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량 관리로 가계부채 급한불은 껐지만 풍선효과, 금리상승에 소비자 부담 가중 ‘사모펀드 판매사 징계’도 내년으로 연기 동일기능 동일규제 고집···혁신정책 실종
금융권에 따르면 고승범 위원장은 8일 취임 100일을 맞는다. 지난 8월31일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의 뒤를 이어 정식 취임한 고 위원장은 금융정책의 좌표를 재점검해 경제 성장에 기여하겠다는 포부와 함께 임기를 시작한 바 있다.
특히 코로나19 대확산과 맞물려 크게 늘어난 급증한 가계부채를 집중 관리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금융불균형을 해소하자는 게 그의 첫 주문이었다.
◇가계부채 증가세 잡았지만···서민·실수요자 보호는 과제=이처럼 고 위원장이 이어온 지난 3개월의 여정은 ‘가계부채 관리’라는 단 하나의 키워드로 압축된다. 한국은행 통화정책위원 출신이자 ‘매파’로 분류되는 그는 줄곧 총량에 기반한 가계부채 관리의 필요성을 역설해왔고 때로는 정책을 수정하는 과감한 행보로 시장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40% 규제 시기를 조율한 게 대표적이다. 금융당국은 10월26일 ‘가계부채 보완대책’을 발표하면서 2023년까지 순차적으로 도입하려던 DSR 규제 시기를 단계별로 1년씩 앞당기고 현행 60%인 제2금융권의 DSR 기준을 50%까지 내리기로 했다. 취임 전부터 고 위원장이 예고한대로 추진한 셈이다.
또 당국은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올해 6% 수준)를 맞출 것을 주문하며 은행권을 강하게 압박했다. 이로 인해 NH농협은행을 시작으로 9월부터 KB국민은행, 하나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의 대출 취급 중단 움직임이 이어지기도 했다.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7월 15조3000억원에 달하던 월별 가계대출 증가 규모가 ▲8월 8조6000억원 ▲9월 7조8000억원 ▲10월은 6조1000억원 ▲11월 5조9000억원(잠정) 등으로 축소됐다. 가계대출 증가율 역시 7월 10.0%로 최고점을 찍은 이후 지속 내려가면서 11월엔 7.7%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당국도 성과에 만족스러워 하는 눈치다.
안타까운 대목은 이 과정에서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중은행의 대출 취급이 급격히 감소하는 가운데 금리가 상승하면서 아파트 입주, 전세계약 등을 앞둔 실수요자의 어려움이 가중됐다. 동시에 인터넷전문은행과 저축은행 등으로 대출 수요가 쏠리는 ‘풍선효과’도 나타나면서 1금융권과 2금융권의 금리가 역전되는 현상까지 빚어졌다.
이 같은 상황은 내년 가계부채 증가율을 4~5%로 제시한 고 위원장의 과제라 할 수 있다. 대출 총량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면서도 소비자의 부담을 어떻게 덜어내느냐가 가장 큰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고 위원장은 “차주별 ‘DSR 규제’가 확대되면 가계부채 증가세가 안정될 것”이라며 “총량을 기반으로 하되, 체계적인 시스템 관리로 전환함으로써 서민, 실수요자의 자금 조달 어려움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내년으로”···기약 없는 사모펀드 징계=다만 가계부채 관리 외에는 이렇다 할 실적이 없다. 고 위원장의 ‘친(親)시장’ 정책 철학을 반영한 듯 당국은 지난 3개월간 민감한 사안에 거리를 두며 오히려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라임 등 사모펀드 판매사 징계가 그 중 하나다. 내부 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 즉, 금융회사지배구조법 관련 제재와 관련해 최종 결정권을 쥔 금융위원회가 뜸을 들이면서 금융사 징계가 기약 없이 미뤄진 실정이다.
앞서 금융위는 라임판매 증권사·은행, 디스커버리와 옵티머스 판매사 등 부실펀드 판매 금융회사의 제재조치안을 쟁점별로 분리하기로 했다. ‘자본시장법’ 위반사항과 ‘금융회사지배구조법’ 위반사항으로 나누고 쟁점이 좁혀진 자본시장법 위반 건부터 처리한다는 복안이었다.
이에 금융위는 12일 정례회의에서 김형진 전 신한금융투자 대표에게 ‘직무정지 3개월’ 처분을 내리고 박정림 KB증권 대표에 대해선 ‘주의적 경고’를 확정한 뒤 금감원이 조치토록 했다. 하지만 지배구조법 위반 사항과 관련해선 논의 일정조차 잡지 못한 상태다. 정례회의 일정을 고려했을 때 관련 징계는 또다시 해를 넘길 공산이 크다.
이는 그만큼 부담이 크기 때문일 것이란 게 전반적인 시선이다. 현직 CEO의 중징계 확정 시 금융사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데다, 앞서 진행된 ‘DLF(금리연계형 파생결합상품 사태’ 행정소송에서 금융감독원이 패소한 바 있어서다.
그러나 금융위가 이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면 시장에 부정적인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업계는 지적한다. 자칫 당국이 면죄부를 주는 것처럼 비춰질 뿐 아니라 금융회사로서도 지배구조 리스크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최종 결론이 미뤄지다보니 일각에선 징계 대상에 오른 일부 CEO가 연임할 것이란 관측까지 제기되고 있다.
고 위원장은 “지배구조법상의 내부 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 사항에 대해선 사법적인 판단에 대한 법리 검토 등을 거쳐 종합적으로 판단할 예정”이라며 “법과 원칙에 따라 객관적이고 공정한 제재가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
◇‘동일기능 동일규제’ 원칙에 실종된 혁신금융=이밖에 당국의 혁신금융 정책은 기존보다 퇴보했다는 게 시장의 냉정한 평가다. 고 위원장 취임 이후 핀테크 등 업권을 향한 당국의 태도가 180도 달라진 데다 대환대출 플랫폼 등 현안에 대해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사실 고 위원장은 취임 전후 기업의 자율성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하면서도 빅테크·핀테크에 대해선 규제를 강화하려는 제스처를 취해왔다. 이들 업계 역시 이른바 ‘동일기능 동일규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였다.
일례로 당국은 카카오페이·토스 등 온라인 플랫폼의 금융상품 정보 제공 서비스를 ‘광고’가 아닌 ‘중개’로 간주하겠다는 지침을 내리면서 우회적으로 빅테크·핀테크를 향한 공세에 나섰다. 그러면서 자체적인 시정노력이 없으면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며 강도 높은 어조로 경고하기도 했다.
아울러 기존 금융사의 반발에 제동이 걸린 대환대출 플랫폼 구축 작업도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다보니 위축된 핀테크 업계에선 혁신금융 정책에 대한 고 위원장의 철학에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다. 당국의 규제가 강화되고 있기도 하거니와 그가 관련 분야에 대해서는 명확한 철학을 공유하지 않은 탓이다. 지난 3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송년 기자간담회에서도 혁신 금융과 관련한 고 위원장의 언급은 없었다.
하지만 당국이 이처럼 기존 금융권에 편향된 정책을 이어간다면 산업 육성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세계적 흐름에서도 뒤처질 것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일단 고 위원장은 오는 9일 강남 디캠프에서 핀테크 기업과 취임 후 처음으로 간담회를 갖고 지원 방안을 모색한다.
고 위원장은 “금융위의 기본적인 미션은 금융안정을 통해서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라며 “가계부채 관리를 관리하면서도 서민·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데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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