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한 정국과 맞물려 금융권에도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이다. 금융권에서는 두 사람이 올해 각자의 자리에서 영향력을 키운 뒤 정치적 행보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실 이복현 원장과 강석훈 회장의 총선 출마설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이들의 총선 출마설은 정부가 지난해 이들에게 각 기관을 맡겼을 때부터 나오는 얘기다.
이 원장은 금융감독원장 임명 당시부터 정계 진출이라는 야망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가 취임 당시 "금감원 수장으로서 역할을 하겠다"며 선을 그었지만 설득력이 부족했다.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막강한 권력의 '검사라는 옷'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벗어던진 이복현 원장의 말에 진정성을 느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강 회장의 경우 두말하면 잔소리다. 19대 총선을 거쳐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이력을 보유하고 있어 다가올 총선 출마설이 나도는 것은 당연지사다.
혹자는 지금 당장 이들이 사직하고 정계로 진출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아닌데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한다. 이 원장과 강 회장의 총선 출마설에 토를 달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현재 기관마다 켜켜이 쌓여 있는 현안을 볼 때 콩밭에 가 있을 이들의 마음에 신경이 거슬리는 것 또한 사실이다.
금감원은 글로벌 불확실성에 대응해 금융시스템 안정에 신경을 쏟아야 한다.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 위기가 시장에 전이되지 않도록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챙기고 취약차주와 영세 소상공인의 연착륙을 이끌어 내야 한다.
심지어 이 원장은 금융그룹의 지배구조를 선진화하고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형성된 '과점 경쟁'을 '완전 경쟁' 체제로 돌려놓겠다는 무거운 목표마저 제시했다.
산업은행도 마찬가지다. 대우조선해양과 아시아나항공 매각 작업을 매듭짓고 정상화에 성공한 HMM(옛 현대상선)에도 새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 반도체·2차전지 등 유망사업을 글로벌 초격차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약속도 지켜야 한다.
무엇보다 본점 부산 이전을 둘러싼 긴장 국면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부산 지역 영업조직 확대를 골자로 조직개편안을 만든 강 회장이 연초 직원 45명을 해당 지역에 배치하는 강수를 두자 내부 갈등이 격화하는 모양새다. 이를 '위법·졸속 이전'으로 규정한 산업은행 노조는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청구하고 법원에 인사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하는 등 다각도로 강경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금융위원회에도 본점 이전의 부당함을 재확인하는 질의서를 공개적으로 전달했다.
국내외 환경이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금융당국 수장과 국책은행장이 정계 진출을 위해 자진 하차한다면 여론의 반응은 불 보듯 뻔하다. 대통령실 비위를 맞추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위해 각종 어려운 사안을 펼쳐놓기만 하고 '자신의 영달만을 추구하는 인물'이라는 비난이 쇄도할 것이다. '정책과제라서 어쩔 수 없다'며 직원만 부산으로 내려 보낸 강 회장은 더더욱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두 사람의 이른 20대 총선 출마설이 여러모로 환영 받지 못하는 이유다.
하나 더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다. 출마 가능성이 제기되다보니 이들의 행보 하나하나에 정치적 의미가 담기고,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쪽은 부담을 떠안는다는 점이다.
특히 이 원장은 최근 주요 현안에 대해 강도 높은 발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현명한 판단', '만장일치', '존경', '정부의 뜻' 등 수많은 어록으로 우리금융 회장 교체에 일조한 그는 거액의 성과급 논란과 관련해서도 "국민과 상생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며 은행을 재차 압박했다. 생색내기식이 아닌 실질적이고 과감한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결국 은행은 백기를 들었고 3년간 취약계층을 위해 10조원을 투입하겠다고 약조하기에 이르렀다. 금감원의 집요한 요구가 지원을 끌어낸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대통령과 검찰, 출마설을 아우르는 이 원장의 배경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신속하게 움직였을까 싶다.
물론 총선까진 많은 시간이 남았고, 아직 결정된 것은 무엇도 없다. 출마는 전적으로 본인의 결정 하에 정당이 판단할 일이다. 그러나 이를 목표로 조직과 주변 사람을 이용하는 모습을 연출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뜻을 굳혔다면 말은 최대한 아껴주시길 바란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할지라도 그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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