말로 하자면 민심교란죄나 민심선동죄 쯤에 해당할 듯싶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공자의 중심사상은 인(仁) 아닌가. 노나라 실권자 계강자가 “무도한 자를 죽여 사회를 바로잡으면 어떠냐”고 물을 때 “어찌 사회를 바로잡는다면서 백성을 죽일 생각부터 하느냐”고 정색하며 반격하던 공자가 아니냐 말이다. 소정묘가 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그같이 즉결 처형했을까?
소정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하나는 가상의 인물로 소정묘(少正卯)란 이름 자체가 정당성이 없는 묘한 말을 끌어대는 사람을 뜻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숙손가의 서출로서 아는 것이 많고 언변이 청산유수였던 실재인물이라는 설이다. 공자와 같은 시기에 강학(講學)했는데, 여러 차례 공자의 제자들을 자신의 문하로 흡입해 공자의 문하가 3번 찼다가 3번 비었다고 전한다.
문제는 그가 표리부동했다는 것이다. 소정묘는 말 바꾸기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출세와 사리사욕만을 위해 말 바꾸기를 일삼았다. 대사구(오늘날의 법무부장관)가 된 공자는 그를 처단하려 했다. 하지만 당시 제후나, 대부 모두 그를 감싸고 돌았다. 모두 그의 변설에 놀아난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공자는 소정묘를 처벌해야 한다며 결연하게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노나라가 흥하지 못하는 것은 충신과 간신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저 좋은 곡식을 얻으려면 반드시 잡초를 뽑아야 합니다. 소정묘는 쓸데없는 말로 나라를 어지럽히고 임금과 신하 사이를 이간하고 있습니다.”
노정공과 삼환가는 물론 심지어 공자의 제자들까지 줄줄이 항의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소정묘는 노나라의 이름 높은 선비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정치를 맡고서 가장 먼저 그를 처벌하다니, 크게 잘못된 일이 아닌가요?”라고 집단 항의했다.
공자는 이에 대해 제자들에게 사이비 지식인 소정묘를 처벌해야 할 이유를 예고한다.
“앉거라. 내가 이유를 설명해주마. 사람에게는 5가지 못된 재간이 있는데 강도질과 도둑질은 거기 끼지도 못한다. 첫째는 통찰력이 있으면서도 독을 품은 마음이다. 둘째는 편파적이면서 행동이 고집스러운 것이다. 셋째는 거짓을 말하며 논쟁을 즐기는 것이다. 넷째는 기억력이 좋으면서 추악한 것만 담아놓는 것이다.
다섯째는 잘못을 저질러놓고 변명만 유창한 것이다. 이 중 하나만 가진 사람도 종당 군자의 처벌을 면하기 어렵다. 그런데 소정묘는 5가지 재간을 모두 가진 자였다. 그뿐 아니라 어디서든 추종자들을 끌어 모으는 힘이 있었다. 입만 열면 자신의 탐욕스런 본성을 감추고 듣는 사람들을 속여 넘길 수 있는 약삭빠른 언변을 가진 자였다. 옳고 그른 것을 뒤집어놓아도 그의 거짓을 잡아내 끌어내릴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사이비지식인의 대표적 인물이기에 처벌하지 않을 수 없느니라.”
무엇이 그릇되고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를 구별하지 못하고, 일단 말로 위험한 상황만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는 편법주의가 일반인에게 만연되면 국가가 위험해진다는 논리다. 차라리 절도 등 생계형 범죄는려 용서할 수 있지만 국가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죄는 용서할 수가 없다고 설명한다. 공자는 알고 보면 모든 걸 법대로 하자는 법률지상주의자기보다 ‘소송으로 가기 전에 해결해야 한다’는 덕치, 도덕우선주의론자다. 모든 걸 법대로 해결하려는 것이야말로 위험한, 신뢰자본이 흔들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논어>의 기록이 아니고 <순자>에 나와 역사적 신뢰도가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소정묘 처벌사건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이중 잣대를 가지 지식인에 대한 혐오와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다. 모두 좋은 말을 하지만, 언행일치를 하는 것은 아니다. 또 언행일치를 온전히 실행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도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그 차이를 좁히려고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군자의 태도다. 공자가 일러주는 ‘사이비 지식인과 진정한 리더를 구별하는 방법’은 오늘날도 유용하다.
첫째, 어떤 유형의 실수를 범했는지 살피라. 사람인 이상 실수를 하지 않고 사는 이는 드물다. 다만 군자는 아량을 베풀다 법도를 어기지만, 소인은 자신의 욕심을 차리느라 각박하게 굴어 실수를 범한다. 아량형인지, 각박형인지를 구별하라.
둘째, 실수를 한 후, 구차한 변명으로 꾸미려 하는지,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고치려하는지 살피라.
셋째, 남과 자신에게 들이대는 내로남불형이 아닌지 살피라. 소인은 남에겐 엄격하고 자신에겐 너그럽게 하는 이중 잣대로 평가한다.
넷째,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지 살피라.
관련태그
뉴스웨이 안민 기자
peteram@newsway.co.kr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