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보다 스타트업"···이재용·구광모, AI 역량 차곡차곡

LG전자, 스타트업 투자 펀드에 138억원 출자

삼성전자도 영국 '지식 그래프' 기업 인수키로

'AI 거품론' 속 유망 스타트업 발굴해 미래 대비

그래픽=박혜수 기자

이재용 회장이 이끄는 삼성전자와 구광모 회장의 LG전자가 인공지능(AI) 분야 스타트업과 스킨십에 부쩍 신경을 쏟고 있다. 시장에서 기대하는 '빅딜'은 아니지만 전세계를 오가며 발굴한 전도유망한 기업에 투자하는 등 소규모 인수합병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장차 본격화할 AI 시대에 앞서 선제적으로 기술을 확보함으로써 미래에 대응하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19일 재계에 따르면 LG전자는 최근 소프트뱅크벤처스(SBVA)가 1억3000만달러(약 1800억원) 규모로 새롭게 결성한 '알파 인텔리전스 펀드'에 주요출자자(LP)로 참여했다.

SBVA는 AI와 딥테크·로보틱스 분야에 성장 잠재력이 높은 스타트업을 이 펀드에 담아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또 글로벌 네트워크와 자원을 활용해 각 기업이 유의미한 성과를 내도록 조력한다.

그 중 LG전자가 출자한 액수는 1000만달러(138억원)에 이르는데, 이 기회를 통해 혁신 기업·스타트업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전략적 투자 등 기회를 추가로 발굴하겠다는 게 회사 측 복안이다.

LG전자는 올 들어 스타트업 투자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3월 미국 실리콘밸리의 AI 기반 자율주행 서비스로봇 기업 '베어로보틱스'와 6000만달러(약 800억원) 투자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7월엔 네덜란드 스마트홈 플랫폼 '앳홈'의 지분 80%를 사들이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삼성전자도 지식 그래프 원천 기술을 보유한 영국 스타트업 '옥스퍼드 시멘틱 테크놀로지스' 인수 소식을 공개했다.

지식 그래프는 관련 정보를 서로 연결된 그래프 형태로 표현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데이터를 통합해 사용자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빠른 정보 검색과 추론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개인화된 AI를 구현하는 핵심 기술로 꼽힌다.

삼성전자 식구로 합류하는 옥스퍼드 시멘틱 테크놀로지스는 데이터를 사람의 지식 기억, 회상 방식과 유사하게 저장·처리하는 기술을 상용화했다. 이를 바탕으로 유럽·북미 지역 금융·제조·전자상거래 기업과 협력하고 있다.

이처럼 삼성·LG가 나란히 스타트업으로 눈을 돌린 것은 혁신을 주도하는 기업과 함께 호흡함으로써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이해하고 궁극적으로는 자신들이 준비하는 서비스와 신기술을 구현하기 위함이다. 이들 기업은 AI를 중심으로 모바일과 가전, 자동차를 AI 기술로 엮는 이른바 초연결 시대를 설계하고 있다.

물론 두 기업이 예고한 조단위 M&A 계획을 감안했을 때 각 거래가 시장의 기대치에 부합하는 수준은 아니다. 다만 AI를 향한 회의론 속에도 각자의 전략을 바탕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는 게 일각의 시선이다.

업계 관계자는 "월가에서 불거진 '거품론'에서 확인할 수 있듯 AI 서비스는 아직 이렇다 할 수익을 내지 못하며 그 실체가 완전히 형성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면서 "이 가운데 대규모 기업을 인수함으로써 무리하게 리스크를 짊어지기보다 작은 규모의 스타트업에 투자해 함께 성장하는 게 기업 입장에선 합리적인 판단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재계에선 삼성과 LG가 이를 계기로 스타트업 투자를 기반으로 한 신사업 확보에 속도를 높일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는 AI·로봇 스타트업 발굴 작업에 착수했다. 올해도 ▲AI ▲로봇 ▲IoT디바이스 ▲디지털헬스 등 영역에서 우수기업을 발굴한 뒤 사업성을 검증하고 협업 기회를 모색한다는 방침이다. 덧붙여 이 회사는 현재 지분 14.83%를 확보한 로봇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인수도 검토하고 있다.

LG전자 역시 추가 M&A를 저울질하는 중이다. 조주완 사장은 연초 'CES 2024' 현장에서 전장과 냉난방 공조(HVAC) 등 신성장사업의 신규투자, 연구개발에 올해 10조원을 투입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