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질주'서 무시당했지만 전동화 시대엔 '주인공'내연기관 엔진 리스크 벗어나 '고성능' DNA 각인"전동화 리더십 굳힌다"···중국·일본 재공략 계기도
역동적인 카체이싱 액션이 특징인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벌써 12편이나 제작될 만큼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세 번째 시리즈인 패스트 & 퓨리어스 : 도쿄 드리프트는 한국인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힌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이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인 '한'은 주인공 숀 보스웰에게 랜서 에볼루션을 타라고 하는데요. 주인공이 놀라는 반응을 보이자 한은 "그럼 현대차를 타게 할 줄 알았냐"고 반문하죠. 이 영화가 개봉한 2006년만 하더라도 현대차는 자동차 마니아들의 관심 밖이었습니다. 운전자의 가슴을 뛰게 하는 고성능 스포츠카와 거리가 먼 싸구려 브랜드였으니까요.
그로부터 15년이 넘게 흐른 지금, 현대차의 글로벌 입지는 180도 달라졌습니다. '랜서 에볼루션'이라는 걸출한 고성능 모델을 보유한 미쓰비시는 내수에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기아를 포함한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판매 3위의 완성차업체로 성장했습니다. 1990년대만 해도 미쓰비시 차량을 뱃지 엔지니어링으로 생산하던 시절이니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글로벌 완성차 시장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현대차에게도 아킬레스건은 있습니다. 브랜드의 상징의자 얼굴인 고성능차가 없다는 건데요. 후발주자인 현대차에게 고도의 기술력이 결집된 스포츠카는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고출력을 얻으려면 엔진이 커져야하고 높은 내구성도 뒷받침돼야 하는데, 현대차의 기술력으론 쉽지 않았죠. 지금까지 나왔던 스쿠프, 티뷰론, 투스카니, 제네시스 쿠페 등은 스포츠카보다는 '스포츠루킹카'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현대차는 아직도 세타엔진의 망령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현대차가 개발한 직분사 방식의 세타엔진은 높은 연료효율과 고출력이 특징이지만, 낮은 내구성 탓에 역대급 리콜사태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현대차그룹이 세타2 엔진의 품질비용으로 지불한 누적 충당금은 무려 8조원에 달합니다. 쏘나타에 들어가는 세타엔진 외에도 아반떼의 심장인 감마엔진도 품질이슈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새롭게 개발한 '스마트스트림' 엔진들은 기존보다 오히려 출력이 낮아지게 됐죠.
이랬던 현대차가 지난 2012년 고성능 브랜드 'N'을 출시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알렸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 AMG, BMW M, 아우디 RS, 폭스바겐 R과 경쟁할 수 있는 고성능차를 내놓은 건데요. BMW에서 고성능차 개발을 이끌었던 알버트 비어만과 메르세데스-벤츠 AMG의 기술자였던 클라우스 코스터 등을 영입하며 고성능차에 대한 열의를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N 브랜드는 2.0ℓ 터보엔진이 주력이다 보니 더욱 파워풀한 동력성능을 원하는 고객을 만족시키기엔 한계가 있었습니다. 현대차 입장에서도 N 브랜드 차량의 출력을 더 높이면 품질 이슈는 물론이고 강화되는 글로벌 배기가스 규제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 달 출시되는 고성능 전기차 '아이오닉5 N'은 현대차에게 의미가 깊습니다. 내연기관차에선 한계가 있었던 '고성능차'에 대한 갈증을 완전히 풀게 됐고, 브랜드 가치도 한층 더 끌어올리게 됐죠. 아이오닉5 N은 현대차를 우습게 봤던 자동차 마니아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모델입니다.
아이오닉5 N은 현대차에게 부족했던 고성능 DNA를 뚜렷하게 각인시킬 상징적인 모델입니다. 이 차가 세상에 나오면 글로벌 전기차 시장 3위에 오른 현대차그룹의 전동화 리더십도 더욱 공고하게 다져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고성능 'N' 브랜드와 전동화 '아이오닉' 브랜드가 결합한 아이오닉5 N은 현대차의 전동화 전환 핵심 전략인 '현대모터웨이'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게 될테죠.
현대차는 내연기관차에서 느꼈던 운전의 재미를 아이오닉5 N에서도 느낄 수 있도록 개발역량을 집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겁고 열관리가 중요한 전기차가 레이스 트랙 주행에서도 100%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초점을 맞췄습니다. 전기차 특유의 빠른 속도감에 예리한 코너링 감각을 더해 포르쉐 타이칸 못지않은 주행 감각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죠.
특히 그간 부진을 면치 못했던 중국과 일본 시장에서도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으로 기대됩니다. 현대차는 중국에서 아이오닉5 N을 비롯한 N 브랜드를 상하이를 중심으로 적극 판매해 나간다는 계획인데요. 지난해 5월 재진출한 일본 시장에도 내년 초 아이오닉 5 N를 출시해 현지 고객들에게 새로운 브랜드 경험을 전달할 방침입니다. 일본 소비자들은 자국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지만, 현지에 거의 없는 고성능 전기차에 대해선 마음의 문을 열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내연기관차 시대엔 패스트 팔로어였지만 전기차 시대엔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가 돼야한다"고 수차례 강조해 왔습니다. 이미 지난해 현대차그룹은 아이오닉5와 EV6를 앞세워 글로벌 3대 올해의 차 가운데 2개를 석권했는데요. 이대로라면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서 일본차가 아닌 아이오닉 N이 모두가 열망하는 레이싱카로 등장할 날도 머지않은 듯합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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