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값 오르는데 대출문 더 좁아져···실수요 '막막'연봉 5000만원 차주, 영끌해도 대출한도 2억5100만원규제 발표일 고객 뜸한 은행 창구···현장 혼선은 없어
서울 마포구의 한 빌라에서 전세로 살고 있는 30대 직장인 A씨는 아파트 매수를 포기하고 청약 당첨을 노리기로 했다. 금리 인상기에도 꾸준히 자금을 모아 내 집 마련을 준비했지만 집값이 지나치게 오른데다 대출한도까지 줄어서다.
정부는 최근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다시 오름세를 보이자 가계부채와 부동산 수요를 동시에 잡기 위한 추가 규제에 나섰다. 금융당국은 단기 유동성 증가로 주택자금 대출이 다시 늘고 강남권을 중심으로 고가주택 거래가 확산되자 '수요억제형' 대책으로 방향을 틀었다.
15일 발표된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의 핵심은 주담대 총량 관리 강화다. 금융위원회는 ▲주택가격 구간별 주담대 한도 차등화(15억 이하 6억, 15~25억 4억, 25억 초과 2억) ▲스트레스 DSR 금리 하한 3% 상향 ▲1주택자 전세대출 DSR 반영(29일부터) ▲규제지역 LTV 40% 강화 등을 16일부터 시행한다. 주택가격과 차주의 상환능력을 동시에 고려한 이중 안전장치다.
이번 규제는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과천·광명·성남 분당·수정·중원·수원 영통·장안·팔달·안양 동안·용인 수지·의왕·하남)에 적용된다. 이들 지역에서 주택을 구입할 경우 주담대는 주택가격의 40%까지만 가능하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직방'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서울 전용 59㎡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0억5006만원으로 집계됐다. 2023년 9억419만원, 2024년 9억7266만원(7.6%)에 이어 올해 9월 말에는 10억5006만원(8.0%)으로 상승 폭이 커졌다. 불과 2년 만에 1억5000만원 이상 오른 셈이지만, 실수요자의 대출 여력은 오히려 후퇴했다.
서울 아파트 평균 10억5000만원인데···연봉 1억 대출한도 4억2000만원
이날 금융위가 공개한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스트레스 DSR 금리를 1.5%에서 3.0%로 올릴 경우 차주별 대출한도는 최대 14.7%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소득 5000만원 차주는 변동금리형 주담대 기준 2억9400만원에서 2억5100만원으로 4300만원(14.7%) 감소했다. 혼합형(5년 고정)은 3억4000만원에서 2억6600만원으로 3700만원(12.2%), 고정형(주기형)은 3억2500만원에서 3억400만원으로 2200만원(6.6%) 줄었다.
연소득 1억원 차주 역시 감소 폭이 비슷하다. 변동형 대출은 5억8700만원에서 5억100만원으로 8600만원(14.7%) 줄었고, 혼합형은 6억원에서 5억3300만원으로 6700만원(11.1%) 감소했다. 고정형 대출은 한도 6억원 상한이 적용돼 변화가 없었다. 또한 1주택자가 전세대출을 보유할 경우 DSR이 추가로 최대 14.8%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소득 5000만원 차주가 전세대출 2억원을 받으면 DSR이 14.8%포인트, 1억원 대출 시에는 7.4%포인트 상승한다.
이번 대책으로 연봉 5000만원 차주는 10억5000만원짜리 아파트를 사려면 8억원 이상 현금을 마련해야 하고, 연봉 1억원 차주조차 LTV 40% 상한선에 막혀 4억2000만원을 넘기기 어렵다. 규제지역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대출로는 집을 살 수 없는 구조가 된 셈이다.
영업점 분위기도 조용하다. 규제 발표 전에는 대출이 막히는 것 아니냐는 문의가 많았지만 현재는 고객 발길이 끊어졌다는 게 현장 직원들의 설명이다.
서울 중구의 한 시중은행 영업점 직원은 "규제 시행 소식에 갑자기 계약서를 써오겠다는 고객이 한 명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대출 문의는 많지 않다"며 "이미 계약한 고객들에게는 시행일 이전에 계약서 작성과 계약금 납부를 마쳤으면 경과 규정에 따라 종전 규정을 적용받는다는 점을 중심으로 안내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서대문구의 아파트 밀집지역에 위치한 은행 영업점도 한산했다. 개인대출을 담당하는 직원은 "이미 예상됐던 규제라 그런지 오히려 추석 연휴 이전에 주담대 문의가 많았다"고 말했다.
장기전 돌입하는 잠재 수요···임대차 시장 불씨 번질라
마래푸(마포래미안푸르지오) 등 고가 아파트가 밀집한 마포구 소재 영업점 상황도 비슷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마래푸(전용 84㎡)는 지난달 27일 26억원(12층)에 거래되는 등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려왔다.
영업점 직원은 "이 지역은 고령층이 많고, 젊은층이 중심인 '영끌' 고객은 공인중개사가 소개한 대출 모집인이나 비대면 앱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은행권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대출 모집인은 '영끌'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있다. 창구 대출은 내부 리스크 관리 기준이 보수적으로 적용되는 반면 모집인 채널은 영업 목표 달성을 위해 심사가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이번 대책이 투기적 수요 억제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그 부담이 실수요자에게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강남과 한강벨트의 고가주택은 여전히 현금 자산가의 영역으로 남아있어 일반 직장인들이 서울에 진입하기는 한층 더 어려워졌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대출 규제의 방향성 자체는 불가피하다고 평가하면서도 실수요자 보호 장치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계부채 관리 목적이 명확하더라도 실수요자에게 자금조달 통로가 완전히 닫히면 내 집 마련 기회가 사라질 수 있어서다. 소득 수준과 주택가격 구간에 따른 단계적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올해 들어 집값이 많이 오른 주요 지역 대부분이 고가 아파트가 즐비한 강남권 및 한강 벨트였고, 이들 지역에서 대출없이 자체 자금을 통한 주택 매수는 통제가 쉽지 않다"며 "구매수요 억제로 임대차 시장에 내 집 마련 실수요가 머무른다면 전세가 상승 압력도 지속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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