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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저녁 7시에도 계좌개설"···신한은행 'AI브랜치' 가보니

금융 은행 르포

"저녁 7시에도 계좌개설"···신한은행 'AI브랜치' 가보니

등록 2024.11.18 14:55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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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최초로 AI 은행원 도입···시간 제약 해소단순 반복업무 AI에 맡기고 직원은 상담에 집중현장 테스트베드 단계···연착륙 관건은 망분리 규제

그래픽=이찬희 기자그래픽=이찬희 기자

은행권 최초로 현금자동인출기(ATM)와 인터넷뱅킹을 선보였던 신한은행이 또 한 번 일을 냈습니다. 신한은행은 디지털 역량과 인공지능(AI) 기술을 결합한 디지털 점포인 'AI 브랜치'의 문을 열었는데요. AI 은행원은 단순 반복업무를 맡고 직원은 고객관리에 집중하는 미래 은행의 모습을 국내 최초로 구현했습니다.

18일 오전 9시, 서울 서소문에 위치한 신한은행 AI 브랜치로 들어서자 은행의 흔한 번호표 발급기 대신 마이크와 대형 디스플레이가 저를 맞이했습니다. 번호표 발행기 화면에서 개인업무를 누르고, 무슨 업무를 볼지 마이크에 말하면 되는데요. 이날 신한은행 서소문지점의 이원동 지점장과 문성기 부지점장 등 AI브랜치 직원들은 취재진을 대상으로 다양한 AI 은행업무를 시연했습니다.

신한은행 AI 브랜치에는 두 곳의 AI 창구가 설치됐습니다. 번호표를 받아들고 창구로 들어가면 화면 속 AI 은행원이 고객들을 응대합니다. 저는 다양한 산업에서 쓰이는 가상인간이 AI로 구현됐을 것으로 생각했는데요. AI브랜치 관계자들에 따르면 AI 은행원은 실제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우수직원을 모델로 삼아 개발됐습니다. 고객들의 거부감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실제 직원의 친숙한 말투와 행동을 AI에 녹여냈다고 하네요.

퇴근 후·주말에도 환전·증명서 발급 가능


AI브랜치의 AI 창구는 기존 은행창구에서 제공했던 대부분의 업무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신규 예·적금을 비롯해 환전, 증명서 발급, 통장 거래내역 출력, 신규 인터넷뱅킹 신청 등이 대표적인데요. 기존 은행원들은 대출 신청, 자산관리 등 대면 상담이 필요한 업무들은 기존 은행원들이 담당합니다. AI 도입에 따라 은행원의 역할이 진화하게 된 거죠.

AI 창구를 이용하는 방법은 기존 은행창구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모바일 신분증 등으로 본인인증을 한 뒤, 원하는 업무를 음성인식 방식으로 AI 은행원에게 전달하면 됩니다. 키오스크에 익숙한 젊은 세대라면 이용하는 데 큰 불편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고객들이 터치하는 대형 화면은 직관적으로 단순하게 설계됐고, 신한은행이 자체 개발한 대형언어모델(LLM)의 음성인식 정확도도 꽤나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신한은행 서소문 AI브랜치에 마련된 AI 번호표 발급기. 사진=박경보 기자신한은행 서소문 AI브랜치에 마련된 AI 번호표 발급기. 사진=박경보 기자

특히 AI브랜치 도입으로 서소문 인근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은 보다 쉽게 은행업무를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출퇴근이 없는 AI 은행원이 상주하는 덕에 AI브랜치의 영업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입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도 휴일이나 퇴근 후 여유롭게 은행을 방문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신한은행의 AI브랜치 개소는 다양한 측면에서 의미가 큽니다. 은행은 장기적으로 영업점 운영에 들어가는 고정비용을 줄일 수 있고요. 기존 직원들은 복잡한 상담과 솔루션에 집중하며 전문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또 고객들은 시간 제약없이 간편하게 금융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됐죠.

