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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거스를 수 없다"는 강석훈···실종된 산업은행 리더십

오피니언 데스크 칼럼 차재서의 뱅크업

"거스를 수 없다"는 강석훈···실종된 산업은행 리더십

등록 2022.09.16 10:12

차재서

  기자

reporter
"국정과제를 거스를 수 없다. 최고 책임자의 뜻을 뒤집을 수 없다."

한 시간에 걸쳐 많은 말이 오갔지만 정작 남은 것은 이 두 마디였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이 언론과 공식적으로 마주한 지난 14일의 기자간담회 얘기다.

취임 100일을 기념해 마련된 강석훈 회장의 간담회는 여러모로 세간의 관심을 받은 자리였다. 산업은행 본점 부산이전 건으로 은행 안팎에 전운이 감도는 데다, 대우조선해양이나 아시아나항공과 같은 굵직한 기업의 구조조정도 현재진행형인 만큼 자연스럽게 그의 입으로 시선이 모였다. 새 국책은행 사령탑이 어떻게 전임 회장의 그림자를 걷어낼지 주목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실망이 컸다. 대우조선의 분할매각, 항공사 통합을 심사 중인 주요국 경쟁당국 동향, HMM(옛 현대상선)의 민영화 필요성 등은 누구나 예측할 만한 내용이었고, 부산이전과 관련해서도 갈등 국면을 타개할 만한 답변은 나오지 않은 탓이다. 알맹이가 없었다는 얘기다.

특히 강석훈 회장은 부산이전에 대해 '정부 방침이니 어쩔 수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며 같은 시간 반대 집회를 위해 본점 로비에 모여든 직원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논란이 된 발언은 이렇다. 이날 강 회장은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제7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국회 예결위 현안 질의에서 국무총리와 부총리가 확약한 사안"이라며 "국가의 최고 책임자가 정한 것을 산업은행 회장이 뒤집을 수 없다는 점을 직원이 이해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산은 본점을 서울에 두도록 한 산업은행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부·울·경 지역 영업조직을 확대하고 자산을 배분하는 등 방안을 가능한 빨리 시작할 것"이라며 "내년 초에는 해당 조직이 가시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국정과제로 선정된 이 문제를 놓고 직원과 찬반토론을 하는 게 의미 있을지 모르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즉, 강 회장은 '정부가 부산 이전을 요구하니 직원이 반대하더라도 실행에 옮기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다만 신임 회장의 이러한 메시지에 은행 안팎에선 우려가 상당하다. 단순히 임직원의 뜻을 배제한다고 해서만은 아니다. 정부를 앞세워 모든 구성원에게 맹목적으로 따를 것을 종용하고 있어서다. 앞으로의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서 그가 대통령과 여당의 이해관계를 최우선 순위로 둘 것임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국가 정책금융 시스템과 은행 차원에서도 퇴보가 아닐 수 없다.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산업별 위기대응 체계를 구축한 수년간의 노력이 무위로 돌아간다면 말이다.

그간 산업은행은 조선·해운·자동차·항공과 같은 전통 제조업의 구조조정부터 IT·스타트업 등 신산업 육성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표면적으로 정부가 결정하는 것처럼 보여도 해법을 제시한 곳은 분명 산업은행이었다. 금호타이어·아시아나항공 매각,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의 한국GM 공동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산업은행이 고비마다 목소리를 정확히 내줬기에 가능했다. 그만큼 이들은 핵심 과제의 해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면 정부에 협조를 구하고, 그렇지 않은 사안에 대해선 갈등을 빚더라도 할 말을 했다.

그 중엔 부산이전 건도 있었다. 전 산업은행 회장이 공개적으로 반대하면서 성사되지 않았는데, 청와대의 신임을 받는 인사가 오히려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든 격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정반대의 상황이 된 현재, 은행 내부에선 당시의 장면이 회자되고 있다.

취임 후 불과 3개월여를 보낸 강 회장에겐 '아니라고' 말하는 게 부담일 수는 있겠다. 업무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정권의 눈 밖에 났다간 조직은 물론 개인에게 크나큰 불이익이 돌아올 수 있어서다.

그러나 지금은 주위에 신경쓸 게 너무나도 많다.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를 두드리고, 글로벌 경기침체로 한계기업은 벼랑 끝에 내몰렸다. 2050 탄소중립 목표를 위한 준비도 요구된다. 이 가운데 정부와 산업은행 회장의 시선은 어디에 있는지, 과연 이 모든 숙제보다 은행의 이전이 우선돼야 하는지 의문이다.

당연히 답은 강 회장이 해야 한다. 정부와 함께 움직여야 하는 공공기관장이지만, 때로는 국내 최대 정책금융기관의 대표자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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