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 신세계에 이커머스 뒤처져 격차 메우기 어려울 듯온·오프라인 모두 신세계에 주도권 내주는 최악 상황 현실화
롯데그룹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인수합병(M&A)을 비롯한 외부와의 협업 등을 계속해서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미 롯데그룹이 이베이코리아라는 대어를 놓치면서 경쟁사와의 격차를 메우기 힘들어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통 큰 베팅’ 안 했다···3조원 써내며 사실상 발 빼=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 이베이 본사는 전날(현지시간) 진행된 이사회에서 이베이코리아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신세계그룹을 선정했다.
지난 7일 마감된 이베이코리아 매각 본입찰에는 롯데쇼핑과 이마트가 참여해 각각 3조원, 4조원 안팎의 가격을 제출했다. 롯데쇼핑은 이마트보다 1조원가량 적은 금액을 써내면서 이번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인수전 초반부터 롯데그룹은 이베이코리아 매각 측이 원하는 몸값 5조원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의견을 지속해서 내비쳐왔다. 롯데그룹 고위 관계자도 “삼정KPMG에 인수 관련 회계 컨설팅을 맡겼는데 카카오뱅크 지분을 빼고 3조원 수준이라는 판단을 했다”며 “매각 측이 원하는 5조원 수준의 베팅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기도 했다.
매각 측이 원했던 5조원이라는 가격은 상당히 큰 금액이다. 이는 롯데그룹이 롯데온을 개발하는 데 투자한 비용인 약 3조원을 훌쩍 넘는다. 최근 주력 사업 부진으로 그룹 매출이 쪼그라든 롯데그룹 입장에서 조 단위 인수전에 통 크게 베팅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롯데그룹은 이베이코리아라는 매물의 매력에 비해 지나치게 몸값이 비싸게 책정됐다고 판단했다. 롯데그룹은 이 기조를 유지하면서 3조원 초반대의 금액을 베팅해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서 사실상 발을 뺐다. 신세계그룹이 4조원의 인수가격을 써내며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과 대조적이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검토 결과 당초 기대보다 시너지 크지 않고 인수 이후 추가 투자 및 시장 경쟁 비용도 많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돼 보수적 관점에서 인수 적정 금액을 산정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은 신세계에 추월, 오프라인도 뒤처져=롯데그룹이 주춤하는 사이 신세계그룹이 이베이코리아를 거머쥐면서 두 회사는 이커머스 분야에서 격차가 완전히 벌어지게 됐다.
두 회사는 오프라인 사업에서도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롯데 입장에서는 더욱 뼈아프다. 이번 인수전 패배로 롯데그룹이 이커머스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보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롯데쇼핑은 지난해 4월 야심 차게 출범한 통합 애플리케이션 롯데온이 부진해 돌파구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롯데온은 롯데그룹이 수년간 3조원이 넘는 금액을 투자하며 공을 들였지만,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롯데온의 거래액은 7조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7% 성장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국내 이커머스 시장이 전년 대비 19.1% 성장했고 경쟁사인 신세계그룹의 SSG닷컴은 거래액(3조9000억원)은 전년 동기보다 37%나 증가한 것과 비교했을 때도 아쉬운 성적이다.
올해 1분기 실적은 이보다 더 악화했다. 매출액은 280억원에 그치면서 41.9%나 급감했고 영업손실은 지난해 150억원에서 올해 290억원으로 2배 정도 늘었다.
반면 신세계그룹은 이번 인수가 마무리되면 G마켓, 옥션, SSG닷컴 등을 합쳐 총 거래액이 24조원에 달하게 된다. 신세계그룹의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도 3%에서 18%까지 상승한다. 특히 신세계그룹의 우군인 네이버쇼핑의 거래액까지 더하면 50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이커머스 연합이 탄생하게 된다.
이밖에도 롯데그룹은 오프라인 사업에서도 신세계그룹에 뒤처지고 있다. 업계 1위인 롯데백화점도 상황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백화점 업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 실적이 곤두박질쳤다. 올해 1분기부터는 보상소비 등 영향으로 실적 개선세가 두드러졌는데, 여기서 롯데백화점의 매출은 11.9% 오르는 데 그쳤다. 반면 신세계는 23.8%나 뛰며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대비해서도 눈에 띄는 매출 증가를 이뤄냈다.
또 롯데마트는 이마트를 단 한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롯데마트의 연간 매출액은 2016년 8조2007억원에서 지난해에는 6조390억원까지 축소됐다. 증권업계에서는 올해 롯데마트의 연간 매출액이 5조원 후반대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M&A 언급했지만···사업 확장 의지 의문=업계는 롯데그룹의 이커머스 사업 확장 의지에도 의문을 품고 있다. 롯데온을 키워보겠다며 이베이코리아 전략기획본부장을 역임한 나영호 대표까지 영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수전에서 3조원을 베팅한 것은 사실상 포기가 아니겠느냐는 말이다.
반면 롯데쇼핑과 함께 이베이코리아 인수 후보로 거론됐지만, 본입찰에 불참한 기업들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커머스 사업 강화에 나서고 있다.
SK텔레콤은 11번가를 통해 아마존과의 연대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SK텔레콤이 이베이코리아 본입찰에 참여하지 않기로 한 대신 아마존에 11번가 지분 30%를 넘기는 작업을 추진하면서 협력을 강화할 것이란 이야기도 나왔다.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 관심을 기울였던 카카오도 최근 카카오커머스를 합병하면서 몸집을 불릴 준비를 하고 있다. 카카오 쇼핑 거래액은 아직 5조원 안팎으로 추정되지만, 카카오가 카카오톡을 바탕으로 커머스에 집중한다면 단기간에 거래액이 10조원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롯데쇼핑이 이베이코리아를 놓치면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기회를 놓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통업계 중심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빠르게 넘어가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온라인 부문에서 기초체력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점유율이 높은 플랫폼을 차지할수록 유리하다. 점유율 싸움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선 이베이코리아 정도 규모의 업체를 차지해야 한다.
현재 시장에 나와있는 매물은 배달 애플리케이션인 ‘요기요’다. 롯데그룹은 요기요 인수전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으나 지난달 10일 진행된 예비입찰에는 불참한 상태다. 그러나 이번에 이베이코리아 인수를 접으면서 대신 요기요 인수에 뛰어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엑시트를 목적으로 두고 있는 이커머스 기업들도 거론된다. 특히 티몬은 롯데그룹이 인수 대상으로 관심을 가졌던 만큼 조심스럽게 오르내리고 있다. 롯데그룹은 2~3년 전 티몬 인수를 검토했으나, 매각 측이 갑자기 가격을 올리면서 인수합병이 무산된 바 있다. 티몬은 지난해 예상보다 아쉬운 실적을 내면서 상장에 차질을 빚고 있는데, 일각에서는 티몬이 사실상 매각으로 전략을 선회했다는 이야기도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는 가지고 있는 자산이 많기 때문에 이커머스 시장에서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점유율을 가진 플랫폼이 매물로 나오면 M&A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하지만 이베이코리아 규모의 업체는 당분간 매물로 나오기 어렵기 때문에 롯데온이 몸집을 불리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웨이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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