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친화적 車' 원하는 시대적 요구, SDV 개발 동력 작용인포테인먼트 기능부터 차내 결제·헬스케어까지 차내 가능현대차 등 글로벌 업체 각축전···보안 이슈 등 변수 해결 필요
성능 업그레이드가 어려웠던 전통적 완성차에서 사용자 스타일에 따라 차의 성능을 바꿀 수 있는 자동차용 소프트웨어 구동이 가능한 시대, 소프트웨어 기반 자동차(SDV)의 시대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그룹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주요 자동차 생산 업체들은 일제히 SDV 전환을 향한 전사적 투자에 나서고 있다.
SDV란 Software Defined Vehicle의 약자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진화하는 자동차를 뜻한다. 자동차에 탑재된 소프트웨어를 통해 차내 기능의 제어와 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자동차의 주행 성능, 편의·안전사양, 감성 품질 등을 지속 업데이트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의 자동차는 자동차 회사가 공장에서 만들어낸 성능에 사용자가 맞춰서 운전하는 형태에 그쳤다. 각자의 신체 특성에 맞춰진 맞춤형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의류 공장에서 만들어진 기성복의 형태에 별 수 없이 사람이 몸을 맞춰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기존의 자동차에는 소프트웨어적 요소가 거의 없는 탓에 차의 성능은 부품을 통째로 바꾸지 않는 이상 개선되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감퇴되기 마련이었다.
IT 기술의 발전에 편승해 자동차와 IT 기술의 결합이 점진적으로 이뤄졌다지만 차내에 내장된 단순 인포테인먼트 서비스의 발전이 그동안 이뤄진 자동차 소프트웨어 진화의 전부였다.
그러나 앞으로의 자동차는 기존의 자동차와 차원이 다른 형태로 만들어질 전망이다. 몇 년 안으로 상용화가 본격화될 SDV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가능하고 능동적인 컴퓨팅 시스템으로 차의 성능을 개선시키는 수준까지 진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차에 대한 가치 변화가 SDV 시대의 개막 요인
그동안 생산됐던 자동차들은 전통적으로 외부와 분리된 개인의 소유 공간으로서 운전에 대한 쾌감을 주는 오락의 매개체로 140여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 때문에 자동차가 전통적으로 보유했던 가치들이 희미해지고 있다.
차의 안과 밖이 분리되지 않는 초연결적 가치가 강조되고 운전은 '즐거운 것'이 아니라 '피곤한 일'로 간주되는 기조도 뚜렷해지고 있다. 여기에 자동차 보유 풍조가 '소유'에서 '공유·구독'으로 변하고 있고 에너지 환경 변화 흐름에 따라 전기차 보급도 본격화되고 있다.
여기에 2010년대 들어서 스마트폰 보급이 대중화되면서 '자동차는 왜 스마트폰처럼 쓰는 사람이 편리하도록 만들어지지 않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커졌다. 이 의문의 기저에는 기존의 자동차가 사용자에게 결코 친화적이지 않다는 불만이 깔려 있다.
이같은 시대 흐름의 변화와 사용자들의 불만 고조는 자동차 생산 업체로 하여금 깊은 고민을 하게 했다. 수십년간 지속해온 형태대로 차를 만든다면 자동차 업체들은 생존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사용자에 친화적이지 않은 물건을 기꺼이 구매할 소비자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자동차 업체가 달라지기로 했다. 단순히 차의 하드웨어만으로 경쟁력을 논하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사용자에게 친화적인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서 자동차에 탑재하는 업체만이 시장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더 이상 자동차 회사가 만든 기본 성능에 맞춰 사람이 제어하는 전통적 자동차가 아니라 고성능 자동차용 컴퓨터를 내부에 심어놓고 이 컴퓨터의 소프트웨어를 통해 차 안팎을 유기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미래형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다.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자동차 회사들의 절박한 행보 변화 속에 국내외 SDV 시장은 기하급수적으로 규모가 커지고 있다.
최근 삼정KPMG가 추산한 글로벌 SDV 시장 전망에 따르면 지난해 2709억3000만달러(한화 약 376조원) 규모였던 SDV 시장 규모는 오는 2032년에 4197억2000만달러(한화 약 582조8000억원)까지 급등할 것으로 예측됐다.
SDV 시대의 새로운 '카 라이프 스타일'은?
현재의 자동차에서 만나볼 수 있는 소프트웨어적 요소는 대부분 차내에 달려 있는 모니터를 통해 활용할 수 있는 수준에 그쳤다. 차에서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행위는 제한적으로 가능했다.
그러나 차내 소프트웨어는 무선 통신망 연결을 통한 자체 업데이트가 불가능했고 와이파이나 사용자의 스마트폰을 자동차와 연결해야만 업데이트를 할 수 있었다. 여기에 차내 결제와 자체적인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통한 성능 개선 등도 불가능했다.
SDV 시대에서는 그동안 차에서 할 수 없었던 것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된다. 차에 탄 승객들은 각자 볼 수 있는 개별 모니터를 통해 차내 결제가 가능해진다. 또한 차내 모든 부품이 5G 통신망을 통해 중앙 컴퓨터와 연결돼 무선으로 성능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스마트폰처럼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사용자의 입맛에 맞게 차내 컴퓨터에 내려 받아서 사용할 수 있는 점도 SDV의 주된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모니터를 통해 차내 부품의 현재 상태를 확인할 수 있고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업그레이드도 가능해진다. 인테리어에 대한 개인화도 가능해짐은 물론 미래 자동차 운행 기술의 핵심인 자율주행 기능도 쓸 수 있다.
