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에 한국서 발 빼는 기업들···"규제완화 체감 못 해"규제혁신이 기업특혜?···반기업정서에 멍드는 산업경쟁력"글로벌 스탠더드와 괴리"···노동·신산업 규제완화 시급
4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한국의 외국인 투자는 39억달러에 그쳤다. 반면 한국에서 해외로 나간 직접투자는 234억달러로, 유입액의 약 6배에 달한다. 투자유치 1위를 기록한 미국이 1530억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쉬운 성적표다.
기업들이 국내에 투자를 하지 않는 이유로는 과도한 규제가 첫 손에 꼽힌다. 되는 것 외에 모든 것을 금지하는 포지티브 규제가 기업들의 투자와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얘기다.
대통령 직속으로 운영되는 규제개혁위원회는 지난해 842건의 규제를 심사하고 95건에 대해 개선 또한 철회를 권고했다. 개선 및 철회권고건수는 지난 2022년 32건, 2023년 65건에서 큰 폭으로 늘어났지만 여전히 규제완화는 체감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난해 말 대한상공회의소 첨단기업 433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첨단전략산업 규제체감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첨단산업 규제수준이 경쟁국보다 과도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기업은 응답기업의 절반 이상인 53.7%에 달했다. 반면 과도하지 않다는 응답은 23%에 그쳤다.
특히 응답기업의 72.9%는 규제이행이 부담이 된다고 답했고 규제이행이 수월하다고 응답한 기업은 2.7%에 불과했다. 업종별로는 바이오 기업(83.6%)의 부정적 평가가 가장 많았고 이차전지(73.6%), 반도체·디스플레이(67.3%)가 뒤를 이었다.
이들 기업은 전년보다 규제환경이 개선됐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42.7%가 부정적으로 답했다. 향후 규제환경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는지 묻는 질문에도 46.5%가 아니라고 응답했다.
지난해 뉴스웨이가 MZ세대 20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응답자 절반에 가까운 43.4%는 경쟁국가 대비 '국내 규제가 높은 편'이라고 답했다. 또한 응답자 45.4%는 실제 업무에서 규제로 인해 불편함(시간·비용 소요 등)을 겪은 적이 있다고 호소했다.
정부의 과도한 기업활동 개입으로 시장 왜곡
우리나라의 상품시장 규제지수(PMR)도 OECD 국가 가운데 여전히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2023년 한국의 PMR(1.35점)은 사상 처음으로 OECD 평균(1.34점)을 웃돌았지만 순위로는 38개국 중 20위다. 특히 정부의 기업활동 개입은 최하위인 36위로, 강한 규제 탓에 시장의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과도한 규제는 일각에서 제기된 '피크 코리아론(한국의 산업경쟁력이 정점을 찍었다는 견해)'의 주요 근거로 꼽히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전국 상경계열 교수를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경제 중장기 전망 및 주요 리스크'에 따르면 응답자의 22.8%가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경제 펀더멘털의 구조적 침하를 방치할 경우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며 "기업들이 혁신, 기업가정신 재점화, 미래 먹거리 발굴 노력 등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열악한 규제환경은 당국의 '반기업정서'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근로시간 등 노동규제, 산업안전 규제, 상속세 등 세제 규제에 이르기까지 정부와 국회가 규제혁신을 기업 특혜로 오인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으로 정부가 추진 중인 상법 개정은 기업 경영활동의 최대 리스크 중 하나로 떠올랐다. 재계는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벗어난 상법 개정이 현행 법체계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형법상 배임죄 처벌 등 사법 리스크를 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상법 개정시 자본 조달, 경영판단과 같은 일상적 경영활동에도 혼란이 생길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현재도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각종 조치가 이미 마련돼 있어 상법을 개정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게 재계의 일관된 입장이다.
노동시장 유연성 개선하면 외투기업 투자 14% 증가
유연성이 부족한 노동규제도 기업들의 경영활동과 신규 투자를 옥죄고 있다. 한경협에 따르면 외투기업(조사대상 538개사) 10곳 가운데 7곳(68.0%)은 중장기 사업계획 수립 시 한국의 노사관계, 노동규제 등 노동환경을 중요하게 고려한다고 밝혔다. 한국의 경직적인 노동시장과 대립적인 노사관계가 외투기업의 경영 불확실성을 가중시켜 리스크 요인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외투기업들은 해고·배치전환 등 어려움과 경직적 근로시간제 등을 노사문제와 관련한 최대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이 G5 국가(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 수준으로 개선될 경우 외투기업들의 투자 규모가 평균 13.9% 늘어날 것이라는 게 한경협의 설명이다.
지난해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기업규제 전망조사'에 따르면 전국 515개 기업 중 48.0%는 제22대 국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노동 규제를 꼽았다. 국회에서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하는 법안이 처리되지 않아 준비가 부족한 중소·영세기업들이 큰 부담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인공지능(AI), 핀테크, 로봇, 바이오 등 미래 산업을 이끌 신산업도 촘촘한 규제에 발이 묶여있다. 대표적으로 AI 산업의 경우 규제환경이 지속적으로 개선됐지만 여전히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다.
효율보다 '안정' 우선으로 미래먹거리 육성 정체
글로벌 3대 AI 지수 중 하나인 '글로벌 AI 지수'에 따르면 규제환경을 나타내는 AI 운영부문은 62개국 중 11위(2023년 기준)를 기록했다. 다만 개인정보보호법과 신용정보법 규제로 데이터 활용장벽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호'에 집중된 개인정보 활용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엄격하고 일률적인 개인정보 보호의무를 합리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헬스케어와 바이오산업도 보수적인 규제로 정체돼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례로 일본은 지난 2019년 별도의 규제 없이 유전자 편집기술의 상업화를 허용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유전자편집기술을 적용한 산물을 유전자변형생물체법(LMO법)에 따라 규제하고 있다.
최근 핀테크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금융혁신'도 갈 길이 멀다. 디지털 전환으로 금융산업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지만 효율성보다 금융안정성에 치중한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 탓에 혁신적인 서비스가 등장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정두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플랫폼은 디지털화에 따라 슈퍼앱을 통한 이종 금융서비스의 통합 제공과 비금융서비스 제공 범위의 확대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며 "시장의 변화를 수용하고 건전한 발전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금산분리와 전업주의에 기반한 금융규제 체계를 앞으로 어떻게 변용시켜 나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끝으로 김재현 경총 규제개혁팀장은 "우리나라 기업규제 수준은 주요 경쟁국에 비해 높아 투자 메리트를 낮추고 있다"며 "1%대 저성장의 늪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글로벌 수준에 맞지 않는 각종 규제를 과감하게 혁신해 기업이 손쉽고 빠르게 투자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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