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기업의 기후변화 대응과 지속가능한 성장' 보고서의약품 매출 늘수록 온실가스 ↑, 폐의약품 문제도 대형기업 위주 대응···"기업 투자, 정부 지원 필요"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보건산업정책연구센터가 27일 발간한 '제약기업의 기후변화 대응과 지속가능한 성장' 보고서에 따르면, 제약산업은 온실가스, 폐의약품 등 환경과 관련해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의약품 제조·보관·수송 과정에서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가 다량 방출된다. 제약산업의 이산화탄소 배출은 에너지 사용에서 약 44%, 원료생산과 포장에서 약 34%가 생성된다고 알려진다.
생산량이 늘수록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나는 구조이기 때문에 매년 매출이 증가하는 제약바이오기업들의 ESG경영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제약산업에 있어 환경문제는 온실가스에 국한되지 않는다. 제조과정에서 처리돼야 하는 폐용매, 세척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수, 과잉 생산으로 인해 만료일까지 사용되지 못하는 의약품, 바이오의약품 제조에 사용되는 일회용 플라스틱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특히 무분별하게 버려지는 폐의약품은 환경오염이나 인체 재유입 등 생태계 문제를 유발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제약산업은 전통적인 굴뚝산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타 제조산업들에 비해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이 빠르지 않은 편이다. 대부분 의약품 개발과 환자 접근성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글로벌 투자자들이 ESG경영을 기업 투자의 척도로 사용하고 시장의 요구도 커지면서 다국적 제약사들을 중심으로 환경 관리에 대한 투자가 늘고 있다.
일례로 대부분의 ESG평가에서 높은 등급을 받고 있는 아스트라제네카(AZ)는 2025년까지 탄소중립, 나아가 2030년 탄소 마이너스를 목표로 하는 '앰비션 제로 카본(Ambition Zero Carbon)' 전략을 추진 중이다. 2021년 기준 아스트라제네카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5년 대비 59% 줄었다.
국내에서는 대형 제약바이오기업 위주로 기후대응에 나서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ESG 또는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는 곳은 12곳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SK바이오팜, SK바이오사이언스, 유한양행, 한미약품, 종근당, 대웅제약, HK이노엔, GC녹십자, 보령, 동아쏘시오홀딩스 등이다.
이들 기업이 가장 많이 제시하고 있는 목표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넷제로)' 달성이다. 특히 한미약품은 2040년까지 넷제로 달성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국내 12개 제약사들의 지난해 온실가스 집약도(매출 대비 배출량) 평균은 3.41이었다.
이들 기업 중 한미약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했다. 다만 진흥원은 "아직 국내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성과가 나오지는 못하고 있다"면서도 "대부분 기업 온실가스 배출집약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에너지 감축 활동에 있어서는 대부분 대규모 설비 투자보단 에너지 효율이 낮은 시설이나 장치를 고효율 제품으로 교체하는 활동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보령은 예산공장의 냉수 공급 온도 조정, 고형제동 외조기 히트파이프 설치 등으로 인해 에너지 사용량을 크게 줄였다. HK이노엔은 공기압축설비 통합 운용 컨트롤러 설치, 전력 피크관리, 보일러 운영 효율화 등으로 에너지 감축 활동을 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SK바이오팜은 신규 공장 구축시 친환경 설계를 적용했다.
폐기물 관리는 대부분 외부 전문업체와의 계약을 통해 처리되고 있다. 폐기물 발생이 가장 많은 기업은 삼성바이오로직스였는데, 매출액 대비 폐기물 발생률도 가장 높았다. 발생률이 낮은 기업은 SK바이오팜, 유한양행, 대웅제약 등이었다.
폐기물을 매립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폐기물 소각은 20~50% 정도였는데 소각을 통해 에너지를 회수하는 방식이 많았다. 폐기물 재활용 비율은 약 40~70%였고, 보령이 78.6%로 가장 높았다.
의약품 환경영향에 대한 활동을 진행하는 곳들도 있었다. 한미약품은 항생제 내성 방지를 위해 항생제 잔류의 폐수에 대한 영향평가 및 모니터링을 실시했고, 동아제약 등은 대한약사회와 업무협약을 맺어 폐의약품 수거 사업에 나섰다.
대웅제약은 친환경 미생물생합성 공정기술을 통해 약물소재 개발을 추진했다.
다만 여전히 많은 제약바이오 기업은 환경 대응에 대한 인식과 기업의 투자가 부족한 실정이다.
진흥원은 "국내 제약기업은 ESG 중에서 환경 E의 점수가 가장 낮다. 전체 상장사 대비 대부분 평균 이하"라며 "환경 부문은 재정적 투자가 있어서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있는데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규모가 크지 않아서 대규모 투자가 어렵다. 투자에 따른 이익도 눈에 보이지 않아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며 "기업의 비재무적 가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환경경영도 비용 측면보다는 비재무적 가치로 인식해야 한다"며 "또 공급망 관점에서도 국내 중소업체들은 글로벌 가이드라인을 따라할 수 없다. 작은 기업, 원료의약품 생산업체에도 적용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경영진의 인식 제고와 정부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진흥원이 국내 제약 및 환경 전문가 10명을 대상으로 '국내 제약산업 ESG 환경대응의 시급성 순위'에 대해 설문한 결과, 평균이 가장 높은 응답은 'CEO 인식제고가 필요하다'로 평균 8.10점이었다. 기업의 전사적 대응을 위해서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사업이 추진돼야 한다는 생각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다음으로는 '상장사의 공시 대응'이 평균 7.50점이었다. 국내 제약바이오 상장기업 중 ESG 공시를 하는 곳은 20% 미만인데, 공시 의무화시 이를 새로 준비하는 기업들에게는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와 함께 정부 지원의 중요성을 물은 설문에서는 ESG에 대한 '정부와 제약 CEO 간담회 개최'가 평균 7.80점으로 가장 높은 응답을 받았다. 대부분 응답자가 CEO와 임원진들의 ESG 인식 개선을 위해 정부 역할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 중 하나의 방안으로 제시된 것이 간담회 개최로, 정부의 정책 추진이 산업계의 이해와 함께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협화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두 번째로 높은 점수는 '온실가스 산정 및 검증 지원'으로 평균점이 7.30이었다. 응답자들은 환경정보 공시와 맞물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기관에서 검증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이어 '국내 협력업체의 온실가스 측정'과 '제약산업 ESG전문가 육성'이 뒤를 이었다. 각 기업들이 협력업체의 온실가스 측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ESG 내재화에 필요한 전문가도 필요로 한다는 설명이다.
진흥원은 "ESG와 환경문제는 향후 이를 준비하지 못한 기업들에게 큰 리스크가 될 것이다. 글로벌 공시 표준과 평가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며 "제약기업의 ESG는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형태가 돼야 한다. 다만 정부가 과도하게 추진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에 가이드라인과 적절한 인센티브 제공으로 기업 스스로의 역량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웨이 유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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