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원유 비중 20% 돌파···중동산 의존도는 6.4%p 하락주유소 혼합구매 최대 40%···정유사 전속 판매망 약화
국내 정유업계의 기름 조달과 판매 공식이 달라지고 있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낮아지는 대신 미국산 등으로 수입처가 다변화되고 정유사 간판을 단 주유소에서도 다른 회사 제품을 살 수 있는 기준이 구체화됐다. 원유를 사오는 곳부터 기름을 파는 방식까지 정유업계의 사업 구조가 재편되는 모습이다.
27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4사의 원유 도입선은 올해 들어 빠르게 다변화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국내 원유 도입량 4억6712만배럴 가운데 중동산 비중은 62.3%로 지난해 같은 기간 68.7%보다 6.4%포인트 낮아졌다.
반면 미국산 원유는 9587만배럴로 전체의 20.5%를 차지했다. 지난해 상반기 16.5%에서 4%포인트 높아지며 반기 기준 처음으로 20%를 넘어섰다. 사우디아라비아산 비중은 지난해 상반기 33.1%에서 올해 30.5%로 낮아졌고 미주산은 23.4%에서 26.5%, 아프리카산은 2.0%에서 5.6%로 높아졌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기존 조달선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미국과 아프리카 등 대체 산지에서 원유를 확보하게 된 영향이다. 원유 가격뿐 아니라 운임과 보험료, 유종별 생산수율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 만큼 정유사들은 도입 지역을 넓히면서 조달 비용을 관리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아시아 전반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원유·선박 추적업체들은 오는 9월 미국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원유가 4000만배럴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8월 약 2200만배럴보다 82%가량 늘어나는 규모다. 중동 공급 불안이 이어지면서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정유사들이 미국산 원유 확보를 늘리고 있는 것이다.
원유 도입선이 바뀌는 동시에 국내 판매망에서도 변화가 시작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6일 석유유통업종 표준대리점계약서를 개정해 주유소가 상표 사용 계약을 맺은 정유사 제품을 60% 이상 구매하면 나머지 최대 40%는 다른 정유사 제품으로 조달할 수 있도록 기준을 명시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에서 정유사가 주유소에 자사 제품을 100% 구매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금지돼 있어 혼합구매 자체가 이번에 새로 허용된 것은 아니다. 이번 개정은 정유사 제품을 60% 이상 구매할 경우 타사 제품을 최대 40%까지 살 수 있다는 기준을 표준계약서에 구체적으로 담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표준계약서는 강제 규정이 아닌 권장 계약조건이지만 실제 현장에 확산할 경우 특정 정유사 간판을 단 주유소의 전속성은 지금보다 약해질 수 있다. 주유소 입장에서는 가격과 거래조건을 비교해 일부 물량을 다른 정유사에서 조달할 여지가 커지는 셈이다.
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는 "과거 조사에서도 주유소의 약 70%가 혼합판매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실제로는 정유사와 전량구매 계약이 맺어진 경우가 많아 다른 제품을 구매하기 어려웠다"며 "혼합구매가 활성화되고 사후정산 관행까지 개선되면 주유소가 정유사별 공급가격을 비교해 제품을 구매할 수 있어 가격 경쟁력과 협상력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 또한 달라진다. 개정 표준계약서는 정유사가 일일 판매기준가격을 사전에 공개하고 주유소가 제품을 발주하는 시점의 공급가격으로 정산하도록 했다. 제품을 먼저 공급한 뒤 한 달 후 월평균 가격 등을 적용해 최종 가격을 정하던 사후정산은 원칙적으로 폐지된다. 주유소가 별도로 요청하면 사후정산을 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7일 안에 가격을 확정해야 한다.
정부의 석유 최고가격제도 정유사들의 가격 전략을 복잡하게 만드는 변수다. 정부는 최고가격제로 발생한 정유사 손실을 원가에 적정 마진을 더해 보전할 방침이다. 원유 도입비와 생산·판매 과정에서 발생한 실제 비용을 토대로 업체별 원가를 산정한 뒤 적정 마진을 반영하는 구조다.
손실 보전 기준을 놓고 정유업계 내부의 이해관계도 엇갈리고 있다. 당초 정유업계는 국제 석유제품 가격을 반영해야 실제 손실을 보전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지만 최근 가격담합 사건과 공정위 조사 등 사법·규제 리스크가 겹치면서 정부의 원가 기준을 받아들이고 조기에 정산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반면 보전 규모가 실제 손실에 못 미칠 수 있는 만큼 추가 보상을 요구해야 한다는 입장도 남아 있다. 정부는 3월 13일부터 6월 말까지 발생한 손실에 대한 1차 정산을 진행하고 있으며 심의를 거쳐 오는 11~12월 보전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원유 도입선 다변화와 주유소 혼합구매, 공급가격 결정 방식 변경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정유4사의 조달·판매 전략에도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원유 구매 단계에서는 중동 외 지역의 대체 물량 확보가, 국내 판매에서는 주유소별 공급가격과 거래조건 관리가 이전보다 중요해질 전망이다.
뉴스웨이 이건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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