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 임기 마무리 소회R&D 변화 이끌어···정부 지원 '아쉬움' '오픈이노베이션·ESG경영' 활성화 강조
지난 6년간 세 번의 연임을 통해 협회를 이끌며 산업 발전에 이바지한 원 회장이 오늘(28일) 임기 만료로 퇴임한다. 서울대 약대를 나와 대한약사회장, 국회의원 등을 지냈던 그는 개방적 리더십, 도전적 마인드를 바탕으로 제약바이오 산업의 위상을 드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재임기간 동안 업계의 분위기도 확 바뀌었다. 오너 중심의 보수적 경영, 복제약(제네릭) 중심 사업 등으로 불법 리베이트와 같은 부정부패 문제가 들끓었던 이 업계는 신약 연구개발(R&D) 중심 산업으로 전환되며 보다 역동적으로 변화했다.
그럼에도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이 가야할 길은 멀다. 대내외적 경제상황 악화로 신약개발 투자가 어려워지고 있고, 기업을 평가하는 요소에 ESG경영, 의약품 설계기반 품질고도화(QbD) 및 스마트공장 도입 여부 등이 새롭게 부상 중이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뉴스웨이는 원 회장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그간의 변화와 고질적 문제, 필요한 지원책 등을 들어봤다.
"혁신 없으면 도태···자금난으로 고사하는 기업 없어야"
원 회장은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이 품질, 연구개발, 유통 등 여러 분야에서 전방위적인 변화와 혁신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세계 3번째로 코로나19 백신‧치료제를 모두 개발하고, 국내 개발 신약도 누적 36개로 늘어나는 성과를 보였다. 신약개발 파이프라인은 2018년 573개에서 2022년 1882개로 늘었으며, 시장 규모도 커졌다. 2021년 국내 의약품 생산규모는 2017년 대비 25% 성장한 25조 4906억원, 같은 기간 수출규모는 146% 상승한 11조 3642억원에 이른다.
정부와 국민들의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정부는 제약‧바이오산업을 미래 주력산업으로 선정하고 집중 육성을 천명한 상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진행한 2021년 대국민인식 조사결과에서는 '국민의 84%가 제약바이오 등 보건산업 중요성의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원 회장은 "세계적인 제약바이오산업의 성장세와 팬데믹 등을 거치면서 '제약산업이 국민산업'이라는 키메시지는 확실히 각인됐다고 생각된다"며 "협회는 이 같은 가치를 국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품질혁신과 신약개발에 대한 생태계 조성, 윤리경영 확립을 통한 산업계 투명성 강화 등을 추진했고, 산업계의 노력으로 이제는 예전과 상당히 달라진 환경이 조성됐다"고 말했다.
그러며 "이는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빅파마들과의 경쟁, 팬데믹 등으로 불거진 각국의 공급망 강화 등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각 기업 대표와 오너 차원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방면의 혁신에 나서고 있는 것"이라며 "다수의 제약·바이오기업들이 단기적인 이익보다 장기적인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과감한 R&D 투자 등을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 회장은 신약개발에 투자하기 쉽지 않은 현실적 어려움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글로벌 시장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이를 지속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원 회장은 "신약개발은 성공확률이 10%도 채 되지 않고, 오랜 기간 동안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분야다. 모든 기업들이 과감한 투자를 지속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에 공감한다"면서도 "경쟁력 없는 기업은 도태되는 것이 시장논리이며, 지속적 혁신과 기존 비즈니스모델 답습 기업들은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바이오벤처의 경우 기술력을 갖고 있는 곳들이 많은데 현재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며 "옥석가리기는 자연스러운 시장논리지만 자금난으로 인해 고사하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 정부와 민간 차원의 자금조달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원료 의존‧낮은 약가' 해결하고 R&D 독려해야
원 회장은 정부의 산업 육성 의지는 나타나고 있으나 제약 주권 확립과 제약‧바이오 강국 도약에 필요한 지원책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현재 정부는 'K-바이오·백신 펀드' 조성을 골자로 한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방안', 향후 5년간 산업 육성 지원 계획을 담은 '제3차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지원 종합계획안', 부처별 바이오헬스 육성 계획 등을 발표하며 다양한 정책적 지원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그는 "미국과 중국이 패권경쟁을 벌이고, 세계적으로 의약품 공급망이 중요해지는 시점에서 제약주권 확립과 제약바이오 강국 도약을 위한 과제가 많이 남은 것으로 느껴진다"며 "이를 위해 백신 개발, 원료의약품 개발 등 의약품 자국화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혁신의 가치를 인정하는 약가 제도 등이 정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제약기업들은 우수한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어 국내 완제의약품 자급률은 80%에 육박한다. 다만 이는 완제의약품에 한정된 것으로,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지난 2019년 기준 16.2%에 그친다.
원료의약품은 대부분 원료가 풍부하고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 인도 등에서 많은 생산이 이뤄지고 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현지에서 공장 문을 닫는 등 생산이 어려워져 전 세계 의약품 공급 차질 우려가 생기기도 했다.
