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위기 극복 후 미래 산업 포트폴리오 완성반도체부터 첨단소재까지 사업 재편 가속화AI 생태계 진입···공급망 경쟁력 강화
두산그룹이 10년간 이어온 사업 재편의 마지막 퍼즐을 맞췄다. 발전설비와 건설기계 중심의 전통 제조기업에서 벗어나 반도체·첨단소재를 새로운 성장축으로 확보하면서 인공지능(AI) 시대를 겨냥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는 평가다.
이번 변화를 이끈 중심에는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있다. 박 회장은 그룹 유동성 위기 이후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고 미래 성장성이 높은 분야에 투자를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추진해왔다. 10년간의 구조조정을 거쳐 재무 안정성을 확보한 두산은 이제 AI 산업 생태계 안에서 성장 기회를 찾는 단계로 넘어섰다는 분석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두산은 SK가 보유한 SK실트론 지분 70.6%를 2조3000억원에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지난해 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후 약 7개월간 협상 끝에 성사된 거래다.
이번 인수는 박 회장이 그려온 미래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두산은 과거 발전·중공업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에너지, 첨단 제조, 반도체를 중심으로 사업 축을 이동해왔고, SK실트론 인수를 통해 AI 시대 핵심 공급망까지 확보하게 됐다.
두산은 2010년대 발전 산업 침체와 그룹 유동성 위기로 대대적인 사업 재편을 단행했다. 두산인프라코어 등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고 사업 구조를 재정비하면서 생존을 넘어 미래 성장 기반 확보에 집중했다.
박 회장이 선택한 방향은 명확했다. 기존 제조 역량을 유지하면서도 AI 시대에 성장성이 높은 산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이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AI 데이터센터 확대로 커지는 전력 수요에 대응해 가스터빈과 소형모듈원전(SMR) 등 에너지 솔루션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는 건설기계와 로봇에 AI를 접목하는 '피지컬 AI' 분야를 강화하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전자BG의 AI 가속기용 동박적층판(CCL) 사업 확대와 두산테스나 인수를 통해 사업 기반을 마련했다. 여기에 SK실트론까지 더하면서 반도체 공급망의 앞단과 뒷단을 연결하는 구조를 확보하게 됐다.
SK실트론 인수의 핵심 가치는 단순한 소재 사업 확대가 아니다. AI 반도체 경쟁의 핵심인 공급망 내 입지를 확보했다는 데 있다.
SK실트론은 국내 유일의 실리콘 웨이퍼 제조 기업으로 글로벌 300㎜(12인치) 웨이퍼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웨이퍼는 반도체 회로가 형성되는 기반 소재로, 반도체 생산 수율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이다.
두산은 이번 인수로 반도체 소재부터 후공정까지 이어지는 사업 구조를 갖추게 됐다.
기존 전자BG의 AI 반도체 소재 사업, 두산테스나의 테스트 사업에 SK실트론의 웨이퍼 경쟁력을 결합하면서 AI 반도체 밸류체인 내 존재감을 키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사업 규모도 확대된다. SK실트론 매출 약 2조원, 전자BG 1조8000억원대, 두산테스나 3000억원대를 단순 합산하면 반도체 관련 사업 규모는 4조원을 넘어선다. 두산 내에서도 새로운 핵심 성장축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SK실트론 인수가 곧바로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의 승부처는 확보한 사업 간 연결과 시너지 창출이다.
두산테스나의 반도체 테스트 역량, 전자BG의 첨단 소재 기술, SK실트론의 웨이퍼 경쟁력을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따라 기업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은 엔비디아, TSMC, 삼성전자 등 강력한 생태계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만큼 안정적인 고객 확보와 기술 경쟁력 강화도 풀어야 할 과제다.
박 회장은 올해 AI 전환을 그룹 경영의 핵심 방향으로 제시했다. 기존 사업에 AI를 접목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전략이다.
SK실트론 인수는 이러한 전략의 결과물이다. 두산은 에너지로 AI 인프라를 뒷받침하고 로봇으로 AI 제조 영역을 확장하며, 반도체 소재로 AI 공급망에 진입하는 구조를 구축했다.
재계 관계자는 "SK실트론 인수는 두산이 위기 극복을 위한 구조조정 단계를 넘어 미래 산업 중심 기업으로 전환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앞으로는 박정원 회장이 구축한 AI 중심 포트폴리오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연결하느냐가 기업 가치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웨이 김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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