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게임 산업 죽이는 '52시간'

오피니언 기자수첩

게임 산업 죽이는 '52시간'

등록 2026.01.28 17:41

김세현

  기자

reporter
"유연한 근무제가 필요합니다"

게임업계 사람들이 최근 입 모아 말하는 의견 중 하나다. 게임업계의 근무 강도가 높아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했으나, 업계 현실과 제도의 간극이 크다는 것이다. 업계 특성에 맞게 유연한 근무제도가 확립돼야 하는데, 억지로 맞춰놓은 듯한 제도가 국내 게임 산업의 숨통을 틀어막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10월 이재명 대통령은 게임 산업의 현주소를 알기 위해 현장을 찾고, 국내 주요 게임사 대표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당시 참석한 대표들은 정욱 넥슨코리아 대표,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방준혁 넷마블 의장, 배태근 네오위즈 대표 등이다.

이들 대표는 '주 52시간 근무제' 유연 적용이 필요하다고 강력 어필했다. 원활한 게임 라이브 서비스를 위한 지속적인 모니터링 및 신작 출시나 대형 업데이트를 앞두고 단기간에 고강도 근무(크런치 모드)를 할 수밖에 없는 게임업계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게임업계 종사자들은 노동 시간과 강도가 높은 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이들의 회사 밖 비공식 노동시간은 2020년 2.4시간, 2022년 3.1시간, 지난해 5.7시간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업계 공식 노동시간도 주당 44.7시간으로, 전 산업 근로자 평균(38.7시간)과 비교한 결과 15%가량 길게 집계됐다.

업계에서도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 시간들까지 합하면, 실제 노동 시간은 주 52시간을 초과할 것이라고 말한다. 주 52시간제가 '워라밸'을 위해 도입됐다는 취지는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저녁이 있는 삶', '주말이 보장되는 근로 환경'을 마다할 노동자들은 없다. 유연한 근무 제도를 요구하는 것이 단순히 초과 근무를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문제는 유행과 속도, 타이밍에 민감한 업계 특성이다. 하나의 신작을 완성하기까지 최소 2-3년 이상이 걸리는 동안 시장 환경과 트렌드는 빠르게 바뀌고, 개발 중인 게임과 유사한 경쟁작이 먼저 출시되는 일도 흔하다. 출시 시기를 놓치면 기술력이나 완성도와 무관하게 시장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 있다. 개발 기간이 길어질수록 게임의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같은 특성에도 불구하고 주 52시간 근로시간 제도는 게임 개발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주 단위 근로시간 제한은 오히려 프로젝트 관리 효율을 떨어뜨리고 일정 지연을 초래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는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부담은 고스란히 개발자와 회사 모두에게 돌아간다.

선택적·탄력적 근무를 통해 효율과 자율성을 보장하고, 업계 특성에 맞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무턱대고 도입한 주 52시간 근무제는 오히려 비공식적인 근무 시간을 만들어내고,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각 산업에 알맞은 근무제도는 필수다. 글로벌 게임사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획일적인 제도가 아니라 유연하게 근무할 수 있는 근무 요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산업을 이해하고 만들어지는 제도들은 게임 업계가 날개를 펴고 더 큰 무대로 날아갈 수 있게 하는 좋은 기반이 될 것이다.

업계가 더 이상 침체되지 않고 성장하려면, 제도 유연화 등 다방면의 지원과 관심이 이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K-게임의 경쟁력은 꽉 막힌 채 숨이 가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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