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솜방망이 처벌 안돼걸리면 끝난다 인식 심어야기술유출, 국가경쟁력 망쳐

유출 방식은 갈수록 교묘해졌다. 야근을 택해 몰래 자료를 제작한 직원, 이직 직전 보안망을 피하려 머릿속에 내용을 통째로 암기해 옮긴 직원, '상생'을 외치던 협력사 직원 등 기술을 넘기는 통로는 더 넓어지고 동시에 은밀해졌다. 유출 대상 국가는 중국을 넘어 베트남·인도 등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현실은 숫자만 봐도 심각하다. 지난 5년간 적발된 해외 기술 유출 시도는 97건. 올해 상반기 8건을 더하면 '100건'이라는 기막힌 이정표를 넘겼다. 피해 추산액은 23조 원대를 웃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이유는 단순하다. 바로 '돈'이다. 유출을 시도하는 개인이나 기업은 연봉을 몇 배씩 뛰어넘는 보상과 지분·성과급을 내걸며 접근한다. 단번에 '우리 사람'이 되는 구조다. 대표 사례만 봐도 2019년 삼성전자의 D램 핵심 공정을 빼돌린 전직 임원은 중국 청두가오전으로부터 지분 860억 원과 보수 18억 원을 챙겼다. 그 보수만 올해 삼성전자 임원 평균 연봉의 세 배에 달한다.
문제는 개인의 선택이 한국 산업 전체를 뒤흔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경제인협회는 5년 뒤 반도체·디스플레이·전기전자·자동차·이차전지 등 10대 주력 산업이 중국에 모두 추월당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수출 비중이 GDP의 44.6%를 차지하는 한국에서 이는 단순 우려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 붕괴다. 기술 유출이 계속된다면 그 속도는 더 빨라진다.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최근 발표한 '국가 과학자 제도'는 세계적 연구 업적을 보유한 국내 연구자 100명에게 10년간 연 1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계획이다. 국내 연구진이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연구 환경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시행 전부터 논란이 거세다. R&D 지원 확대는 업계가 요구해 온 방향이지만, 이 제도가 기술 유출 방지와 무관하게 '연구자의 서열화'로 변질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제도가 보호막이 아니라 평가 기준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원'만이 아니라 명확한 책임과 억제 장치라는 주장도 늘고 있다. 인간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에 더 민감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달콤한 보상보다 돌이킬 수 없는 처벌 리스크를 더 크게 느끼게 만드는 정책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현행 산업기술보호법은 국가 핵심기술 유출 시 3년 이상 징역 또는 65억 원 이하 벌금, 일반 산업기술 유출 시 최대 15년 이하 징역 또는 30억 원 이하 벌금을 규정한다. 하지만 실무에서는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 낮은 형량 적용 → 벌금·집행유예로 끝나는 일이 많다. '솜방망이 처벌'과 '거액 보상'이 동시에 존재하는 지금의 구조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시한폭탄을 만든 셈이다.
다음 사건은 이미 예정돼 있다. 기술 유출은 국가 경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중대 범죄이며, 한 사람의 일탈이 전 산업을 위협할 수 있다. 지금은 R&D 확대와 지원을 넘어, 개인의 선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강력한 억지 장치가 필요하다. "걸리면 끝난다"는 공포가 자리 잡지 않는 한, 한국의 첨단 기술은 여전히 노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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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고지혜 기자
kohjihye@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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