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바이오 산업은 최근 몇 년 사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기술 수출부터 글로벌 기업과의 협업까지, 숫자와 그래프는 화려하다. 하지만 그 뒤에는 공개되지 않는 현실이 있다. 신약 개발 과정에서 반복되는 실험동물의 희생,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기되는 윤리적 논란이다.
비임상 단계에서 쥐와 원숭이 등 동물들은 필수적인 검증 대상으로 동원된다. 독성, 효능, 안전성 확인이 목적이지만 그들의 고통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산업이 커질수록 실험 규모는 늘어나고 희생도 증가한다. 그런데 이 사실은 성장 그래프 속에서 쉽게 가려진다.
해외는 조금 다르다. 유럽과 미국의 CRO(임상시험수탁기관)들은 동물 윤리를 강조하며 위치와 접근을 철저히 제한하기도 한다. 일부 국가는 동물실험 단계적 폐지까지 선언했다. 미국 FDA는 2022년부터 일부 동물실험 의무 항목을 삭제했고 EU는 완전 폐지를 목표로 규제를 정비하고 있다. 동시에 AI와 오가노이드 등 대체 기술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한국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정부는 최근 '동물대체시험법' 제정을 논의 중이며 일부 CRO는 오가노이드와 인체조직모델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 전반에서 자리 잡기에는 기술과 제도가 여전히 미흡하다.
다행인 점은 기술이 성장 속도와 함께 윤리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AI 기반 약물 후보 예측, 인체 세포 기반 3D 장기 모델, 인체 장기 기능을 모사한 생체 모사 장기 칩 기술(Organ-on-a-chip) 등은 동물 실험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다. 일부 글로벌 제약사는 이미 이러한 기술로 독성 검증과 효능 예측을 수행하고 있다.
신약 개발은 인간 생명을 위한 과정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생명과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산업 성장과 혁신은 중요하지만, 윤리 없는 혁신은 지속 불가능하다.
국내 바이오 산업이 더욱 빠르게 성장할수록, 실험동물 희생 문제에 대한 해결 속도도 함께 높여야 한다. AI와 대체 기술은 그 열쇠다. 이제는 산업의 속도만큼 윤리의 속도도 가속해야 할 때다.
관련기사
뉴스웨이 현정인 기자
jeongin0624@newsway.co.kr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