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약가인하'라는 폭탄

등록 2026.03.04 14:22

임주희

  기자

reporter
"기업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약가 인하가 시행되면 중소형 제약사들은 다 문 닫으라는 소리입니다."(A제약사 관계자)

"일단 지켜봐야죠. 올해 모든 부서가 작년 대비 삭감된 예산을 받아서 1월부터 깐깐하게 자금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B제약사 관계자)

지난 2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 제네릭 약가인하와 기등재약 약가 인하를 골자로 한 약가제도 개선안이 안건으로 오르지 않으면서 제약업계는 한숨 돌리는 모습이다. 하지만 불안 불씨는 여전하다. 당장 3월 건정심 상정 가능성이 열려있고, 오는 7월 시행설 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보건복지부가 내년 1월로 시행시기를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업계에선 '시기'가 문제가 아닌 '내용'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단순히 몇 달의 시간을 번다고 해서 '약가 인하'로 인한 기업 피해를 줄이거나 이를 상쇄할 방안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복지부가 약가제도 개선안을 발표한 이후 제약업계는 반발했다. 과거 대규모 약가인하 때와 비교하면 '거세다'는 표현을 하긴 어렵지만 내부 위기감은 더 깊었다. 기등재 제네릭 약가 산정률을 현행 53.55%에서 40%대로 낮출 경우 국내 제약사 다수는 수익 감소를 겪을 수밖에 없다. 일부 기업들은 수익 감소로 인해 도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고품질 의약품 생산에 필요한 설비 투자와 혁신 신약 연구개발 예산 투입 등에 기여한 회사에 우대를 한다고 해도 신규 바이오텍 회사 외엔 해당 혜택을 받을 기업도 적다는 지적이다. 지금 당장 설비 투자에 넣을 자금도 충분하지 않다.

그럼에도 업계의 반발이 낮다고 느낀 것은 정부 정책을 막을 묘책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약가를 낮추면 해당 산업에 종사하는 기업들은 제살을 깎아 버텨야 하는 구조다. 반대의견을 내더라도 정부가 정책을 시행하면 그저 버텨야 하는 것이다. 글로벌 제약사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연구개발에 전력을 쏟아도 부족한 상황에서 당장의 현금 흐름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정부가 내세우는 명분은 '건강보험 재정 건정성'이다. 하지만 지표를 보면 의문이 든다. 지난해 건강보험 재정수지는 5년 연속 흑자 기조를 유지했다. 누적 준비금은 30조 2217억원이다. 기업은 올해 적자를 우려하는데 말이다.

물론 저성장과 생산연령 인구 감소 등으로 보험료 수입 기반이 줄어드는 것에 선제적 대응에 나선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를 기업에 부담 지우는 게 맞을까? 이보다는 기존 건보 재정 운용 효율을 높여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지난해 건강보험 재정 관련 항목 중 눈에 띄는 수익 중 하나는 전략적 자금운용으로 7088억원의 현금 수익을 창출한 것이다.

현재 전문의약품 중 10년 전 가격보다 낮아지거나 동일한 제품을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10년간 물가는 매년 상승했고, 약을 제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증가했지만 약가는 그대로인 것이다.

제약바이오 산업은 단순 '기업들의 집합체'가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국민의 건강은 물론 우리나라의 경제를 이끌어갈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보건 안보가 핵심이 된 시대다.

하지만 정책은 이 같은 제약바이오 산업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미래 가치를 높게 판단하기보다는 단순 '비용 절감' 대상으로만 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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