원 회장은 "원료의약품 자급률이 낮으면 감염병 유행이나 외교 상황 등에 따라 국민 건강에 필수적인 의약품의 수급 불안을 겪게 될 수 있다. 제약주권 확립 차원에서 원료의약품 자급률 확대가 필요하다"며 "정부에서도 원료의약품 개발 원가를 고려한 약가정책, 국산 원료의약품 개발에 대한 세제지원 등 지원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의 혁신을 장려하는 생태계도 지속적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 회장은 "제약사들의 연구개발 독려, 혁신에 대한 보상을 위한 약가정책 시행이 시급하다"며 "제약‧바이오산업에서 혁신은 약물의 투여경로 변경 등에서 시작해 부작용 감소 및 편의성 개선을 위한 개발, 기존 약물의 재창출을 통한 새로운 약물의 개발까지 활용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혁신을 위한 보상은 경제성평가 면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환자접근성 강화 측면에서 이미 개선됐으나, 보다 광범위한 혁신의 정의를 도입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협회는 정부와 산업계의 민관협의체를 통해 혁신 정도에 따른 적정가치 보상을 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산업계의 총제적 지원을 위해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 설치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R&D, 정책금융, 세제지원, 규제법령 개선, 인력양성, 기술거래소 설치, 글로벌 진출 등을 총괄하는 정책 조정자(코디네이터) 역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지금의 제약‧바이오 지원사업은 체계적이지 않고 비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컨트롤 타워인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를 통해 중장기전략을 수립하고 각 부처를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픈이노베이션이 답···ESG‧QbD 도입도 힘써야
산업계에는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혁신) 전략 활성화를 당부했다. 끊임없는 투자와 시도들을 통해 새로운 사업 기회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모델이 도출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전략적 제휴 활성화와 융복합 혁신의료제품 개발 지원,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활용신약개발 지원 등을 통해 글로벌 블록버스터급 신약을 발굴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R&D 투자와 혁신을 가속화한다면 향후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위상은 지금보다 현격히 올라갈 것이다. 양질의 우수한 전문인력, 글로벌 블록버스터 제품을 보유한 강국으로 도약도 가능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선 적극적인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통해 기업 간 시너지를 낼 수 있는 R&D 투자와 M&A 활성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 회장은 재임 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를 언급하며 "협회에서 글로벌 오픈 이노베이션(GOI)을 추진한 적이 있다. 협력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 산‧학‧연‧정을 포괄하는 네트워크를 조성하고,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이 뛰어들어야 할 생태계 구축을 위해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며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도 각국 산‧학‧연 등과 협력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만한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당장 글로벌 블록버스터급 신약을 개발하긴 쉽지 않지만, 성공 사례를 하나 둘 만들어가면서 글로벌 강국으로 도약하게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원 회장은 내달부터 협회를 이끌 노연홍 신임 회장에게도 오픈이노베이션 생태계가 제대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길 주문했다. 참고로 노 신임 회장은 식품의약품안전청장, 대통령실 고용복지수석비서관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오픈 이노베이션 생태계가 보다 정착하고 활성화되도록 지원하고, 산업 육성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범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협회는 지속적인 산업 인식 제고는 물론 산업계의 변화와 혁신을 주도해나가야 한다"며 "이런 것들을 잘 추진해주시리라 믿는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원 회장은 최근 기업을 평가하는 요소로 떠오르고 있는 ESG경영과 QbD 및 스마트공장 도입에도 산업계가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ESG는 지속가능한 기업 활동을 영위하기 위한 비재무적 지표다. 기업이 환경을 고려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노력을 기울일 때 재무적 위험이 줄어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강조되고 있다.
그는 "협회가 지난해 9월 71개사 ESG 담당자 등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ESG 경영이 제약‧바이오산업 기업 발전과 지속가능 여부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77.5%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며 "하지만 ESG 위원회를 운영하는 현황은 절반 이상인 66.2%가 운영하지 않는다고 응답했고, ESG 전담조직을 두냐는 질문에도 아니라는 답변이 54.9%에 달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단기간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은 부분"이라며 "ESG 관련 사내 DB를 모으고 경영진의 인식 개선, 실천, 유지로 이어지는 내재화 과정을 거치는 과정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QbD 및 스마트공장과 관련해서는 "제약주권 확립과 글로벌 시장 진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국내 업계에서 고품질 의약품 생산역량 확보는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국내 기업들이 기존 제조방식에서 품질 혁신을 이룰 수 있는 첨단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며 "과거에는 QbD, 스마트공장이 낯선 개념이었으나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 속에서 도입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협회도 지원사업을 지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원 회장은 앞으로도 협회에서 고문 역할을 맡으며 제약바이오산업 성장에 힘쓸 예정이라고 했다. 이와 별도로 그는 현재 서울대 약대에서 특임교수로 활동하며 약학개론, 약학자와 약사를 위한 의사소통 등의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원 회장은 "(회장 임기 만료는) 끝이 아니라 나에게 있어 새로운 시작으로 생각된다. 어디까지나 제약‧바이오산업을 나의 업으로 생각하고 성장을 위해 여러 활동들을 진행할 계획"이라며 "제약주권 없이는 제약강국 도약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시도하며 한계 없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간 축적한 역량과 에너지를 한껏 쏟아내며 강국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웨이 유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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