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건축물,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재탄생유형문화유산 건물, 복원 후 국내 최대 샤넬 매장 오픈'더 헤리티지', 명동 중심에서 서울의 시간을 꿰어내다
복원률은 90%에 이른다. 건축적 원형을 살리기 위해 30여 차례에 걸쳐 국가유산위원회의 자문을 받았고, 석고부조와 석재 마감재, 엘리베이터 홀까지 당시 사진과 문헌을 근거로 원형에 가깝게 되살렸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공간은 확연히 달라졌다. 천장엔 꽃 문양 석고부조가 살아 있었고, 벽에는 고운 색의 화강석이, 엘리베이터는 동선 하나하나마다 '장식'이라기보다 '복원'의 흔적이 조용히 묻어 있었다. 근대 건축의 중후함과 현대 백화점의 고급스러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묘한 공존. 그 안에서 쇼핑은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졌다. 흔히 말하는 럭셔리는 비싼 상품이 아니라,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 자체에서 완성되는 것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신세계는 건축적 원형을 살리기 위해 30여 차례에 걸쳐 국가유산위원회의 자문을 받고, 석고부조와 석재 마감재, 엘리베이터 홀까지 당시 사진과 문헌을 근거로 원형에 가깝게 되살렸다. /사진=신세계 제공
지하 1층은 '생활의 미감'에 무게를 실었다. 프랑스의 바카라와 라리끄, 덴마크의 뱅앤올룹슨, 명품 식기 브랜드 크리스토플 등 유럽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줄지어 들어섰다. 특히 뱅앤올룹슨 매장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초의 고객 체험형 매장으로, 청음실에는 어쿠스틱 커튼이 드리워져 있고, 천장엔 흡음재를 설치했다. 매장 안 목재 집기 하나하나에도 브랜드의 감각이 배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 '하우스 오브 신세계 기프트샵'은 한국 전통 공예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공간으로, 장인과의 협업 상품을 선보이며 '살 수 있는 전통'을 구현했다. 이번 '더 헤리티지' 개관은 신관 '디 에스테이트', 올 하반기 리뉴얼을 앞둔 본관 '더 리저브'와 함께 신세계 본점을 서울 중심부의 '럭셔리 트라이앵글'로 탈바꿈시키는 프로젝트의 핵심축이기도 하다.
4층에 오르자 공간은 묘하게 차분해졌다. 대한민국 유통의 시작을 기록한 역사관과 사진전, 그리고 실제 1930년대에 설치되었던 은행 금고 문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요소가 하나의 연대기를 구성하고 있었다. 박물관 한켠에서 문득 발걸음이 느려졌다. 사진 속 1930년대의 남대문은 지금보다 더 단단하고 조용해 보였고, 그 시절 광고지와 영수증을 들여다보는 일은 마치 서울이라는 도시의 시간을 따라 걷는 일이었다.
5층으로 올라가면 이야기는 더 풍부해진다. '하우스 오브 신세계 헤리티지'는 한국의 문화유산을 신세계의 감각으로 재해석한 공간이다. 한식 디저트 카페와 공예 클래스, 전통 소재를 활용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들이 곳곳에 배치됐다. 그런데도 이질감은 없었다. 서로 경쟁하거나 튀지 않고, 은근하게, 섬세하게,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공존했다. 익숙한 것이 오히려 가장 새롭게 느껴졌다. 한국적인 미감이 어떻게 세계적인 감각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산뜻한 증거였다.
옥상에 오르자, 그제야 이 건물이 가진 감정의 정점이 보였다. 도심 속 잔디 정원이 펼쳐졌고, 그 너머로는 포스트타워와 한국은행 본관이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옛 제일은행과 마주 보는 옛 조선은행. 서울이라는 도시의 금융과 유통, 역사의 중심이 이 건물 위에서 하나의 장면으로 연결되었다. 도시의 풍경이 배경이 아니라 구성원으로 등장하는 공간. 서울의 과거와 현재가 이 잔디밭 위에 겹쳐지며 하나의 시각적 완결을 만들어냈다.
'더 헤리티지'는 단순히 새로 문 연 백화점이 아니었다. 매출이나 소비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신세계가 말하고 싶은 '유산'의 정체성이었다. 이곳에서 신세계는 돈보다 오래 남을 무언가를 만들고자 했고, 그것이 '헤리티지'라는 이름 안에 응축돼 있었다. 럭셔리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전통과 감각, 미감과 여백을 위한 공간. 그 안에서 사람들은 과거를 걷고, 현재를 느끼며, 미래를 상상했다.
"신세계의 모든 역량과 진심을 담아 '더 헤리티지'를 개관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관광의 즐거움과 쇼핑의 설렘, 문화의 깊이까지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서울의 대표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는 박주형 대표의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다.
이제 명동에는 단순한 쇼핑 명소가 아닌, 서울의 얼굴이 생겼다. 더 이상 '백화점'이라 부르기 어려운 이 장소는 시간과 미감, 그리고 삶의 질서를 경험하는 하나의 장場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엔 고요한 고전성과 대담한 현대성이 절묘하게 맞닿아 있었다.

뉴스웨이 조효정 기자
queen@newsway.co.kr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