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CEO 10명 불러놓고 “제2의 쿠팡 막자”정작 당사자 유니콘 기업과 네트워킹 소극적거래소 “사전 교감 없어 우리도 아프게 생각”
이날 손 이사장은 쿠팡과 같은 K-유니콘 기업들이 해외증시로 발을 돌리는 것에 대해 강한 우려감을 나타냈습니다. 미국 상장을 계획하는 국내 유니콘 기업들을 우리 시장에 붙잡아 둬야한다고 재차 강조했는데요. 지난달 31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선 “미국 기업인 쿠팡이 미국에 상장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더니 진심이 아니었나 봅니다.
손 이사장은 이날 마켓컬리, 네이버웹툰, 두나무 등의 대표적인 유니콘 기업들의 이름을 여러번 언급했습니다. 이들 기업은 모두 미국 상장설이 흘러나오고 있는데요. 두나무는 상장 자체가 불투명하다는 입장이지만, 손 이사장의 마음이 워낙 급했던 것 같습니다.
이날 간담회에서 오간 내용은 비공개라 정확히 파악하긴 어렵습니다만 증권사 CEO들은 ▲최대주주 지분율 20%룰 완화 ▲증권신고서의 잦은 정정요구와 감리 지연 개선 ▲기술평가제도 개선 ▲유니콘 기업과의 사전 네트워킹 부실 등의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손 이사장은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의결권 공동행사 약정 적극 활용 ▲상장 제도 및 상장 프로세스 개선 ▲패스트 트랙 심사기간 단축 등의 방안을 내놨습니다. 우수한 기술로 무장한 국내 유니콘 기업이 제 몸값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뜻도 밝혔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이 있습니다. 손 이사장은 대체 왜 증권사 CEO들을 10명이나 불러 모은 걸까요. 정말 유니콘 기업들을 국내에 붙잡아두고 싶었다면 해외상장을 추진하는 CEO들의 의견부터 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K-유니콘 상장 활성화를 핑계로 증권사 CEO들에게 다른 요구를 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그래서 상장을 추진하는 회사들의 입장을 들어 봤습니다. 한국에서 사업을 철수할 회사가 아니라면 금융당국의 만남 제안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는데요. 대화를 나눈 기업이 정작 해외에 상장된다면 거래소 입장이 더 난처해지지 않겠느냐는 추측도 나왔습니다.
현재 국내에 상장을 추진 중인 회사 관계자는 국내 자본시장의 전반적인 인식을 꼬집었습니다. 빠른 시간 안에 성과를 내기 원하는 국내에서 쿠팡이 상장됐다면 현 몸값의 절반도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란 지적입니다.
이 관계자는 “해외 펀드들은 15~20년짜리 상품들이 많은데 우리나라 펀드의 투자기간은 4년내외이고, 이 안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문제자산이 된다”며 “특히 기관 투자자들은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는 보수적인 투자에 익숙하기 때문에 기술기업 입장에선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호소했습니다.
대부분의 유니콘 기업들은 재무구조가 생각보다 탄탄하지 않습니다. 현재 실적보다 비즈니스 모델의 가치만 가지고 몸값을 평가받아야 하는데, 우리 자본시장은 기업의 성장을 여유롭게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손 이사장이 이런 이야기들을 상장 추진 기업들과 허심탄회하게 나눴으면 어땠을까요. 유니콘 기업들을 어떻게든 국내에 붙잡겠다는 진정성이 와닿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날 간담회에서도 “유망기업들과의 사전 네트워킹이 없다는 점은 우리도 아프게 생각한다”는 말이 거래소 관계자 입에서 나왔습니다.
특히 이날 간담회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손 이사장이 이미 수차례 언급했던 내용입니다. 지난달 한국거래소 5대 핵심전략 발표 당시 ▲코스피 상장제도 개선과 심사프로세스 전문화 ▲기술특례 평가 절차 간소화 등을 이야기했었죠. 성장형 기업에 적합한 질적 심사기준을 마련하겠다는데,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앞서 손 이사장은 “올해 여러 유니콘 기업의 상장이 물망에 오르고 있는데 이들이 국내 상장에 더 큰 매력을 느끼도록 우호적 환경을 만들겠다”고 수 차례 이야기 했습니다. 이제는 ‘계획’, ‘예정’, ‘추진’이라는 말보다 실질적인 개선책이 나와야 합니다. 유니콘 기업들의 속마음을 헤아릴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면 ‘K-유니콘 국내상장 활성화’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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