사실 AI 은행원이 제공하는 업무들은 이미 모바일 앱 '신한 쏠뱅크'를 통해 대부분 비대면으로 지원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영업점을 방문해야 가능한 업무도 꽤 많은데요. 환전이나 증명서 발급, 통장 거래내역 출력 등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환전'은 신한은행 AI브랜치가 내세우는 최대 장점 중 하나로 꼽힙니다. 뱅킹 앱으로 환전을 신청하면 다음날 영업점에서 외화를 찾을 수 있는데, 이곳에선 휴일이라도 오후 8시 안에만 오면 즉시 외화를 수령할 수 있죠.

이에 대해 문성기 서소문지점 부지점장은 "일요일에 급하게 출국하는 경우 앱을 통해 환율 90% 우대를 받더라도 영업점이 문을 닫아 환전할 수 없었지만 AI 브랜치에선 가능하다"며 "월요일 오전 9시까지 부채증명원을 제출해야할 때도 일요일에 AI 브랜치에 방문하면 발급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18일 오전 신한은행 서소문 AI브랜치에서 신한은행 관계자가 AI 은행원의 업무를 시연하고 있다. 사진=박경보 기자18일 오전 신한은행 서소문 AI브랜치에서 신한은행 관계자가 AI 은행원의 업무를 시연하고 있다. 사진=박경보 기자

신한은행은 국내 최초로 금융 AI를 현장에 구축하기 위해 오랜기간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현재는 금융당국의 망분리 규제가 완전히 풀리지 않아 생성형 AI를 도입하기가 쉽지 않은 환경인데요. 은행 고유의 AI 학습 데이터 셋을 개발한 신한은행은 내년부터 AI 은행원의 업무범위를 넓혀나갈 계획입니다.

AI 은행원이 고도화되면 금융권의 큰 고민거리인 불완전판매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은행원이었다면 똑같은 상품이라도 설명이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AI 은행원은 미리 학습된 정확한 정보만 말하기 때문이죠.

이원동 신한은행 서소문지점장은 "AI 은행원은 14개에 달하는 적금상품의 정보를 꿰고 있지만, 일반 은행원들이 머리에 숙지하고 있는 적금상품은 많아야 3개 정도"라며 "영업점과 직원마다 상담결과가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는데, 향후엔 AI 은행원이 불완전판매 이슈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조했습니다.

AI 업무범위·금융 소외계층 접근성 숙제 풀어야


다만 신한은행의 AI브랜치와 AI 은행원이 갈 길은 아직 멉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AI 은행원은 앞으로 많은 고객들을 만나면서 정보를 학습해야 하고, 금융권의 '망분리' 규제도 아직 해소되지 못했습니다. 아직 단순업무만 가능한 사원급 AI 은행원이 전문성 높은 차장급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앞으로 많은 시간과 투자가 필요할 겁니다.

신한은행은 AI브랜치를 통해 금융소외계층에 대한 금융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시니어계층이 이용하기에는 문턱이 높은 편입니다. 시니어층 입장에선 커피나 음식을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것처럼 번거롭게 느껴질테니까요. 당분간 AI브랜치에는 전담직원들이 상주하지만 주 이용층은 젊은 직장인에 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신한은행 서소문 AI브랜치 내부 전경. 사진=박경보 기자신한은행 서소문 AI브랜치 내부 전경. 사진=박경보 기자

신한은행이 AI브랜치를 'AI 테스트 베드'로 설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당장의 성과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AI 은행원의 방향성을 정립하고 머신러닝 기술을 고도화해 나가겠다는 복안입니다.

망분리 규제가 풀리고 나면 신한은행이 주도하는 은행 영업점의 혁신 속도가 매우 빨라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언제 어디서나 나만의 AI 은행원이 모든 은행업무와 자산관리까지 맡아주는 시대가 조만간 열릴테지요.

신한은행은 AI브랜치의 업무범위와 이용시간 등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편의성 개선에 집중할 계획인데요. 은행의 대면창구가 사라지고 있는 지금, 신한은행의 AI브랜치가 미래 은행의 모범 교과서가 될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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