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2위' LG화학·롯데케미칼, 연이은 NCC 공장 매각설LG화학, 여수 SM 공장 가동 중단 검토···구조조정 가속화신학철 "뼈깎는 노력 필요"···中공세에 신규투자 '일시정지'
한때 강력한 경쟁력으로 반도체·정유와 함께 '수출 3대 효자'로 불렸던 석유화학은 중국 기업의 공격적인 증설에 따른 대규모 물량·가격 공세에 밀려 이제 '매각 1순위'로 전락했다.
생존의 위협을 받는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이제 과거의 영광에서 벗어나 빠르게 한계사업을 정리하는 동시에 다양한 신사업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기정사실화 된 NCC 매각설···2년 연속 가동률 하락
최근 국내 석유화학업계에는 연일 나프타분해설비(NCC) 공장 매각설이 잇따르고 있다.
NCC는 석유화학 기초 원료인 나프타를 분해해 플라스틱, 합성섬유, 합성고무 등의 원료가 되는 에틸렌, 프로필렌, 부타디엔 등 기초유분을 추출하는 석유화학의 핵심 설비다.
현재 국내 최대 NCC 생산설비를 갖춘 LG화학은 지분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LG화학은 지난해 4월 여수 NCC 공장 가동을 멈추고, 7월부터 매각을 추진했지만 매수자를 찾지 못해 공장을 다시 가동한 바 있다. 올해는 통매각이 아닌 지분매각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중국 내 기초소재 생산법인을 모두 정리한 롯데케미칼도 말레이시아 NCC 자회사 매각을 검토 중이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 모두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지만 시장에서는 매각설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앞서 SK지오센트릭(옛 SK종합화학)은 2020년 연간 20만t의 에틸렌을 제조하던 NCC 가동을 중단하기로 결정을 내린 사례도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수익성이 크게 악화하며 NCC 공장을 가동할수록 손해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미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공장 가동률을 낮춰 생산능력을 조절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NCC 가동률은 74%로 전년 대비(81.7%) 7.7%포인트 감소했다. 2021년 93.1%였던 가동률이 2년 연속 하락한 것이다.
최영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석유화학 설비 가동률이 과거 평균치를 크게 하회하고 있지만 올해도 공급 부담이 지속될 것"이라며 "높아진 금리, 경기 성장률 둔화 등으로 석유화학 제품 수요 증가율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중국발(發) 공급과잉 '구조적 한계' 봉착
국내 1·2위 석유화학사들이 앞다퉈 기초소재를 생산하는 NCC 공장을 매각하고 나선 것은 석유화학 업황 침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면이다.
석유화학은 경기 순환에 따라 호황과 불황을 오가는 대표적인 사이클 사업이지만 최근 석화 업계를 덮친 부진은 사이클이 아닌 구조적인 한계에 봉착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제2의 내수시장'이라 불릴 만큼 막강한 수요처였던 중국이 석유화학 제품에 대한 자급률을 무섭게 끌어올리면서 중국 수출이 줄어드는 동시에 공급과잉이라는 문제에 부딪힌 것이다.
지난해 중국의 연간 에틸렌 생산 능력은 5174만톤으로 5년 만에 2배 넘게 뛰었다. 오는 2025년이면 대부분의 기초 화학제품과 중간원료에 대한 중국의 자급률은 10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에는 경기 둔화로 자국 수요가 감소하자 남는 물량을 해외로까지 쏟아내고 있다.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업체들의 공세에 수익성은 더 나빠졌다.
그러는 사이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석유화학제품 수출액은 456억달러로 전년 대비 15.9% 감소했다. 석유화학 산업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 수출액은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과거 50%에 육박했던 국내 석유화학 수출의 대(對)중국 비중은 지난해 36.3%로 떨어졌고, 업황을 가늠하는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는 지난해 4월 이후 손익분기점(300달러)을 한참 밑돌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홍지상 연구위원은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자급률 제고와 대규모 증설로 인한 공급과잉으로 석유화학 수출이 감소세로 돌아섰다"며 "글로벌 수급 불균형 지속과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자급률 상승으로 시황 악화가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신학철 부회장이 예고한 '뼈를 깎는 노력'···구조조정 본격화
글로벌 석유화학업계를 뒤흔든 중국의 공세를 계기로 연초부터 사마다 사업 구조조정이 가속화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신규 투자 중단과 한계사업 설비 매각에 나서는 등 분주한 대응을 하고 있다.
올해 초 신학철 학국석유화학협회장이자 LG화학 부회장의 "석유화학 산업 모두는 뼈를 깎는 생산성 제고, 비용 절감, 품질 향상의 자구노력과 함께 창조적 파괴를 통해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말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NCC 공장 매각을 추진하는 LG화학은 이달 말 여수 SM 생산 라인 가동 중단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해부터 중국 기업들이 석유화학 자급률을 늘리며 제품 생산 능력을 키웠고, 그에 따라 제품 가격은 내려가 경쟁력이 약화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3대 신성장(전지 소재·친환경소재·혁신 신약) 분야로의 사업 전환을 서두르는 LG화학은 지난해에도 IT 소재 사업부의 필름 사업 중 편광판 및 편광판 소재 사업을 중국 업체에 매각한 바 있다.
다른 석유화학 기업 역시 LG화학의 구조조정 흐름을 따르고 있다. 수익성이 급감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공장 가동률을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무리한 투자를 지양하고 있다.
효성티앤씨는 추진 중이던 부탄다이올(BDO) 사업 진출을 철회했고, 한화솔루션도 크레졸 투자 계획을 연기했다.
롯데케미칼은 역시 지난해 진행한 콘퍼런스콜에서 인도네시아 라인프로젝트 등 핵심 투자를 제외한 나머지 투자 계획에 대해 보수적인 관점에서 재검토한 뒤 시기를 재조정할 것임을 밝혔다. 또 페트(PET)병을 화학적으로 재활용하는 해중합 시설 투자 기간을 오는 2027년 12월 31일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이들 석유화학 기업들은 수익성이 낮은 한계사업을 정리해 현금을 확보하거나 투자 속도를 조절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지만 체질 개선을 위한 신사업 투자로 재무구조가 흔들리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만성적 공급과잉에 수익성 개선 시점이 예측되지 않는 만큼 사업 구조조정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다"이라며 "당장 가중될 재무 부담보다 신사업 투자를 통한 체질 개선의 가치가 중장기적 관점에서 더 크다는 판단하에 조금이나마 부담을 줄이기 위한 한계사업을 정리가 이어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뉴스웨이 김다정 기자
ddang@newsway.co.kr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