특히 차내 부품의 업그레이드는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차의 성능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혁신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의 경우 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를 바꾸지 않아도 관련 소프트웨어의 업그레이드만으로도 차를 더 잘 달릴 수 있게 할 수 있다.
운전자가 앉게 되는 운전석은 디지털 조종실의 형태를 띠게 된다. 운전자의 평소 주행 습관에 대한 분석을 기반으로 각종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데 건강관리 서비스부터 증강·가상현실 기반의 안면 인식 교감형 서비스 등까지도 가능할 전망이다.
아울러 운전자는 물론 뒷자리에 앉은 승객의 건강 상태를 식별해서 멀미를 하는 승객이 조금이나마 멀미를 덜 할 수 있도록 운전 스타일을 조정해주는 역할 역시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기능 변화 외에도 SDV 보편화를 통해 달라지는 것들은 무수히 많다. 무엇보다 업그레이드를 통한 자체적인 성능 개선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자동차의 잔존가치가 소멸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거나 오히려 제고될 수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자동차 개발과 이용에 대한 비용 절감이다. 자동차 회사는 개발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개발 속도 또한 몇 년에서 몇 주간으로 축소할 수 있다.
자동차 회사가 1개의 신차를 내놓는 과정에서 프로토타입 개발부터 정식 신차 출시까지 통상적으로 걸리는 시간은 3~7년 정도 걸린다. 하지만 SDV로 전환하게 되면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신차 모델을 뚝딱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또 차의 뼈대가 되는 플랫폼을 공용화함으로써 자동차 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제조 원가를 약 20% 이상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체적인 생산량을 그대로 늘리면서도 생산과 연구 관련 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규모의 경제가 현실화 된다면 자동차 업체들의 수익성도 훨씬 높아질 수 있다.
이상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SDV 전환이 이뤄진다면 신차 개발 속도가 현재보다 10배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며 "완성차와 부품 업체 간의 납품 구도가 달라지고 완성차 회사의 SDV 기반 수익 창출도 가능해지는 만큼 확실한 경제적 효과 창출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자동차 회사의 개발 비용이 줄어들수록 소비자들이 얻는 혜택도 커진다. 대표적으로 현재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자동차 구매와 유지가 가능해질 수 있다. 또 잔존가치가 소멸되지 않기 때문에 자산으로서의 가치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발휘될 전망이다.
글로벌 車 업체, 미래 생존 위해 SDV 전환에 운명 걸어
SDV는 그야말로 미래 자동차 생활을 통째로 바꿀 확실한 혁신이 됐다. 아울러 자동차 회사의 영속적 성장까지도 도모할 수 있다는 장점이 더해지면서 SDV 전환은 필수적 과제가 됐다. 이 때문에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경쟁적으로 SDV 전환에 운명을 걸고 있다.
국내에서는 현대자동차그룹이 SDV 전환에 목숨을 걸었다. 지난 2022년 SDV 전환을 처음 언급한 현대차그룹은 다른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보다 SDV 전환 행보를 다소 늦게 시작했다. 테슬라가 2010년대 초부터 이 부문의 선두주자였던 것을 보면 확실한 후발주자다.
그러나 시장 진입을 향한 출발선 접근 시점이 다소 늦었을 뿐 발전 속도는 매우 빠르다. 오는 2030년까지 SDV 전환 사업에 총액 18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나선 현대차그룹은 내년부터 전 차종의 SDV 전환에 나서고 자동차용 자체 OS 'ccOS'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자동차 AVP(첨단자동차플랫폼)본부와 SDV 전환을 담당하는 자회사 포티투닷, 모셔널 등을 중심으로 SDV 전환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자동차용 소프트웨어 전용 연구소를 세우려는 것도 SDV 전환에 대한 현대차그룹의 투자 계획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현대차그룹 외에도 폭스바겐, GM, 포드, 스텔란티스, 메르세데스-벤츠, 볼보 등 세계 유수의 자동차 업체들이 자동차용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을 대대적으로 채용하고 자체적인 자동차용 OS 개발에 나서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들 업체에 앞서 테슬라는 이미 2010년대 초반부터 자동차와 제조사 서버 및 기타 네트워크 접속이 가능한 통신 인터페이스 개발을 완료했고 2019년에는 주행거리와 출력 등 성능 개선에 크게 기여한 업그레이드 성과를 내는 등 SDV 분야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하고 있다.
보안 이슈 해결 없다면 미래의 꿈도 신기루 된다
SDV 전환이 전도유망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관련 시장 전망이 무작정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IT 기술 분야의 아킬레스 건으로 꼽히는 보안 이슈가 SDV 전환 시대의 핵심 개선 과제로 꼽힌다.
아무리 편리한 기술이라도 보안의 벽이 뚫리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 확실한 보안 솔루션을 차내 컴퓨터에 입혀야 편리한 생활을 부담없이 누릴 수 있게 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6월 척 로빈스 시스코 회장을 만난 것도 SDV 전환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보안 이슈를 해결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시스코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인공지능 보안 솔루션을 보유한 대표적 IT 기업이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아직 SDV 산업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을 분리 적응하는 단계에 있다고 봐야 한다"며 "몇 년 안에 확실한 보안 기술 탑재가 이뤄진다면 SDV 시장은 황금알을 낳는 시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스웨이 정백현 기자
andrew.j@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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